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5억에 팔린 이우환 작품 가짜 의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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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말 경매 ‘점으로부터 No. 780217’ 논란

지난해 12월 K옥션 정기 경매에서 이우환 화백의 1978년 작 ‘점으로부터 No. 780217’이라고 등록돼 4억9000만 원에 낙찰된 그림(맨위 사진). 그러나 경찰과 감정업계의 조사 결과 첨부된 진위 감정서(가운데 사진)가 명백한 위조문서임이 밝혀졌다. 맨아래 사진은 발행처인 한국화랑협회가 제출한 같은 접수번호의 진본 감정서. 감정 대상은 김기창 화백의 ‘청록산수’다. K옥션 한국화랑협회 제공
지난해 12월 K옥션 정기 경매에서 이우환 화백의 1978년 작 ‘점으로부터 No. 780217’이라고 등록돼 4억9000만 원에 낙찰된 그림(맨위 사진). 그러나 경찰과 감정업계의 조사 결과 첨부된 진위 감정서(가운데 사진)가 명백한 위조문서임이 밝혀졌다. 맨아래 사진은 발행처인 한국화랑협회가 제출한 같은 접수번호의 진본 감정서. 감정 대상은 김기창 화백의 ‘청록산수’다. K옥션 한국화랑협회 제공

이우환 화백
이우환 화백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원로화가 이우환 화백(80·사진)의 작품을 가장한 위작이 최근 국내 메이저 경매에서 약 5억 원에 거래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문제의 그림은 이 화백의 1978년 작 ‘점으로부터 No. 780217’로 지난해 12월 15일 서울 강남구 K옥션에서 열린 정기 겨울경매 매물로 등록돼 4억9000만 원(수수료 포함 5억7085만 원)에 개인 컬렉터에게 낙찰됐다.

하지만 7일 복수의 미술품감정업 관계자는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경매 직후 이 그림을 압수한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의 의뢰를 받아 5일 오후 감정을 진행한 결과 매물에 첨부된 감정서가 틀림없는 위조문서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수사대 관계자도 이날 “해당 그림을 조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당 그림의 감정서에 기재된 접수번호는 ‘20010616’. 그러나 표기된 발행 시점(2001년)에 국내 유일의 감정서 발행처였던 한국화랑협회에 보관된 사본을 전수 확인한 결과 이 접수번호는 김기창 화백(1913∼2001)의 ‘청록산수’에 부여된 것이었다. 감정위원들이 친필 서명한 감정서 수기(手記) 원본인 ‘감정결정서’ 역시 김 화백 작품 것으로 확인됐다. 한 화랑협회 관계자는 “경매에 나온 그림은 진품이라 보기에 완성도와 보관 상태가 불량하고 캔버스 천을 고정한 방식이 조악해 매물 검토 과정에서 이미 진위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고 했다.

이 화백은 재료를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일본 미술운동 모노하(物派)와 한국 단색화단을 주도했다. 경매 최고낙찰가 작품은 2012년 서울옥션 홍콩경매에 나온 1977년 작 ‘점으로부터’(21억 원). 2005∼2014년 국내 경매사 거래실적 집계에서 낙찰총액 1위(약 712억 원)에 오른 인기 작가라 큰 파장이 예상된다. 경찰은 지난해 10월 이 화백의 그림을 흉내 낸 위작을 대량 제작해 유통시킨 혐의로 서울 종로구의 한 화랑을 압수수색하고 화랑 대표 김모 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한 미술평론가는 “위작 거래 소문이 돈 뒤부터 감정서가 없는 이 화백 작품은 아예 거래 성사조차 어려워졌다. 경매에 내놓고자 거짓 감정서를 만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갤러리 또는 개인 컬렉터가 직접 거래하는 비공개시장 규모가 경매시장과 맞먹는 것을 감안하면 가짜 감정서가 붙은 문제의 그림이 위작으로 최종 판명될 경우 미술계 안팎에 번질 충격이 상상을 초월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옥션에 이은 국내 2위 규모 경매사인 K옥션에서 가짜 감정서가 붙은 그림이 버젓이 거래됐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경매시장의 신뢰도 역시 큰 타격을 입게 됐다.

2011년부터 위작 유통 의혹이 불거졌지만 이 화백은 “내 작품은 위작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2014년 프랑스 파리 베르사유궁 초대전을 앞두고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작품 가격을 떨어뜨리려는 세력이 있는 듯하다. 내 작품은 고유의 호흡으로 그리기에 모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공립미술관 관계자는 “이 화백 작품을 흉내 낸 위작에 대한 경찰 수사가 오래전부터 진행되고 있지만 가격 급락을 우려한 컬렉터와 대형 갤러리의 침묵, 이 화백 본인의 비협조로 진실 규명이 어려웠다”며 “위작 수사는 작가의 협조가 중요한 만큼 이 화백이 보다 적극적으로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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