[심규선의 연극인 열전]기획 이정은 “기획도 창작입니다”

심규선 기자 입력 2017-06-12 14:16수정 2017-06-12 22:03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연극계에서 ‘기획’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정은 씨. 2006년에 차린 ‘코르코르디움’의 대표인 그는 자신의 일이 고무줄 같다고 말한다. ‘기획’이란 분야가 생긴 지 얼마 안 돼 일의 범위가 일정하지 않다는 뜻이다. 그는 코르코르디움을 창작집단으로 정의하고, 자체적으로 공연을 제작해 무대에 올리는 것까지도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회사를 만든 지 10년이 넘도록 그런 작품은 하나 밖에 없지만, 그는 늘 꿈을 꾸고 있다. 그게 그를 지탱하는 힘이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인터뷰가 끝날 무렵, 무례한 질문인 줄 알면서도 물어봤다.

“혹시, ‘4차원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나.”

‘4차원’은 보통 사람과 말과 행동이 달라 특이하게 생각되는 사람을 가리키는 유행어다.


“너무 많이 들어봤다.”

주요기사

내 예상이 맞은 것이다.

예를 들어달라고 하자, 그는 천연덕스럽게 중학교 1학년 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학교에 휴대용 가스버너와 프라이팬을 갖고 갔다. 점심은 잘 먹어야 하는 것 아닌가. 친구들 밥을 모아 참기름과 고추장을 넣고 볶음밥을 만들어 잘 먹었다. 그런데 소문이 나고 학교에서 금지하는 바람에 그날 한번밖에 못했다.”

그는 머리 손질도 2년에 한번 정도 스스로 자른다. 자르는 기분이 좋아서란다. 하고 싶은 머리는 대학생 때 이미 미용실 가서 다 해봤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요즘은 자른 머리카락을 치우는 게 귀찮아서 가끔 미용실에 갈 때도 있단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나를 주위에서는 이상하게 본다”고 했다(이상하게 보는 게 정상 아닌가).

내가 4차원을 떠올린 이유는 그의 정신세계가, 그리고 그걸 표현하는 말투가 왠지 특이해서다. 그는 현실에 발을 딛고 있으면서도, 눈은 구름을 보고, 가슴은 별을 얘기했다.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순수하다는 뜻이다. 분명히 말하거니와 그는 거칠지 않고 매우 섬세하다.

그는 지금 연극판에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기획’이라는 길이다. ‘그’는 코르코르디움 대표 이정은(40)이다. 그를 6월 6일 동아일보에서 만났다.

1. 고무줄과 잡식성

사실 ‘기획’은 흔히 듣는 말이다. 그러나 연극판에서 ‘기획’이라고 하면 언뜻 개념이 떠오르지 않는다.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다. 그의 말을 정리하면 이렇다.

코르코르디움도 창작공연집단을 표방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극단들처럼 어떤 공연을 처음부터 ‘기획’해서 무대에 올릴 수 있다. 이 때의 ‘기획’은 공연할 작품, 연출과 배우, 공연기간, 공연장소 등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물론 그 다음 과정도 모두 ‘기획’에 들어간다.

어떤 극단이 공연할 작품을 정해놓고 그에게 연락할 수도 있다. 이때의 ‘기획’은 극단 대표나 연출가와 소통이 잘 되면 작품의 해석에 참여하고, 홍보와 마케팅 전략을 세우는 등 공연이 끝날 때까지 프로듀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는 일방적으로 지시를 받는 것보다 소통을 통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프로세스를 좋아한다.

어떤 극단은 홍보와 마케팅만을 맡아달라고 연락하기도 한다. 이 때의 ‘기획’은 그야말로 작품을 알리고, 티켓을 파는 현실적인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2015년 공연한 ‘인코그니토’의 한 장면(연출 양정웅). 이 작품은 코르코르디움이 제작해서 무대에 올린 첫 작품으로서 의미가 있다. ‘인코그니토’는 ‘익명’이라는 뜻으로 영어권에서 주목받는 젊은 극작가 닉 페인의 작품이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31개의 단상을 머리 속에서 종합하면 하나의 스토리가 만들어진다. 4명의 배우가 1인 다역으로 21명의 배역을 연기했다. 사진은 동네 불량청소년들이 모여 마리화나를 피우는 장면. 코르코르디움 제공

그는 말한다.

