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Topic]“박근혜 정부, 뭔들 조작하지 못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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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년 10월 20일 14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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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원세훈 맨’으로 불린 국정원 전 직원의 절규

● 朴정부 출범 직후 직권남용으로 파면, 국정원 상대 소송
● “원장이 죽이라면 죽이고, 살리라면 살렸다”
● 포항 해병대 훈련 ‘국정원 삼청교육대’의 실체
● ‘원세훈 살생부’와 ‘남재준 살생부’
● “남재준, 군인들 끌고 들어와 국정원 망쳤다”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
서울 내곡동 국정원 청사.


여기 비운의 사내가 있다. 전직 국정원 직원인 그는 국정원을 상대로 소송을 벌였다. 자신을 파면한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이었다. 주변에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수군거렸다. 1심에선 이겼지만, 2심에서 졌다. 지난 8월 말 대법원이 그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2년여에 걸친 법정공방은 다윗의 패배로 끝났다.

그의 소송에 얽힌 이야기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 최고 정보기관의 인사 난맥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개혁’ 차원에서 실시한 특별정신교육, ‘살생부’ 작성 등 국정원의 정치적 면모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강도 높은 육체훈련이 포함된 특별정신교육 프로그램은 ‘국정원 삼청교육대’라고 불렸다. 교육 대상자들은 스스로를 ‘정치범’이라고 자조했다.

소송을 낸 이모(51) 씨는 원세훈 원장 임기 초반 ‘실세’로 통했다. 박근혜 정부 첫 국정원장 남재준 씨는 이명박 정부 및 전임 원장의 흔적을 지우려 했다. 이씨를 파면한 것도 그런 차원이었다. 원장을 등에 업고 국정원의 인사질서를 파괴했다는 이유에서였다. 공식 징계사유는 부당 인사개입과 직권남용. 원장 특별보좌관(협력관)으로 근무하면서 인사에 수시로 개입하고 일부 간부에 대한 미행 지시 등 직권을 남용했다는 것이다.

이씨의 파면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한쪽에서는 그가 실제로 인사전횡을 일삼았기에 징계 받을 만하다고 본다. 반면 그가 인사에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 해도 파면은 심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의 행위가 대체로 원장(원세훈)의 지시에 의한 것이기에 억울한 면이 있다는 시각이다. 1심 재판부가 그의 손을 들어준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재판부는 징계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비위행위의 내용과 정도에 비춰 파면은 지나치다고 판결했다. 아울러 설사 잘못된 인사가 이뤄졌더라도 그 책임을 질 사람은 인사라인 상급 간부들이며 궁극적으로는 국정원장이라는 논리를 폈다.

2015년 2월 9일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법정에 출두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2015년 2월 9일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법정에 출두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


항소심이 진행되던 올 봄 그에 대한 취재를 시작한 기자는 오랜 수소문 끝에 그와 접촉할 수 있었다. 대법원 판결 직후인 9월 초 처음으로 그와 통화했다. 그는 “그나마 믿었던 사법부마저 무너졌다. 더는 기댈 곳이 없다”며 크게 낙담했다. 두 번째 접촉에선 장시간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기자는 1, 2심 판결문을 구해 검토한 후 국정원과 원세훈 전 원장에게 질문지를 보냈다. 양측 다 짧은 답변을 보내왔다. 이씨가 이 사건과 관련해 언론 취재에 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증언을 통해 국정원의 인사 난맥상과 소문 속 국정원 삼청교육대의 실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2014년 4월 15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한 남재준 국정원장.
2014년 4월 15일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증거 조작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를 한 남재준 국정원장.


그는 충북 청주 출신이다. 국정원 주변에서는 그가 충청권 직원들을 잘 챙겼다는 얘기가 나돈다. 이에 대해 묻자 그는 단호히 부인했다.

“챙겨준 것 없다. 나는 지인을 챙기는 스타일이 아니다. 안다고 봐주고, 모른다고 배척한 적 없다.”

-음해인가?

“나와 관련된 보도 내용은 대부분 거짓이라고 보면 된다. 다 꾸며낸 얘기다. 만약 내가 그랬다면 원세훈 원장이 가만히 있었겠나.”

그는 원 전 원장의 캐릭터에 대해 부연했다.

