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킬로이-스피스 체제 흔든 ‘아시아의 호랑이’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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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회 평균 비거리-그린 적중률 1위… 쇼트게임도 능해 기복없는 플레이
US오픈 등 메이저 출전자격 얻어… 영어-중국어 능통, 스타 상품성까지

“아시아의 소년이 유럽의 큰 대회에서 우승해 보기 좋았다. 정말 견고한 플레이를 펼쳤다. 그는 아주 젊고 이제 큰 자신감을 얻었다. 미래의 스타가 될 수 있다.”

유러피안투어에서 통산 21승을 거둔 스페인의 노장 골퍼 미겔 앙헬 히메네스(51)는 BMW PGA 챔피언십에서 자신에게 6타 차 준우승이라는 완패를 안긴 안병훈(24)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안병훈은 미국과 함께 세계 양대 투어라는 자존심이 강한 유럽 무대에 강렬한 인상을 심으며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스포츠전문 채널 ESPN 영국은 “세계 1위(로리 매킬로이)는 일찌감치 예선 탈락으로 집에 갔지만 그에 못지않은 기량을 지닌 새 얼굴(안병훈)의 등장에 마지막 날 2만5000명의 팬이 환호했다”고 보도했다.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안병훈의 기량은 매킬로이와 올 마스터스 우승자인 세계 2위 조던 스피스(미국)로 압축되던 차세대 골프 황제 경쟁 구도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1∼4라운드 동안 안병훈의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는 294.6야드로 전체 출전 선수 가운데 1위였다. 4라운드 12번홀(파5·531야드)에서는 5번 아이언으로 그린을 공략해 아쉽게 앨버트로스를 놓친 뒤 가볍게 이글을 낚았다. 키 187cm에 몸무게 87kg의 건장한 체격인 그는 탁구 선수 출신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섬세한 감각으로 쇼트게임에도 능하다. 이번 대회 그린 적중률은 85%로 역시 1위였고, 라운드당 평균 퍼팅 수도 28.75개(공동 12위)로 톱클래스 수준이었다. 나흘 동안 4번홀(파5)과 12번홀(파 5)에서 버디 7개와 이글 1개로 9타를 줄였다. 일관된 코스 매니지먼트가 없었다면 적어내기 힘든 스코어였다. 올해 프레지던츠컵에서 국제연합팀 단장인 닉 프라이스는 안병훈을 지켜본 뒤 “정말 놀라운 우승이다. 이런 큰 대회에서 압박감을 이겨내고 나이답지 않게 차분하고 침착했다”고 평가했다.

올 시즌 유러피안투어에서 안병훈은 상금 3위까지 뛰어올라 상금 1위 매킬로이를 쫓고 있다. 평균 타수에서도 매킬로이가 1위(69.33타), 안병훈이 3위(69.69타)다. 안병훈은 2009년 한국오픈 1, 2라운드에서 매킬로이와 동반자가 됐었다. 당시 안병훈은 중간합계 11오버파로 예선 탈락한 뒤 자신보다 14타를 덜 친 매킬로이와 휴대전화 번호를 교환하기도 했다. 그랬던 안병훈이 어느덧 매킬로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우즈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어린 나이에 그린재킷을 입은 스피스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상금 랭킹과 평균 타수 1위를 달리고 있다. 드라이버 비거리는 안병훈, 매킬로이보다 10야드 넘게 덜 나가지만 라운드당 평균 퍼팅 수가 2개 정도 적다. 비거리의 열세를 정교한 퍼팅 감각으로 만회하고 있는 것이다.

매킬로이가 유럽을 대표하고 스피스가 미국의 상징이 됐다면 안병훈은 아시아의 간판으로 떠오를 상품성까지 지녔다. 한국에서 태어난 안병훈은 학창 시절 미국 유학을 떠나 영어에도 능통하며 중국 탁구 대표 출신 어머니 자오즈민 씨의 영향으로 중국어도 가능하다. 이 같은 언어구사 능력은 골프 거대 시장으로 떠오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자신의 가치를 더욱 끌어올릴 수 있다.

안병훈은 이번 우승으로 US오픈과 브리티시오픈 등 메이저 대회 출전 자격을 얻었을 뿐 아니라 한층 높아진 위상으로 전 세계 주요 특급 대회에도 출전할 수 있게 됐다. 그만큼 안병훈이 매킬로이, 스피스와의 맞대결을 통해 자신의 진가를 드러낼 기회가 늘어난 것이다. 안병훈은 “한국 여자골프는 세계 정상 수준이다. 한국 남자골프도 명함을 내밀게 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안병훈은 28일 북아일랜드에서 개막하는 매킬로이 주최의 유러피안투어 아이리시오픈에 출전한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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