“같이 작업하는 극단들에 따라, 또는 공연에 따라 전체 프로듀서 역할을 하기도 하고, 기획을 하기도 하고, 홍보와 마케팅을 중점으로 하기도 해서 좀… 고무줄 같아요.”

그렇다. 그가 하는 일은 극단에 따라 많이 다르다. 당연히 오래전부터 긴밀하게 일해 온 극단들과는 커뮤니케이션도 잘 되고, 그의 역할도 넓어진다. 그런 경우를 ‘파트너’라고 표현했다. ‘하청’이 아니고. 그런 극단으로 여행자(대표 양정웅), 작은신화(대표 최용훈), 백수광부(대표 이성열), 실험극장(대표 이한승) 등을 꼽았다. 극단마다 선호하는 작품이나 인적 구성, 분위기가 다 다르다. 그 점도 일하는 데 묘미로 작용한다고 말한다.

‘기획’이라는 기능이 꼭 연극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연극, 무용, 축제, 교육, 극장, 다원(多元·연극이나 무용처럼 독자적인 공연 양식이 아니라 여러 공연 양식을 합쳐서 하는 공연) 등 다양한 장르에서 기획을 맡아왔다. 그래서 자신을 ‘잡식성’이라고 했다. 물론, 연극일이 가장 많다.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다했다. 스스로 3D업종이라고 한다. 나중에 어떤 일도 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그는 그동안 관여했던 작품 중에서 본인에게 의미 있는 작품으로 연극 ‘말들의 무덤’(김동현 연출, 2013년), 무용 ‘울프’(김윤정 안무, 2010년), 다원 ‘기이한 마을버스 여행-성북동’(유영봉 연출, 2012년)을 꼽았다.

2. 두 번의 타협

그는 이 일을 시작하기까지 원하지 않는 선택을 두 번 했다고 말한다. ‘타협’이라고 표현했다.

첫 번째는 숭실대 영어영문학과에 진학한 것. 그는 경북 김천에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서울로 이사를 왔다.

“사실은 연극영화과에 들어가 글도 쓰고 연출도 하고 싶었다. (왜?) 어렸을 때부터 책 읽고, 글 쓰고, 영화와 그림, 음악을 좋아했던 것이 영향을 줬던 것 같다. 그런데 연극영화과를 희망은 했으나 준비는 하지 않았다. 대학 입시 때 원서만 쓰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집에서 반대했다. 그래서 타협한 게 영어영문학과다.”

그는 집안의 반대에 대해 부연 설명했다. 흔히 연극 영화는 배고픈 직업이고 ‘딴따라’라는 고정관념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해 수능시험을 망쳤는데 그 전까지는 꽤 성적이 좋았던 탓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는 덧붙였다. “어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아주 좋은 관객입니다.”

그도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영어연극회에 들어갔다. 그런데 신입생 프로그램이라는 게 모두 배우 중심이었다. 대사 읽어봐라, 옥상에 올라가 소리쳐 봐라. 나는 연기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한 달 만에 탈퇴했다.”

그가 들어간 동아리는 클래식음악방송반이었다. 그러나 영문학과에서 영미 희곡도 접하고 연극도 보면서 연극에 대한 관심을 이어갔다.

2001년 대학을 졸업했다. 일반회사에 들어갈 생각이 전혀 없어서 방황했다. 영화사 연출부에 지원했다. 대학 3학년 때 단편영화를 찍느라 1년 휴학할 정도로 그는 영화에도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꿈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1년 조금 안 되게 낭인 생활을 하다가 두 번째 타협을 한다. ‘먹고 살려고’ 광고회사에 들어간 것이다.

“광고회사에서 홍보, 마케팅, 경영서적 등을 많이 읽었다. 여기서 배운 것과 연극을 융합한 것이 바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다.”

3. 코르코르디움을 향하여

연극 기획의 길에 들어서는데 지름길은 없었다.

“광고회사를 얼마간 다니다 퇴사하고 T공연기획사에 들어갔다. 회사가 일을 크게 벌이다 망해버렸다. 서울변방연극제에 가보니 재미있을 것 같아 홍보팀 모집에 응시해 합격했다. 2004년이었는데 대학로 연극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홍보팀 일은 그해만 하고, 이듬해 2005년에는 ‘파란’이라는 문화기획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6년 9월에 코르코르디움이라는 기획사를 만들게 된다.”