“원세훈이 어떤 인간인지 알아보라. 틈을 주는 사람이 아니다. 인사에 관한 한 원내에서 누구도 숨을 쉴 수 없었다. 모든 걸 원장이 했기 때문이다.”

-살생부를 만들고 삼청교육대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원성을 샀다고 하던데.

“내가 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뒤에서 움직이지 않았나?

“그런 적 없다. 2008년 중병을 앓아 서울대병원에 두 달간 입원했다. 하반신 마비가 될 뻔했다. 과로가 원인이었다. 원(국정원)에 돌아와서도 몸이 회복되지 않아 식당에서 사람 만나려 앉아 있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 사람이 무슨 살생부를 만들고 삼청교육대를 보내나.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내가 한 일이 아니라는 걸. 이번 소송에서도 그런 점이 부각됐다.”

이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각각 서울시장, 부시장으로 재임할 때 서울시를 담당했다. 그가 2012년 대통령 선거 직후 당선자 인수위원회 인물검증팀에 합류한 데는 그런 인연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출범 후엔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실 산하 공직기강비서관실에 파견됐다.

2009년 초 국정원장에 취임한 원세훈 씨는 아파서 병가 중인 그를 국정원으로 불러들여 특별 임무를 수행하게 했다. 이른바 비선라인의 구축이었다.

“인수위 때 과로한 게 원인이었다. 그 사람들이 다 얼리 버드(Early Bird)이지 않나. 공직기강팀에서 일할 때도 하루 4시간밖에 못 잤다. 척추에 염증이 생겼다. 그걸 모르고 서너 달 일하다 탈이 났다. 요추 1번과 흉추 12번이 곪아 터졌다. 2008년 7월 12일 입원해 15일에 수술을 받았다. 방광뼈를 잘라 척추에 이식하는 대수술이었다. 서울대병원에서 했는데, 1차 수술이 잘못돼 일주일 만에 재수술을 받았다. 그때 몸이 완전히 망가졌다. 지금도 왼쪽 허리 뒷부분이 다 패여 있다. 근육이 곪아 잘라낸 탓이다. 장애인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몸으로 어떻게 국정원 일을 하는가?

“원장이 명령을 내리는데 어떡하나. 돌아와서 굉장히 힘들게 일했다.”

-원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칼을 마구 휘두른 탓에 적이 많이 생겼다고 들었다. 그것이 파면사태의 원인이라는 얘기도 있다.

“죄송한데, 내 사건기록 다 체크해보라. 20여년 몸담으면서 청춘을 바친 조직이 사건을 조작했다. 당시 살생부니 해병대 훈련(삼청교육대)이니 하는 걸 기획한 자들이 TK(대구·경북)들이다. 정권이 바뀌자 그들이 충북 출신인 내게 뒤집어씌웠다. 지금도 그들이 원을 장악하고 행세한다.”

그는 자신을 음해한 모 간부가 2008년 살생부 작성을 주도하고, 현 정부 들어서도 살생부를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2008년, 2009년 내가 어떤 상태였는지 알면 내게 그런 질문 못한다. 워낙 몸 상태가 안 좋아 컴퓨터 작업도 못했다. 원장이 지시를 내릴 때 옆방 의자에 누워 있었다. 120도 정도 눕혀진 의자였다. 그런 사람이 무슨 살생부를 만들고 인사를 총지휘하나. 원세훈 원장에게 직접 물어보라. 내가 직권남용을 했는지.”

-지금 원 전 원장과의 관계는 어떤가?

“나를 보고 실세라 그러는데, 국정원에 돌아간 지 1년 만에 팽 당했다.”
이씨가 권력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것은 일부 간부들에 대한 미행과 감찰이 문제가 됐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원세훈 원장에 적대적인 세력을 색출하려는 의도였는데, 당사자들의 역공으로 거꾸로 이씨가 감찰실 조사를 받는 처지가 됐다. 그러자 원 원장은 이씨에게 부여한 특별 임무를 중단시켰다.

-사법적 절차는 다 끝났다.

“개인적 능력으로는 이걸 박근혜 정부에서 규명할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국장과 과장도 ‘나쁜 사람’이라고 쫓아내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 미르의 실체가 드러나지 않나. 이런 정부에서 뭘 조작하지 못하겠나. 내가 (직권남용을) 하지 않았다는 증거는 원내에 다 있다. 그런데 회사
에서 관련 자료를 법정에 제출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자료 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나.

