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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부가세 면제 고속버스 “요금 그대로”… 소비자만 봉인가

입력 2015-06-30 03:00업데이트 2015-06-30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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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가계부 내가 챙긴다]
[4부 : 고장난 세금제도]<1>탈선하는 부가가치세
부가가치세 감세 체계에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부가세는 세수 규모가 연간 56조 원에 이르는 국가 재정의 최대 수입원이기 때문이다. 부가세에 누수가 생기면 소득세, 법인세 등 다른 세금에까지 영향을 미쳐 세정(稅政)이 전반적으로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 세무서들은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는 부가세 신고를 근거로 다른 세금이 제대로 신고됐는지 검증하기 때문이다. 세금 전문가들은 “고장 난 부가세 감세 체계를 방치하면 나중에는 세정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원인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찾기 힘들어져 적절한 처방을 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 부동산 업자부터 성형외과까지 탈세


올 들어 주택 거래가 늘면서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잘나가는 중개업자’들이 중개수수료를 실제보다 적게 신고해 부가세를 탈루하는 경우가 부쩍 늘고 있다.

자영업자인 박상욱(가명·49) 씨는 올해 강남의 한 아파트를 매입한 뒤 중개수수료 500만 원을 중개업자에게 건넸다. 중개업자는 “수수료로 450만 원만 받았다고 세무서에 신고할 테니 눈감아 달라”고 말했다. 영업이 잘돼 일반 과세자로 분류돼 있어 수수료의 10%를 부가세로 내야 하는 이 중개업자는 부가세를 적게 낼 요량으로 수수료를 낮춰 신고하고 있었던 것이다. 박 씨는 “수수료 축소 신고를 눈감아 주지 않으려면 중개수수료로 50만 원을 더 달라고 해 어쩔 수 없이 동의했다”고 말했다.

건설사 대표 정기호(가명) 씨는 2012년 8월 인천에서 오피스텔 건물을 짓다가 자금난으로 부도를 냈다. 이때 한 회계사무소의 사무장이 “수억 원대의 부가세를 환급받게 해 줄 테니 그중 일부를 수수료 명목으로 달라”고 제안했다. 현행 부가세법에 따르면 회사가 폐업해 기존 거래처에서 받아야 하는 외상 대금을 받을 수 없게 되면 이미 낸 부가세를 돌려받을 수 있다. 하지만 정 씨는 자금 회수 가능성이 남아 있어 부가세 환급 대상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 회계사무소 측은 세무서 공무원과 짜고 5억 원이 넘는 부가세를 환급받도록 해주고 수수료를 챙겼다.

‘한류 병원’으로 유명한 서울의 A성형외과는 홈페이지 정보 중 수술비 항목을 아예 뺐다. 2011년 7월부터 코 수술, 주름살 제거술, 사각턱 교정술 등 미용 목적의 성형수술에 대해 단계적으로 부가세가 부과되자 이 병원 원장은 매출을 줄여 신고하려고 수술비를 비공개로 돌린 것이다. 실제 이 병원 대기실에는 ‘현금 결제 시 부가세 할인’이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다. 김모 씨(30·여)는 “올 들어 서울 강남구의 한 성형외과에서 코 필러 시술을 받고 시술비 147만 원을 전액 현금으로 결제했다”고 전했다.

○ 소비자는 면세 효과 못 누려

이처럼 부가세 탈세가 심각하다 보니 부가세 감면 혜택은 국민이 체감하기도 전에 공중에서 사라지고 있다. 업체들이 신제품 개발 등 여러 이유를 대며 소비자 가격을 다시 올리기 때문이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고 양육 부담을 덜어 주기 위해 2009년 1월 분유와 기저귀에 대해 부가세를 면제한 데 이어 2012년 2월에는 산후조리원 이용 요금에 매기는 부가세를 없앴다.

통계청의 분유 가격 지수를 보면 2008년 말 95.6에서 2009년 1월 93.1로 떨어졌다가 3월에 98.4로 급등한 뒤 상승세를 유지하고 있다. 유명 업체의 분유 가격도 이와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분유 업계 관계자는 “부가세 면제 이후 시차를 두고 곡물 등 원재료와 포장재 가격이 오르는 등 제품 가격 인상 요인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산후조리원의 경우 2012년 2월 부가세 면제 이후 서울 시내 120개 업체 가운데 48개 업체만 요금을 내렸다. 나머지 72개 업체는 요금을 동결하거나 인상했다. 일부 산후조리원은 부가세 면제 전 가격을 올렸다가 부가세 면제 후 가격을 내리기도 했다.

일반 고속버스 요금에 붙는 부가세는 올해 4월부터 면제됐지만 아직까지 요금은 그대로다. 버스 업계는 “요금을 인하하지 않는 대신 앞으로도 요금을 올리지 않고 동결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업체들은 부가세가 면제될 때는 제품 가격을 잘 내리지 않으려 하는 반면 부가세가 새로 부과될 때는 즉각 가격을 올리고 있다.

자동차운전학원 교습비는 부가세가 부과되기 전부터 가격 인상 방침을 소비자에게 알리다가 2012년 7월 부가세가 부과되던 시점에 교습비를 바로 10% 올렸다. 서울 A자동차학원의 1종보통 면허 교습비는 2012년 6월 73만 원에서 7월 80만3000원으로 인상됐다. 최근 1종보통 교습비가 45만∼50만 원 선으로 떨어졌지만 이는 운전면허 간소화 조치로 도로주행 교육시간 등이 줄어든 데 따른 것으로 시간당 교습비는 그대로다.

애완동물 진료비도 부가세 신규 부과 당시인 2011년 7월부터 10% 올랐다. 특히 개 척수수술비는 2011년 6월 150만 원에서 같은 해 7월 165만 원으로 인상돼 애완견 주인들의 부담이 커졌다. 김익래 성균관대 경영대 초빙교수는 “정치권이 유권자의 표를 의식해 부가세 면제 대상을 추가하는 관행을 뜯어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도움말 주신 분들(가나다순)

△김기흥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장 △김동열 현대경제연구원 정책조사실장 △김성태 KDI 거시경제연구부 연구위원 △김승래 한림대
경제학과 교수 △김유찬 홍익대 세무대학원 교수 △김익래 성균관대 초빙교수 △김재진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조세연구본부장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박완규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 △반장식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성명재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 △유경문 서경대 금융경제학과 교수 △임주영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
△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손영일·홍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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