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 팔찌’ 에루페, 한국서 뛴 6개대회 모두 우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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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7회 동아마라톤]
한국이름 ‘오주한’… 국내 최고기록 달성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가 태극기 무늬가 새겨진 팔찌(점선)를 차고 우승 소감을 말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가 태극기 무늬가 새겨진 팔찌(점선)를 차고 우승 소감을 말하고 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결승선을 통과한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28)의 오른 손목에는 태극기 무늬의 팔찌가 끼워져 있었다. 입국하던 16일 공항에서 만났을 때도 에루페는 같은 팔찌를 차고 있었다. 아직 가슴에 태극기를 달지는 못했지만 에루페에게 한국은 이미 ‘또 하나의 조국’이 된 지 오래다.

2016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7회 동아마라톤에서 국내 개최 대회 최고 기록으로 우승한 에루페는 “우승도 기쁘지만 무엇보다 최고기록을 깨서 기쁘다. 올림픽에 갈 기회를 얻게 된다면 더욱 기쁠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재 세계랭킹 12위인 에루페는 다음 목표를 묻는 질문에 “리우 올림픽 메달”이라고 답했다.

에루페와 태극기의 인연은 오래됐다. 2011년 경주국제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처음으로 방문한 한국에서의 생활에 크게 만족한 에루페는 2012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대회 신기록으로 우승한 뒤 본격적인 귀화를 준비했다. “한국에서 마라톤 신기록을 세울 수 있어 너무 기뻤다”는 그는 “어린 한국 마라토너들을 가르치며 국가대표 코치로 뛰고 싶다”는 꿈도 키우고 있다.

에루페는 다음 달 꿈에 그리던 한국 국적 취득을 위한 심사를 받는다. 1월 ‘에루페의 복수국적 취득을 위한 특별 귀화 신청안’을 심의했던 대한체육회는 최종 결정을 보류했다. 2012년 말 도핑테스트에서 적발된 에루페가 당시 치료 목적으로 약물을 사용한 게 맞는지 확인할 자료가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에루페의 한국 대리인 오창석 백석대 스포츠과학부 교수는 “말라리아 예방주사가 문제가 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를 준비했다”며 “징계 종료 후 3년이 지나야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국가대표 선발 규정도 2014년 7월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2012년 말 징계를 받은 에루페에게는 문제 될 게 없다”고 말했다. 오 교수는 “약물에 의존해 운동을 했다면 이렇게 빨리 제 기량을 회복할 수 없다”며 에루페의 결백을 주장했다.

에루페는 오히려 의연했다. 국적 취득이 지연됐다는 소식을 듣고도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는 에루페는 “실력으로 한국 국적을 딸 것”이라고 말했다. 2014년 말 2년의 대회 출전 금지 징계가 풀린 에루페에게 “돈을 더 줄 테니 계약하자”는 에이전트가 여러 명 접근했다. 케냐육상연맹에서는 모든 선수의 ‘1년 계약’이 원칙이기 때문에 다른 에이전트와 계약을 해도 전혀 문제될 게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에루페의 선택은 또다시 한국이었다. 여기엔 오 교수의 체계적인 훈련프로그램이 한몫했다. 에루페는 “케냐에서는 과도한 훈련으로 많은 선수들이 부상당하는 문제가 있다. 하지만 오 교수는 부상 예방을 위한 몸 관리를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100% 신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청양군체육회에 입단한 에루페를 응원하기 위해 충남 청양에서는 이날 군수를 포함해 50여 명이 대절한 버스를 타고 잠실종합운동장에 왔다. 이에 화답하듯 에루페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청양군 깃발을 들고 운동장을 돌았다. 이석화 청양군수는 “청양군민들 모두 청양군의 명예를 높여준 에루페의 귀화를 바란다. 귀화만 된다면 에루페의 활동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일주일간 청양군 정산면에 있는 숙소에서 회복 훈련을 할 예정인 에루페는 27일경 케냐로 돌아갈 예정이다. 오 교수는 한국 마라톤 선수들을 케냐로 데려가 에루페와 함께 훈련하는 방안을 구상 중이다. 에루페는 “한국 선수들과 함께 훈련할 수 있다면 당연히 환영이다. 우리 집에도 초대하겠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임보미 기자 bom@donga.com
#마라톤#동아마라톤#서울국제마라톤#에루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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