“23개 항목에 대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는데 내주지 않았다. 개인적 문제인데도 보안을 이유로 거부했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한 가정의 생계가 위협받는 지경인데.”

-원세훈 원장에게 신임을 받고 중용된 건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일까?


“신임, 중용이라기보다 이용당했다고 봐야지. 나는 원장이 지시한 일을 수행했을 뿐이다. 그런데 원세훈은 재판 때 조금도 도와주지 않았다. 자기를 죽은 사람 취급해달라며. 내가 원장이라면 ‘그래, 내가 지시했다. 직원 잘못은 없다. 원장이 직원에게 지시한 게 무슨 잘못이냐. 위법한 지시는 없었다’라고 말해줬을 거다. 만약 조 부장이 평기자 때 동아일보의 인사권을 좌지우지했다고 한다면 사람들이 믿겠나. 국정원 조직이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그때 내가 5급이었다. 국정원 간부 수백 명 인사를 내가 어떻게 하나.”

이씨는 원세훈 원장의 신임을 받으며 4급으로 승진했다. 당시 사정을 잘 아는 국정원 관계자에 따르면, 이씨의 힘이 세긴 셌던 모양이다. 그의 말이 곧 원장의 뜻으로 읽혔기에 인사, 총무, 감찰 등 주요 부서 간부들이 그의 요구에 다 따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이씨가 강직한 면이 있다. 본인은 소신껏 했다고 하지만, 지나친 면이 있었고 그 탓에 적을 많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인사와 감찰을 좌지우지했다고 들었다.


“어떻게 좌지우지하나. 5급, 4급이. 만약 내가 그렇게 했다면 내 상급자들은 더 무거운 처벌을 받아야 하지 않겠나. 국정원 시스템은 서로 감시하게 돼 있다. 인사와 감찰도 서로 견제한다. 얼마나 허무맹랑한 얘기냐. 특정세력의 언론플레이다.”

그는, 자신은 삼청교육 프로그램에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내가 이 교육을 기획한 자에게 전화해 ‘해병대 프로그램 만들지 말라. 큰일 날 일이다. 교육생들 중에는 50대 이상 고령자도 많은데 그런 훈련을 받다 죽으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고 제동을 걸었는데도 그대로 밀어붙였다. 그가 모 실장을 거쳐 원장 결재를 받아 추진했다. 그런데 이게 내가 한 일로 꾸며졌다.”

-교육 이수자가 5기까지 있었다고 들었다.

“1, 2기는 2009년 4월, 12월에 입소했다. 그런데 1기만 세게 교육을 받았고 2기부터는 완화됐다. 부작용이 컸기 때문이다. 그해 10월 담당 과장이 바뀐 후 교육이 정상화됐다. 사람들은 왜 커리큘럼이 바뀌었는지 잘 모른다. 다만 인사처장은 안다. 내가 지속적으로 원장에게 건의해 원상회복시켰다는 걸.”

명단에 오른 직원들은 일정 기간 경기도 모처에 있는 교육원으로 출퇴근하며 다양한 교육을 받았다. 국정원 주변에 따르면 육체훈련의 목적은 모멸감을 안겨 스스로 옷을 벗게 만드는 것이었다.

‘해병대 교육’이라고도 불렸던 것은 해병대원들이 받는 강도 높은 육체훈련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교육 대상자들은 경북 포항 해병 부대로 가서 통나무 훈련 등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상암동 쓰레기장에서 온종일 폐기물 분류 작업을 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교육 의도와 달리 제 발로 나간 직원은 별로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교육 이수 후 ‘충성도’를 인정받아 복권되거나 중용된 사람이 적잖았다. 1기 수료생 중엔 현재 국내 파트 고위직 인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관계자의 지적이다.

“교육 대상자들은 죽을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고 열심히 훈련에 임했다. 원세훈이 실수한 것은, 삼청교육대 훈련을 시키지 말든가, 시켰다면 확실히 정리했어야 하는데, 나중에 일부 인사들을 다시 중용한 것이다. 그들이 지금 박근혜 정부에서도 잘 나간다.”

-교육 대상자들이 주로 노무현 정부 때 잘 나갔거나 비위사실이 있는 직원들이라고 들었다.

