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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투자자 찾아 수십곳 순례… “3년내 회수 의문” 번번이 퇴짜

입력 2015-03-10 03:00업데이트 2015-03-10 0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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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뒤처진 사물인터넷 경쟁력]
본보 입수 ‘액센츄어 보고서’… “한국, IoT 환경 중 사업기반이 가장 취약”
인터넷 시대를 지나 사물과 사물, 사물과 인간이 연결돼 소통하는 사물인터넷(IoT)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IoT 기술을 통해 이용자는 스마트폰으로 제3의 세계를 체험하고(삼성전자의 가상현실 기기인 기어VR·위쪽), 몸에 부착한 센서로 로봇을 움직이는 등(SK텔레콤의 5세대 통신 시연·아래쪽)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동아일보DB
지난해 5월 창업한 ‘뉴로게이저(NEUROGAZER)’는 기술 기반 스타트업이다. 미국 예일대 신경생물학·심리학과 이대열 교수(49)가 한국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 일해 온 동생 이흥열 씨(47)와 함께 회사를 세웠다. 뉴로게이저는 자기공명영상(MRI)으로 뇌를 찍어 분석하는 기술을 가진 회사다.

이 교수는 20여 년 동안 연구해 온 뇌 과학 분야의 성과를 실생활에 적용시켜 보고 싶다는 바람으로 스타트업 창업을 결심했지만 아직 이렇다 할 투자를 받지 못했다. 지금까지 40여 곳의 벤처캐피털 및 에인절투자자 등과 200여 차례 만났지만 선뜻 투자를 결정한 곳이 없었다.

“IoT 시대에 뉴로게이저가 분석한 뇌 정보가 사물들과 연결되면 다양한 비즈니스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해도 “기술이 너무 어렵다”라든가 “3년 이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는 답변만 들었을 뿐이다.

○ IoT 기술 있어도 투자받기 어려워

뉴로게이저는 한국 스타트업계 생태계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최근 스타트업 열풍으로 기업가정신 교육 프로그램 등 양성 과정 및 초기 투자사가 많이 생기고 있지만 IoT 시대의 동력이라 할 수 있는 기술 기반 벤처기업이나 하드웨어 제조 기업은 여전히 투자자를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흥열 뉴로게이저 대표는 “한국에는 뉴로게이저와 같이 장기적 연구 및 투자가 필요한 기술 기반 스타트업에 투자할 투자자가 없다”며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한 스타트업에 ‘3년 이내 사업성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마술을 부리라는 것과 같은 말”이라고 말했다.

액센츄어가 주요 20개 국가의 IoT 산업 환경을 분석한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IoT 시대 역량 중 가장 취약한 영역으로 ‘사업기반’(14위)이 꼽혔다. 사업기반 영역은 각 국가가 IoT 시장 확대를 위한 기술·제도적 기반을 얼마나 균형적으로 갖췄는지 평가하는 지표다.

익명을 요구한 하드웨어 기반 스타트업 대표 A 씨는 투자자나 지원기관이 하드웨어 제조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털어놓았다. A 씨는 “IoT 관련 프로토타입(시제품)을 만들기 위해 최소 2억 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데, 그 2억 원을 마련하기 위해 투자자를 찾아가면 ‘프로토타입부터 가져오라’고 하니 답답한 노릇”이라고 말했다.

○ 창업 생태계 불균형… 혁신 동력도 취약

한국은 ICT 수준에 비해 창업 관련 생태계도 불균형한 것으로 나타났다. 혁신적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초기 창업자들이 개발 및 운영 자금을 더 쉽게 구할 수 있어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실패 가능성이 낮은 소프트웨어 관련 아이디어에만 투자가 몰린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내 벤처 생태계는 벤처업체가 3만 개를 넘어설 만큼 양적으로는 성장했지만, 기술 기반이나 하드웨어 제조 벤처업체 등에는 투자가 빈약하다는 것이 벤처업계의 불만이다. 한국은 ‘혁신을 위한 동력’(13위)도 취약하다. 이 영역은 △정부 기업 대학 등의 연구개발(R&D) 활동 △기업가 정신을 존중하는 사회 분위기 △특정 영역에 전문화된 지원 기관 마련 등 새로운 기술로부터 제3의 비즈니스 혁명을 창출할 수 있는 국가별 역량을 평가하는 지표다.

한국의 산학협력을 통한 R&D 성과가 선진국보다 낮은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기업은 제품이나 서비스 R&D 성과 등 비즈니스적 측면만을 고려하고 학교는 교육적 측면만을 좇아 자발적인 협력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초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원이 발간한 ‘창조경제, 중소기업 R&D 산학협력에서 해답을 찾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6년 15위를 기록했던 한국의 R&D 산학협력 부문 순위는 26위까지 추락했다. 2007년 5위를 정점으로 줄곧 내리막길을 걸었다.

반면 IoT 역량 평가에서 1위를 한 미국의 경제 성장 심장부로 불리는 실리콘밸리에는 미국 500대 기업 가운데 132개가 집중돼 있고, 7000여 개의 벤처기업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스탠퍼드대, 새너제이 주립대, 샌타클래라대 등 주변 주요 대학들과 네트워크 조직을 갖춰 신기술 개발에 힘을 모으고 있다.

액센츄어코리아 디지털그룹 고광범 전무는 “IoT는 전통적 경제 산업 구조 및 비즈니스 모델을 통째로 바꿀 기술”이라며 “기술기반·하드웨어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제도적 뒷받침 및 다양한 세제 및 법률 지원 제도 마련 등 산업용(Industrial) IoT 시대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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