이쯤에서 코르코르디움의 뜻을 설명해야겠다. 그가 직접 붙인 이름이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P.B.셸리의 묘비명에서 따왔다. 코르 코르디움(Cor Cordium)은 라틴어로 ‘마음 중의 마음, 사랑 중의 사랑, 핵심 중의 핵심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우리도 본연의 가치를 중시하는, 바람직한 문화를 추구하는 창작집단을 지향하고 있다.”

P.B.셸리라면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는 서풍부(西風賦)로 유명한 인물이다.

“대학시절 연극반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전공 공부는 좋아했다. 이것저것 책을 읽다가 우연히 접하게 된 셸리의 묘비명에 꽂혔다. 처음에는 어렵다, 길다, 아파트이름 같다, 뭔지 모르겠다는 ’원성‘이 많았다.”

회사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

“’파란‘에 있을 때 후배 2명과 함께 아침마다 스터디를 했다. 작품 얘기도 하고, 토론도 하고, 가상으로 기획도 해 봤다. 관련서적이 많지 않았지만 예술경영이나 공연기획 같은 책을 찾아 같이 읽으면서 공부했다. 그러다가 나는 좀 쉬고 싶어서 회사를 나왔다. 함께 공부하던 바로 밑의 후배도 결혼할 생각으로 퇴사했다. 그러자 막내도 혼자 있기 힘들다며 나오고. 스터디를 하던 3명이 다 나온 셈이다. 나는 죽이 되던 밥이 되던 뭔가를 할 계획이었다. 처음에는 세 명이 다시 뭉칠 계획은 없었다. 그러다가 함께 하자고 하면서 2006년 8월에 준비하고, 9월에 사업자 등록을 하게 됐다.”

2013년에 공연한 ‘말들의 무덤’(연출 김동현)은 한국전쟁 당시 양민학살 목격자들의 말(言)을 13명의 배우가 재현해 내는 것이 연기의 기둥이다. 21세기 현재, 배우인 내가, 한국 전쟁 중에 무덤 속에 유폐된 그와 그녀들을 말로 복원해 내는 것이다. 이정은은 이 작품을 본인에게 의미 있는 작품 중 하나로 꼽았다. 비록 중반부터 참여했지만 김동현 연출(2016년 2월 별세)과의 인연 때문이다. 그와 처음으로 만난 작품이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는 김동현 연출을 본인이 하고 싶은 작품이나 주제, 지향점, 계획 중인 사업, 자신의 생각 등을 꾸준하고 진지하게 얘기하는 스타일이라고 회고했다. 극단 코끼리만보 제공

사무실은 집 근처인 봉천동에 마련했다. 막내 후배의 집도 봉천동이었고, 가운데 후배는 부천이어서 편리했다. 봉천동에서 2년 정도 있다가 대학로로 옮겼다.

“대학로에 와서도 네 번이나 이사했다. 지금이 다섯 번째 사무실이다. 좀 더 싼 데로, 싼 데로 옮기다 보니…. 그런데 한번만 빼고는 전부 가정집을 얻어 사무실로 꾸몄다. 콘크리트 사무실은 1년에 절반은 춥고, 딱딱한 스타일도 싫다. 가정집을 사무실로 꾸미면 화장실 있지, 싱크대 있지, 따뜻하지, 그래서 좋다.” 사무실 고르는 취향도 독특하다.

기획 분야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들어서부터.

“오랜 시간 동안 극단들은 대체로 한 사람이 기획, 연출, 행정, 대표를 모두 맡아왔고, 지금도 그런 극단이 많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서는 기획이라는 파트를 달리 생각하며 관심을 갖기 시작하는 것 같다.”

외국은 기획분야가 예전부터 분리돼 왔다. 우리는 정리가 안돼 있는데, 시간이 흐른다고 정리될지 어떨지 모르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기획 분야를 맡고 있는 사람들끼리는 자주 만나나.

“3주전에 6명이 모였는데 자발적으로 만난 건 처음이다. 7,8년 전에 한번 만난 적은 있다. 그때는 외부기관의 지원을 받아, 기획하는 사람들끼리 한번 모여 보자고 만든 프로그램에 초대를 받았다. 조만간 또 한번 모여 보려고 한다.”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끼리의 네트워킹조차 아직은 갈 길이 먼 듯하다.

4. 4차원의 꿈

그는 요즘 고민을 하고 있다.