“내가 인사에 관여했다면 무슨 문서나 필적이 남았을 것 아닌가. 국정원은 전산정보의 대가들이 모인 곳이다. 그런데 그런 흔적이 없다. 왜? 그런 일을 안 했으니까. 국정원 인사시스템이 투 트랙이다. 1차 안이 올라가 승인되면 다시 정식 라인으로 결재가 올라간다. 인사 결제 라인이 6단계다. 거기에 감찰, 감사실이 감시한다. 인사안이 잘못되면 역으로 인사안 올린 사람이 조사를 받는다.”

그는 “내가 한 일은 원장의 특별 지시를 전달한 것뿐이다”라고 강조했다.

“원장은 누구에게나 지시할 수 있지 않나. 원세훈은 워낙 의심이 많아 한 채널만 쓰지 않았다. 기획조정실장, 감찰실장, 비서실장에게 지시하고, 내게 별도로 지시했다. 당시 원세훈은 국정원을 점령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김성호 전임 원장이 (국정원을) 제대로 개혁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국정원 개혁이란 것이 결국 이전 정부에서 잘나갔던 사람들을 쳐내는 것인가?


“내가 병원에 누워 있을 때 모씨가 김성호 원장 퇴출작업을 진행하고 살생부를 만들어놨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중에 보니 그 살생부 명단이 교육대상자 명단이더라. 대상자를 A급과 B급으로 나눴다. 그때 작업한 내용이 인사팀에 남아 있다. 척결대상 1호가 A급이었다.”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씹은 거다. 근무태만, 조직화합 저해 등으로. 물론 사유는 다 있다. 그때 내가 관련 자료를 다 봤다. 인사 관련 자료는 영구보관이다.”

-대상자들이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잘 나간 사람들인가?

“대체로 그렇다. 살생부 작업은 혼자 한 게 아니다. 특정 세력이 한 것이다.”

그는 ‘박영준 라인’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정부 실세였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같은 대학 같은 학과의 선후배 사이다. 하지만 그는 친분설을 부인했다.

-박영준 씨와 가까웠다고 들었다.

“박 차관과 사적으로 밥 먹은 게, 내가 서울시 출입할 때 한 번 정도밖에 없다. 과 선배지만 학교 다닐 때 알지도 못했다. 청와대 가서 만나기 전까지 교류한 적도 없다. 다 지어낸 얘기다.”

-인수위 파견은 누가 추천한 건가?

“박영준도 MB(이명박 전 대통령)도 아니다. 서울시 출입할 때 알고지낸 정보과 형사 2명이 있다. 이들과 인물검증팀장이 추천해 들어갔다.”

-원세훈 전 원장과의 인연은?

“그가 서울시 부시장 할 때 내가 서울시를 출입했다. 2002년 7월 MB가 시장으로 부임했고, 내가 8월부터 서울시를 담당했다. 2004년 7월 서울시 근무를 마친 후 경기지부로 전보됐다. 이후 원세훈은 대선 끝날 때까지 보지도 못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원세훈이 행정안전부 장관이 됐을 때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경찰 담당자가 장관 면담에 같이 가달라고 해서 만난 적이 있다. 서울시를 떠난 이후 다시 만난 건 그때가 처음이다.”

-원세훈 씨가 원장이 돼서 불러들인 건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아닌가?

“몸이 아파 못 들어가겠다고 세 번이나 거절했다. 해코지 당할까봐 들어갔다. 원장이 5급 하나 좌지우지하는 건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만큼 신뢰했다는 뜻 아닌가?

“나도 처음엔 신뢰인 줄 알았다. 나중에 보니 나를 이용한 거였다. 나 같은 하위직이 무슨 정무감각이 있겠나. 일만 하는 거다. 원장이 죽으라면 죽고 살라면 살고. 죽이라면 죽이고 살리라면 살리고.”

-이용했다는 건 정리할 사람들을 쳐내는 데 앞장서게 했다는 뜻인가?

“나를 방패막이로 삼은 거다. 지금 결과가 그렇지 않나. 이제야 느낀다. 아, 내가 이용당했구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일이라면 내가 했겠나. 메신저 역할은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다. 원세훈이 나서서 내가 잘못한 게 없다고, 자신이 지시한 거라고 한마디 해주면 되는데 안 해줬다. 내가 살든 말든 신경 안 쓰겠다는 것 아닌가. 자기만 살겠다는 거지. 지난해까지만 해도 (원세훈의) 부인이 도와줄 것처럼 말했는데 막상 2심 때 요청하니 안 해주더라.”

