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Opinion]낮잠 자는데 왜 돈을 쓸까?

  • 동아닷컴
  • 입력 2016년 10월 19일 10시 55분


코멘트

김용섭의 TREND INSIGHT



요즘은 낮잠에 돈 쓰는 게 트렌드다. 서울 여의도 CGV에선 1만 원이면 시에스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월요일에서 목요일, 오전 11시30분에서 낮 1시까지 점심시간의 낮잠을 파는 셈이다. 19세 이상 성인만 이용할 수 있는데, 잠이 잘 오라고 차도 한 잔 주고, 아로마 향과 힐링 음악, 거기다가 담요와 슬리퍼도 준다. 프리미엄관에서만 운영하는 서비스인데 이곳에는 등받이를 180도까지 젖힐 수 있는 푹신한 의자가 있다. 누가 이용할까 싶겠지만 직장인 밀집지역인 여의도에선 꽤 선호되는 서비스다.

과거 직장인들은 전날 과음하거나 야근해서 피곤하면 사우나에 갔다. 여의도에는 점심 때 노래방이나 단란주점 등이 낮잠이나 흡연용으로 룸을 빌려주기도 하는데, 직장인 밀집지역에선 오래전부터 이런 틈새 비즈니스가 있었다.

이젠 몰래 낮잠 자는 게 아니라 당당하게 자는 시대다. 서울에도 수면카페가 2014년 처음 등장한 이후 계속 늘어나더니 이젠 서울 전역에 50여 개나 된다. 일본에선 1990년대부터 유료 수면카페가 있었다. 유료 수면방(수면카페)은 뉴욕, 런던, 파리, 도쿄 등지에선 일찍이 자리 잡은 생활밀착형 비즈니스다. 이제 한국에서도 확산될 조짐이 크다.

올해 인천공항에 수면캡슐이 도입됐다. 공항에 수면캡슐이 설치된 건 1979년 오사카 공항이 시초라 할 수 있다. 이제 아부다비 공항, 암스테르담 스키폴 공항, 런던 히드로 공항, 헬싱키 공항, 두바이 공항, 하노이 공항 등 전 세계 주요 공항에는 시간 단위로 요금을 내고 빌릴 수 있는 수면 캡슐이 있다.

많은 기업이 낮잠에 주목한다. 애플, 페이스북, 나이키, 구글, P&G, VITRA, Cisco Systems, BASF, OPEL.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IT기업부터 스포츠패션, 생활용품 제조와 가구, 종합화학, 심지어 자동차기업까지 포함된 이들 기업들은 사내에 낮잠용 수면시설을 설치한 기업이다. 기업이 직원들의 낮잠을 위해 배려하고 투자하는 것이 직원 복지이며 동시에 업무 생산성과 효율성을 높인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나이키에는 낮잠을 잘 수 있는 Quiet Room이 있고 페이스북, 구글, P&G, Cisco Systems는 수면의자 전문회사인 메르토냅(Metronaps)이 만든 수면의자 에너지팟(Energy Pod)을 도입했다. 디자인 가구회사 비트라(VITRA)는 낮잠용 침대인 데이베드(daybed)를 직접 만들어 제품화하기도 했다.

현대화, 산업화가 되면서 낮잠 자는 문화는 많이 사라졌다. 그나마 유지되던 스페인에서도 시에스타 폐지론이 계속 나온다. 낮잠 자는 문화가 사라진 직장에서 직장인이 졸음을 쫓기 위해 선택하는 최선의 방법은 커피를 마시는 것이다. 전 세계에서 커피산업이 지난 20년간 가장 크게 성장한 산업 중 하나로 꼽히는 것과 현대화된 직장 문화에서 낮잠 문화가 사라진 것이 전혀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과연 낮잠은 불필요한가.

미국 수면학회와 항공우주국(NASA) 등의 실험 연구를 보면 낮잠을 20~30분 잤을 때 집중력과 업무수행 능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NASA 연구진은 ‘단지 26분의 낮잠으로 업무 수행 능력은 34%, 집중력은 54% 늘어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른바 ‘NASA Nap 26’은 ‘파워 낮잠(Power Nap)’이란 의미로 미국 기업들이 주목하는 낮잠 유형으로 자리 잡았다. 왜 세계적인 기업들이 직원들의 낮잠을 위해 투자하는지 우리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낮잠 시장의 성장은 전체 수면산업의 성장으로도 이어진다. 그만큼 수면 부족, 불면증, 수면장애 등이 많다는 얘기다. 아울러 이를 해결하려는 수면경제, 즉 슬리포노믹스(sleeponomics)가 점점 중요해진다.

미국의 수면산업 시장규모는 2011년 230억 달러를 돌파했고, 2015 중국수면지수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수면산업 시장규모는 2014년 기준 360억 달러다. 한국에서도 수면산업은 급성장세인데, IT, 침구, 의료, 식음료 등 수면산업은 업종 경계가 없을 정도로 폭넓다.

삼성전자가 ‘IFA(세계 최대 가전 전시회) 2015’에 선보였고 영국에서 출시한 슬립센스는 사용자의 수면 상태를 실시간 분석해 숙면을 도와주는 IoT 기반의 기기다. 침구브랜드 이브자리는 2014년부터 ‘슬립앤슬립’이라는 수면컨설팅 사업을 하는데, 출시 1년여 만에 74개 매장을 열었고 계속 확대한다. 스웨덴의 수제명품 침대 브랜드인 해스텐스는 수천만 원대 침대를 파는데도 국내 판매량이 증가추세다. 고가 기능성 베개 시장과 침구 시장도 뜨겁게 성장한다. 요즘 소비자들에게 낮잠, 그리고 수면은 중요한 욕망이자 라이프스타일의 결핍 요소인 것이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미국, 중국, 그리고 유럽에 이르기까지 수면산업 성장은 전 세계적인 일이다. 그만큼 우리가 잠에 대한 불만과 결핍이 많다는 얘기다. 참고로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동시간은 2위(1위를 고수하다가 근소하게 밀려남)지만 수면시간은 꼴찌다. 즉 가장 잠을 안 자고 일만 많이 하는 나라다. 낮잠 트렌드와 수면 비즈니스가 번창하는 데 이만큼 좋은 나라가 또 있을까?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 trendhitchhiking@gmail.com

*김용섭은 TREND Insight & Business Creativity를 연구하는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이며, 저서로는 <라이프트렌드 2016: 그들의 은밀한 취향> <라이프 트렌드 2015: 가면을 쓴 사람들> <라이프 트렌드 2014: 그녀의 작은 사치> <완벽한 싱글> <라이프 트렌드 2013: 좀 놀아본 오빠들의 귀환> <트렌드 히치하이킹> 등이 있다.
#낮잠#cgv#시에스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