“일이 많아 고달파서가 아니라, 회의가 들어서다. 우리도 엄연히 창작집단인데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자체적으로 제작한 작품은 ’인코그니토‘(2015년) 한 작품밖에 없다. 회사를 만든 지 5,6년이 지나면 우리 작품을 하자고 했는데, 아직까지 그럴 여력이 없다.”

단독은 아니고 공동제작한 작품으로는 ’파이의 시간‘(신동인 연출, 2011년), ’여우들의 동창회‘와 ’콜라소녀‘(이상 극단 작은신화, 2012년), ’콜라소녀‘(2013년)를 꼽는다.

그는 기획도 창작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창작‘을 못하고 있으니 초조하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3~5월, 올 1~4월에 잠시 일을 놓고, 미래를 고민했다.

“하지만 쉬는 기간도 빡세게 보내서 쉰 것 같지가 않다. 아쉽게도 노트북 들고 다니며, 기획단계에서부터 해야 할 일을 했다, 기획이라는 게 최소 몇 개월 전부터, 길게는 1~2년 전부터 준비할 게 있어서다. 내가 없을 때 진행하는 공연은 메일이나 카톡으로 계속 체크했다.”

여건이 되면 뭘 하고 싶나.

“거리공연도 좋고 새로운 1인극시리즈도 좋다. 국내 소설을 각색해서 초연을 하거나 해외작품을 처음으로 소개하고 싶기도 하다. 그래서 작년에 닥치는 대로 작품을 찾고 읽느라 바빴다.”

좋아하는 장르가 있나.

“딱히 좋아하는 장르가 있는 건 아니다. 고전에는 관심이 있다. 그 속의 캐릭터를 발전시켜보고 싶다. (현대물도 좋아하나). 주원규 작가의 ’열외인종 잔혹사‘의 스토리와 콘셉트를 기본토대로, 탑골공원이나 용산역, 삼성역 같은 데서 실제로 공연을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그는 단순한 홍보와 마케팅을 넘어, 다른 극단의 요청을 받는 것도 넘어, 독자적으로 작품을 제작해서 공연하는 ’큰 기획‘을 꿈꾸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가 ’쬐끔‘ 후회하고 있다는 사실도 소개해야겠다.

“연극계에 들어온 걸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끔 요만큼 생각하는 것은 있다. 처음부터 직접 쓰고 연출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2012년 ‘기이한 마을버스 여행-성북동’은 다원(多元) 공연이었다. 극단 서울괴담(연출 유영봉)의 작품으로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은 관객들이 마을버스를 타고 성북동에 도착하면 그때부터 퍼포먼스는 시작된다. 관객들이 조를 나눠 배우들을 따라가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볼거리와 조우하는 것이다. 사진은 가로등이 들어온 어스름한 저녁에 배우가 손에 쥔 인형할머니를 상대로 자기 얘기를 늘어놓는 장면이다. 주위에 널려있는 종이상자는 달동네를 의미한다. 극단 서울괴담 제공

그는 대학에 들어가기 전의 꿈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 듯하다.

’기획‘의 수익구조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극장의 크기와 배우의 수, 공연 기간 등에 따라 수익 구조는 달라진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어렵다. 일반 극단과 사정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연극계 전체가 그렇고, 사회분위기도 그렇고.”

그러면서 그는 “우리가 아이디어를 내면 주위에서는 ’이왕 할 거면 돈 되는 걸 해‘라든가, ’우리 말고 돈 되는 팀을 찾아‘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며 웃었다.

어려운 연극판에 왜 남아 있는 것일까.

“우선, 단순하게 말해서 연극을 좋아한다. 다음은 하고 싶은 것을 아직 못했으니 더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잠깐 인턴으로 일했던 35살 여자가 작년 겨울에 정식 직원이 된 얘기를 들려줬다. 그녀는 직장을 다니다 때려치우고 다시 연극영화학과에 들어가 졸업했다. 그는 말한다. “연극에 미치면 마약보다 무섭습니다.”

후배들의 관심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예전에 비해서는 줄었으나 인기는 꾸준하다. 다만 연극보다 뮤지컬, 콘서트 쪽에 관심이 많다. 구인광고를 내면 ’뮤지컬도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종로여성인력센터가 공연기획자 과정을 운영중인데, 없어지지 않는 걸 보면 공부를 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 아니겠나. 물론 그곳에 등록하는 사람들은 나이도 목적도 천차만별인 것 같다.”