-증인 요청을 거절했나?

“증인 얘기는 꺼내지도 않았고 진술서 하나 부탁했는데 거절당했다. 그래서 더 자괴감이 들었다.”

-원세훈 원장 임기 후반기에 중용된 사람들 중 일부가 이 정부에서도 잘 나가나?

“그렇다. 그 세력이 그 세력이다. 2선이 1선으로, 1선이 2선으로 빠진 것뿐이다.”

-초기에 육군참모총장 출신 남재준 씨가 원장이 돼 말이 많았는데.

“남재준 이름도 꺼내지 말라. 그런 사람이 어떻게…. 조직관리를 엉터리로 했다. 국정원이라는 곳을 그런 시각으로 접근하면 안 되는데….”

-남씨에 대해선 호불호가 명확히 갈리지 않나.

“개혁에 대한 개념이나 방향을 모르더라. 원을 장악하고 나서 개혁을 해야 하는데, 군 출신 10여 명을 데리고 와 그들 말만 들었다. 그들 중 일부에게 1급 자리를 내주고 교육원 강사 시켜주고 차를 제공했다. 6․25 전사 강의가 많아 교육생들의 불만이 컸다.”

이씨는 “회사를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동아일보에 청춘을 바쳤는데 모략에 의해 쫓겨났다고 생각해보라. 나는 기관원의 자존심을 갖고 일했다. 신분도 철저히 감췄다.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아빠가 무슨 일 하는지 몰랐다. 사업하는 사람으로만 알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한 조직에서 쫓겨났다면 얼마나 충격이 크겠나.”

이씨의 주장대로라면 2심에서 새로운 증거가 나타나지도 않았는데 1심 판결이 뒤집혔다는 것이다.

-개인이 국가기관을 상대로 싸운다는 게 얼마나 힘드냐. 일부에서는 무모한 싸움을 한다고 비판하더라.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며. 얼마나 억울하면 그러겠느냐는 시각도 있지만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증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한 건가?

“인사라인에 있던 두 선배가 1심 때 법정에서 증언까지 해줬다. 도저히 그럴 수 없는 조직이라고. 그래서 내가 이길 수 있었던 거다.”

-2심에선 이를 인정하지 않았나.


“똑같은 자료이고 증거인데, 인정하지 않았다.”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한 건 아닌가.


“판결문에 아무런 언급이 없다. 말이 안 되는 게, 두 선배는 인사라인 고위 간부들이다. 원장, 기조실장 다음이다. 그들이 그런 사실이 없다고 증언했는데도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2심 재판부에 대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한심하고 원통하다”면서.

“세월이 지나면 다 밝혀질 것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체성을 잃어버렸다. 내가 진짜 그런 일을 저질렀다면 회사와 소송을 하겠나. 진짜 너무 억울하고 안 한 걸 뒤집어씌우니 싸운 거다. 한 일에 대해선 거짓말 못한다. 징계위원회가 열렸을 때 OOO 1차장에게 말했다. ‘당신들 이렇게 하지 말라. 왜 나한테 다 뒤집어씌우나. 이런 식으로 내쫓는다면 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소송할 수밖에 없다. 알아서 선처해달라. 원세훈이 한 일이라는 걸 알지 않나. 5급이 다 했다고 뒤집어씌운 게 창피하지도 않으냐’고. 감찰실에서는 해임으로 올렸는데, 남재준 원장이 대통령에게 상신할 때 파면으로 한 단계 올렸다고 들었다. 문체부 체육국장이나 체육과장 사건처럼 시간이 지나면 다 밝혀질 것이다.”

그는 “나를 조금이라도 생각해준다면 앞으로 연락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다 끝난 일이다. 마음 추스르는 일밖에 안 남았다. 다음에는 회사 얘기 안하겠다. 원세훈도 잊고 싶다.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들도 용서하려 노력한다.”

기자는 원세훈 전 원장에게 17개 문항의 질문지를 보냈다. 원 전 원장은 다음과 같은 짤막한 답변을 보내왔다.

