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광표]우리나라 맥주

  • 동아일보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요즘 인기 있는 맥주 광고 가운데 이런 카피가 있다. “물 타지 않은 맥주”라는 것이다. 이 카피를 볼 때마다 뒷맛이 씁쓸하다. 그럼 그동안 우리가 마신 맥주는 물 탄 맥주였다는 말인가. 몇 년 전 출시된 또 다른 맥주는 라벨에 “100% 수입 호프”라는 문구가 들어 있다. 마찬가지다. 그동안엔 질 낮은 호프를 사용했다는 말인가.

맥주회사 사람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우리나라 맥주는 맛이 떨어진다. “북한의 대동강맥주보다 맛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맛이 좋은지 나쁜지는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대체적으로 우리 맥주의 맛이 떨어진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요즘 들어 좀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쉽다. 경제규모 세계 10위권의 대한민국인데, 맥주 맛은 이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 맥주 맛”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그동안 우리 맥주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지적은 싱겁다는 것이었다. “물 탄 맥주 같다”는 말이 무성했다. “싸구려 호프를 쓰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었다. “맛 자체가 떨어지는 것은 아닌데 온도 관리를 잘 못했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었다.

싱겁다는 지적에 대해 누군가는 이렇게 말한다. “약간 싱거워야 치킨과 함께 마시기 좋다. 독일 맥주처럼 너무 진하면 치킨과 함께 먹는 데 부담스럽다”고. 우리의 ‘치맥’ 인기를 고려하면 일리 있는 말 같기도 하다. 하지만 냉정히 들여다보면 이 말은 주객이 전도된 듯하다. 맥주를 마시는 데 안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맥주 맛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맥주가 맛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식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200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다. 외국 여행을 통해, 수입맥주를 통해 외국 맥주를 맛볼 기회가 늘어나면서 우리 맥주 맛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맥주 맛에 대한 불만이 공론화되면서 두 회사가 장악한 맥주시장의 독점을 풀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우스 비어가 등장했고 물 좋은 제주도에선 기존 맥주보다 맛이 진한 지역맥주를 생산하게 되었다. 기존 맥주회사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제야 우리의 맥주 맛은 조금 나아졌다. 그렇게 해서 “100% 수입 호프” 맥주를 만들었고, 이제는 “물 타지 않은 맥주”를 만든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맥주업계는 두 회사가 독점했다. 두 회사가 서로 경쟁을 했겠지만 진정으로 좋은 맥주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부족했던 것 같다. 맥주의 맛, 맥주의 본질에 고민하지 않고 치킨에 의존하고 저렴한 맥주값에 기대려 했던 것은 아닐까.

술은 음식이다. 하지만 단순한 음식을 넘어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형성해 왔다. 일본 삿포로에 가면 삿포로맥주박물관과 삿포로팩토리가 있다. 맥주공장을 도심에서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기존 맥주공장을 박물관과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근대산업유산 보존 활용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이곳에선 일본 맥주문화의 역사를 한눈에 이해할 수 있다. 맥주공장의 굴뚝도 여전히 우뚝 서서 오랜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맥주에 대한 삿포로 시민들의 자부심이 넘쳐난다. 역사와 본질을 중시하는 문화가 반영된 것이다.

맥주박물관까지는 아니더라도, 만드는 사람과 마시는 사람 모두 맥주의 본질을 생각해야 한다. 경쟁력은 본질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다. 그래야만 대한민국 수준에 걸맞은 맥주가 탄생할 것이다.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kplee@donga.com
#맥주#맛#맥주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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