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전투준비태세 명령”… 美-中 신냉전 격랑속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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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남중국해 영유권’ 패소]
中 영유권 근거로 내세운 ‘9단선’ 법적-역사적 인정 못받게 돼
美-中 패권다툼에 국제사회 양분… 美 싱크탱크 “中 반발 거칠어질 것”

12일 네덜란드 헤이그 상설중재재판소(PCA) 판결은 필리핀의 핵심 주장을 대부분 수용해 중국에 완패를 안겨줬다. 미국 워싱턴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보니 글레이저 선임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필리핀이 대승(major victory)을 거뒀다”며 “중국의 반발이 상당히 거칠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한 법률 전문가도 이날 로이터통신 인터뷰에서 “이번 판결은 중국에 엄청난 법률적 타격”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외교부는 이날 성명에서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갖고 있는 영토 주권과 해양의 권리와 이해 등은 어떤 상황에서도 판결로 영향받지 않는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이번 판결에 중국이 강력히 반발하면서 갈등 해결보다는 오히려 문제가 더욱 증폭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과 중국을 양축으로 하는 두 진영 간 기세 싸움도 격화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일본과 유럽연합(EU)을 끌어들여 중국의 판결 수용을 압박하고, 중국은 러시아 등과 손잡고 미국에 맞서는 미국·일본 대(對) 중국·러시아의 ‘신냉전’ 국면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 간의 대립전선은 한반도와 일본, 대만, 동중국해에 이어 남중국해까지 서태평양을 위아래로 가로질러 형성되고 있는 형국이다.

주요 2개국(G2)의 마찰은 서태평양을 위아래로 가로지르며 길게 형성돼 있다. 한반도에선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와 북핵 문제로 미중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사이 일본에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참의원 선거에서 개헌에 필요한 의석을 확보하고 군사대국화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한국과 일본을 미국의 군사동맹국으로 인식하는 중국으로선 한반도와 일본에서 점점 불리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또 대만에선 친미 성향의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정권이 들어서 미국 및 일본과의 관계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미중이 남중국해 패권을 놓고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들어가면서 우발적인 군사 충돌 가능성도 높아졌다. 미중은 PCA 판결을 앞두고 남중국해에서 각각 항공모함과 구축함, 잠수함 등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무력시위를 벌였다. 특히 필리핀 동쪽 해역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미 태평양함대 소속 존 C 스테니스와 로널드 레이건 등 항공모함 2척이 남중국해의 중국 인공섬 부근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벌일 경우 중국이 군사적으로 맞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중화권 매체인 보쉰(博迅)은 12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최근 인민해방군에 전투준비 태세를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남중국해에서 무력도발에 나설 경우 중국군에 일전불사할 각오를 다지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중국이 국제법정의 판결을 거부해 국제사회에서 대국으로서의 이미지에 손상을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펑(朱鋒) 난징(南京)대 교수는 “국제사회의 이미지를 해칠 수 있지만 국가 이미지와 국가의 주권 및 해양권리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판결에서 중국이 가장 아픈 대목은 PCA가 중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 근거인 9단선(九段線)이 법률적 근거가 없다고 명백히 한 대목이다. 중국은 2000년 전 고문헌에도 등장하고 줄곧 중국 정부의 관할 아래 있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9단선’ 설정으로 선포된 권리가 그 후에 나온 유엔해양법협약으로 제한될 수는 없다는 논리를 폈지만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또 중국이 무력대치 끝에 필리핀을 밀어내고 2012년 4월 8일부터 실효 점유 중인 곳으로 양국 영유권 분쟁의 핵심 대상인 스카버러 모래톱(중국명 황옌다오·黃巖島)에 대해서도 완패했다. PCA는 “중국이 필리핀의 전통적인 어업권에 개입해 필리핀의 주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스카버러가 필리핀의 배타적경제수역(EEZ) 내에 있다는 주장을 받아들인 것이다.

더욱이 중국이 2014년부터 난사군도의 7개 암초를 매립해 항공기 활주로 등을 세우고 5곳에는 등대를 설치해 가동하는 등 ‘영토 주권화’ 작업을 가속화했으나 이번에 송두리째 법적 근거를 잃게 됐다.

한편 이번 판결로 마잉주(馬英九) 전 대만 총통이 올 1월 비행기를 타고 시찰하며 관할권을 주장했던 타이핑다오(太平島·영문명 이투 아바)에도 불통이 튀었다. 타이핑다오는 난사군도에서 가장 큰 섬으로 1952년부터 대만이 실효지배 중인 곳이지만 이번 판결에서 유엔해양법상의 섬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대만 총통부는 이날 저녁 PCA의 결정이 나온 직후 배포한 성명에서 중재 판결이 대만에 법률적 구속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밝혔다.

 


:: 9단선(九段線) ::


남중국해 주변을 따라 U자형으로 그은 9개의 점선으로 중국이 남중국해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근거다. 남중국해 전체 해역의 90%가 이 안에 들어간다. 국민당 정부가 1947년 남중국해에 ‘11단선’을 그었고, 신중국 수립 이후인 1953년 중국이 하이난(海南) 섬과 베트남 사이의 2개 선을 줄여 9단선으로 바꿨다. 중국은 공식 지도에 이 선을 포함시키고 있으나 남중국해 주변국들은 이 선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 워싱턴=이승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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