“저도 할 말은 있지만, 전직 국가정보원장으로서, 또 제가 처한 현 처지에서 이OO 씨에 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이해를 바랍니다.”
국정원의 답변은 더 간단했다. 국정원 대변인실 관계자는 11개 항목의 질문지에 대해 전화로 답변을 통보했다.

“승소 판결 사실 외에는 확인해줄 내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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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엇갈린 판결>

“부당한 인사 있었다면 결정권자에게 책임 물어야”(1심)
“원장 지시라도 정상 업무절차 안 거쳤다면 직권남용”(2심)

국정원이 이씨를 징계하며 적용한 법규는 9가지나 된다. 하지만 핵심은 직권남용이고, 나머지 사유는 부차적이라는 느낌을 준다. 인사청탁 명목으로 모 직원에게 한번에 100만 원씩, 세 차례에 걸쳐 300만 원의 금품(100만 원은 상품권)을 받은 혐의가 그나마 눈에 띄는 비위사실이다. 그런데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이 중 2008년의 100만 원 수수는 징계 시효가 지나 징계 사유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씨는 “입원했을 때 위로금으로 받은 돈”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상품권을 받은 사실은 없다”라고 부인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이씨는 ‘원장의 지시를 받아 인사업무에 대한 조언이나 지침의 전달’ 업무를 맡았다. △인사 전산자료 열람권한을 부여받아 열람하고 △인사팀 보고서를 원장 결재 전에 미리 확인하고 △인사자료를 받아 초안 수정을 요구했다. 아울러 원장과 자신에 대한 음해성 소문을 낸 직원들을 조사해 원장 결재를 받아 인사 조치되도록 했다. 또한 일부 직원들에 대한 동향조사나 미행을 지시해 그 결과를 독자적으로 보고받았다.

파면 취소를 결정한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렇게 판시했다.

“원고(이씨)의 징계사유들은 모두 상급자인 원장이나 OOOO국장에게 그 결정권한이 있는 사항들이므로 원고가 위와 같은 행위를 했다는 사정만으로 곧바로 부당하게 인사에 개입했다거나 직권을 남용해 의무 없는 일을 강요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원고가 원장의 지시를 받아 인사업무 지침의 전달 업무 등을 담당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요구 또는 지시가 이뤄질 수 있고, 인사에 관한 결정권한이 있는 원고의 상급자인 OOOO국장은 원고의 요구 또는 지시가 원장의 지시가 맞는지 확인할 의무와 권한이 있다. 확인 결과 원장의 지시였다면 원고의 행위는 부당 인사개입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원장의 지시가 아니었다면 OOOO국장은 자신의 인사에 관한 권한을 행사하면 되는 것이다. 원고의 부당한 인사개입이 확인됐다면 상급자로서 또 인사권한자로서 원고의 행위를 감독하고 통제했어야 한다. 그럼에도 원고의 요구에 상응하는 인사가 이뤄졌다면 이는 그와 같이 결정한 결정권자에게 잘못이 있다. 또한 원고의 요구 또는 지시를 받은 각 인사담당자들로서는 그것이 부당하다면 그들에게 부여한 직무분장에 따라 이를 거부하고 적법하게 그 직무를 수행함이 옳다.”

반면 2심 재판부는 이씨의 행위를 직권남용으로 인정하고 파면이 타당하다고 판결했다.

“원고가 인사전산자료 열람권한이 없음에도 부정한 방법으로 열람권한을 부여받은 후 다른 직원의 신상기록을 열람하는 것은 규정에 위반되고 OO실 OO협력관의 직무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다.…설령 원고가 원장으로부터 인사업무에 관한 조언이나 지시사항의 전달 업무를 담당하면서 직원의 승진 및 보직 인사 시 그 적격 여부의 심사 업무를 통해 인사업무를 간접 지원하는 직무를 수행하게 됐다 하더라도 상급자인 OO실장에게 보고하고 결재를 받아 인사부서와 협의하는 등 정상적 업무처리 절차를 거쳤어야 함에도, 법령에 정한 기준을 벗어나 특정인에 관한 구체적인 보직 이동 등을 인사팀에 전달해 인사 실무자로 하여금 그와 같이 인사를 하도록 하는 것은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조성식 기자 mairso2@donga.com
#원세훈#국정원#남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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