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태원]박영선 ‘롤러코스터’

  • 동아일보

하태원 정치부 차장
하태원 정치부 차장
안타깝게도 박영선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54)는 합의 파기 및 투쟁이라는 ‘익숙한 길’을 택했다. 19일 어렵사리 타결된 제2차 여야 합의안이 세월호 유가족의 불신임을 받은 뒤에도 “(재)재협상은 없다”고 했던 다짐은 야당 강경파의 야유 속에 허공에 뿌려졌다. 26일 거리로 나간 야당대오의 맨 앞에 선 박영선의 입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무한투쟁’이란 말이 나왔다.

박영선이 누군가. 외국인투자촉진법 반대라는 ‘뜻’을 관철하기 위해 2013년 12월 31일부터 다음 날 새벽까지 동료의원 299명을 볼모로 잡은 이가 박영선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었다. 새해 예산안이 처리되건 말건 자신의 ‘소신’ 관철을 위한 일이라면 국민적 비난 정도는 눈 딱 감고 버텨낼 수 있는 ‘뚝심녀’다.

단기필마로 싸우던 박영선은 더이상 버텨내기 어렵다는 운명을 직감했는지 1월 1일 오전 3시 “내 손으로는 이 법을 상정할 수 없다”며 법사위 의사봉을 포기했다. ‘성전(聖戰)’ 패배가 서글펐던지 눈물도 보였다고 한다.

전투력 하면 둘째가라면 서럽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사건 진상조사특위에서도 국방부를 가장 괴롭힌 저격수가 바로 그였다. 어떤 과학적 설명도 천안함 폭침의 원인과 관련한 박영선의 ‘합리적 의심’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국회의 각종 회의에서 박영선 의원의 집요한 질문공세 등으로 초토화된 김태영 당시 국방장관은 그해 10월 국정감사 현장에서 “이 수모를 당하면서 제가 뭐 하러 이것을(국방장관직) 하고 있겠습니까”라며 백기를 들었다.

박영선은 승부사지만 냉철한 ‘포커페이스’는 못 된다. 오히려 감정 컨트롤에 약하다는 것이 정가의 대체적인 평가다. ‘재합의’ 성사 때 “이만하면 됐겠지”라는 듯 승리의 미소를 감추지 못했다. 그때만 해도 ‘최선의’ 합의가 반나절도 못 가 유가족의 철저한 불신을 받게 될 운명이라는 것은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국민공감혁신위원장에 추대된 뒤 “투쟁 일변도의 이미지를 벗겠다”고 했던 그가 20여 일 만에 ‘도로 박영선’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여러모로 아쉽다. 자의반 타의반 호랑이 등에 탄 격으로 길을 잃은 야당을 끌고 가야 할 그가 다시 분노의 아이콘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기우(杞憂)라면 다행이겠지만 한 달도 채 안 되는 짧은 외도기간을 통해 내가 가야 할 길은 역시 강경 대여 투쟁이라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결국 3선 의원을 만든 원동력도, 야당 첫 여성 원내대표의 반열에 오른 힘도 혁혁한 투쟁의 성과라고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제 청와대 앞을 항의 방문한 박영선의 몸짓과 말본새는 어느새 과거 투사의 모습을 완벽하게 복원하고 있었다. 두 차례의 여야 합의를 일방적으로 깬 것에 대한 미안함이나 국회 운영을 파행으로 몰고 간 것에 대한 대국민 부채의식 같은 것은 없는 듯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고질적인 계파갈등 속에서 길을 잃은 듯 보이는 박영선이 안쓰럽다는 동정론도 나온다. 살아남기 위한 ‘생계형’ 몸부림이 아니냐는 시각이다. 사즉생(死則生)이 말처럼 쉽겠나.

어쩌면 벼랑 끝 대치국면 속에서 여권의 추가 양보를 얻어내 내년 5월로 예정된 원내대표의 임기를 채울 수도 있을 것이다. 도전받는 비대위원장 자리도 차기 전당대회까지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14년 세월호 정국에서 지독하게 무능하고 무책임했던 제1야당과 표류했던 ‘초보 지도자’ 박영선의 모습은 국민의 뇌리에서 쉽게 잊히지 않을 것 같다.

하태원 정치부 차장 triplets@donga.com
#박영선#새정치민주연합#세월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