’기획자‘의 자질은 따로 있는 것일까.

“영화 문학 등 다양한 장르를 많이 접해서 창의성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온다. 동시에 집요함과 꼼꼼함도 필요하다. 어찌 보면 상반되는 두 가지 자질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이 일도 만만찮은 것 같다.

혹시 일이 잘못돼서 낭패를 본 적은 없는지.

“공연을 준비하다보면 이런 저런 이유로 일이 꼬일 때가 있다. 그러나 그런 건 어떻게든 해결된다. 가장 큰 낭패는 고생을 해서 작품을 올렸는데 관객이 없을 때다. 공연은 관객에게 보여주는 게 목표다. 잘 되고 못 되는 것에 대한 예상이 틀릴 때가 있는데,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다.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는 어느 좌담회에서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코르코르디움의 경우, 같이 작업하는 극단들이 꽤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춰왔잖아요. 거의 전속처럼 작업을 하시는 극단들도 있는데 매진에 대한 압박이라든가, 그런 건 좀 덜하지 않나요”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걸 드러내놓고 요구하시진 않지만 기대는 항상 하시죠. 어찌 되었든 본인이 만족해서 끝낼 게 아니라면 무조건 보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더 많은 관객들이 연극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장기로 공연하는 경우는 겨의 없고 기본적으로 연극은 2주, 무용은 이틀, 다원(多元)도 하루 이틀 정도 공연을 하는데, 너무 짧은 기간 동안 올라갔다가 끝나버리니까 무언가를 준비하고 홍보한다는 게 사실 너무 힘들어요. 새로운 관객층을 고민하지만 계속 답은 못 찾고 있고요”(2015년 4월, 서울연극센터 주관 연극인 좌담회).

그는 지금까지 인터뷰를 해본 적이 없다. 물론 ’기획 분야‘에 대한 매스컴의 관심이 적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는 인터뷰를 싫어하기도 한다.

“사진 찍는 것은 좋아 하는데, 찍히는 것은 싫어한다. 내 사진을 보면 뭔가 어색하다. 내가 아닌 것 같다.”

이 말을 듣고 내가 ’4차원‘ 질문을 한 것이다.

이정은은 ’기획‘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꿈을 꿀 것 같다. 5년쯤 후에 다시인터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정은이 기획으로 관여한 주요 연극은 다음과 같다(무용, 다원, 축제, 교육 등은 생략한다) ’다우트‘ ’심판‘ ’일월‘ ’고곤의 선물‘ ’벚꽃동산‘ ’종이창문‘ ’똥강리 미스터리‘ ’13월의 길목‘ ’나생문‘ ’다락방‘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꿈속의 꿈‘ ’마릴린 먼로의 삶과 죽음‘ ’루시드 드림‘ ’천국에서의 마지막 계절‘ ’두더지의 태양‘ ’십이야‘ ’상사몽‘ ’오후 네시‘ ’파이의 시간‘ ’모든 이에게 모든 것‘ ’트루러브‘ ’만선‘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숲 속의 잠자는 옥희‘ ’그게 아닌데‘ ’내 이름은 강‘ ’콜라소녀‘ ’여우들의 동창회‘ ’창신동‘ ’우연한 살인자‘ ’동토유케‘ ’니나‘ ’비상사태‘ ’죽음의 집2‘ ’이인실‘ ’말들의 무덤‘ ’천국으로 가는 길‘ ’에쿠우스‘ ’과부들‘ ’공장‘ ’맘모스 해동‘ ’먼 데서 오는 여자‘ ’날아다니는 돌‘ ’히에론‘ ’중독‘ ’억울한 여자‘ ’북어대가리‘ ’해주미용실‘ ’합석전후‘ ’갈매기‘ ’까베세오‘ ’두 사람을 위한 만찬‘ ’정글북‘ ’생각나는 사람‘ ’타바스코‘ ’마리나츠베타예바의 초상‘ ’지상최후의 농담‘ ’인코그니토‘’한여름밤의 꿈‘ ’너를 향해 활짝‘ ’프라메이드‘ ’여행자극장‘ ’싸지르는 것들‘ ’오이디푸스-알려고 하는자‘ ’복사꽃 지면 송화 날리고‘ ’미녀와 야수‘ ’토일릿 피플‘ ’유리디스‘ 등)

심규선 기자 ksshim@donga.com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