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586’을 위한 변명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6일 03시 00분


정연욱 정치부장
정연욱 정치부장
노무현 정권 초반에 이광재는 흥미 있는 정국 전망을 한 적이 있다.

“2002년 대통령선거가 끝나자마자 하루 종일 잠을 잤다. 모든 연락을 끊고서. 나중에 일어나서 노무현 정부가 끝나는 몇 년 뒤 상황을 그려보았다. 이번 정권에서 진보적 색채가 강할수록 그 반작용으로 보수적 여론이 강해지지 않겠나.”

이광재는 노무현의 오른팔로 불린 기획통이었다. 노무현 정권이 강하게 진보 드라이브에 나설수록 여론의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메시지였다. 그의 전망은 2007년 대선에서 보수적 색채가 강한 이명박 정권 출범으로 현실화됐다. 이광재도 이른바 ‘386’그룹이지만 상당히 유연하다는 인상을 남겼다. 운동권 진영에서 두드러진, ‘민주화 진영이 아니면 우리의 적(敵)’이라는 선악(善惡)의 이분법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386그룹은 1980년대 학번과 1960년대 생인 학생운동 주축 세력을 부르는 용어다. 이들이 40대가 되면서 ‘486’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초반 학번들은 50대에 접어들었으니 이제는 ‘586’ 시대가 열렸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이들은 정치적 영향력도 넓혀 왔다. 특히 새정치민주연합 내 전대협(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그룹으로 상당한 결속력을 과시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진화(進化)했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 수준은 새정치연합의 7·30 재·보궐선거 공천에서 드러났다.

서울 동작을 공천에서 전대협 출신의 ‘20년 지기(知己)’인 기동민, 허동준은 정면충돌했다. 많은 국민은 허동준이 국회 회견장에서 목청을 높이는 장면을 지켜보면서 “486들이 공천권을 놓고 싸우는 기득권 세력이 됐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앞서 동작을 공천 파동은 486 전대협 출신들이 주축이 된 의원 31명이 1일 허동준 지지 선언을 하면서 불이 붙었다. 표면적으로 허동준 지지를 선언했지만 1차적으로 정동영과 안철수 측 금태섭의 전략공천을 막겠다는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았다. 이에 맞서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는 광주 광산을에 공천 신청했던 기동민을 빼서 동작을에 전략 공천했다. 486으로 486을 받아친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이었다. 기동민 전략공천의 배후를 놓고 당 지도부와 일부 486 의원들은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얼굴을 붉혔다는 후문이다.

당 지도부에 속한 인사들은 “486그룹의 ‘허동준 공천’ 주장이 과연 선거 승리의 관점에서 나온 것인지 의문이 든다”라고 말한다. 이들이 내년 3월 전당대회에서 당권 장악을 노리는 만큼 우선적으로 다른 계파의 세력 확장을 막겠다는 계산이 앞섰다는 분석이다.

상대방을 ‘낙인’ 찍어 대결 구도를 만드는 전형적인 선악 구도로 요즘 같은 복잡한 시대를 헤쳐 나갈 수 있을까. 486그룹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석 달이 흘렀는데도 새정치연합 지지율이 전주에 비해 하락한 28%(한국갤럽의 8∼10일 정당지지율 조사)에 머무른 사실을 곱씹어봐야 한다.

다시 이광재의 얘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최근 ‘대한민국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책을 내고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과거 (노무현) 열린우리당 시절 ‘4대 개혁법’에 올인하면서 386 정치인들을 가장 열성적으로 지지했던 40대가 가장 먼저 떠났다. 그들은 지금 50대다. 6월 항쟁과 명예퇴직을 앞둔 생활인이라는 두 가지 얼굴을 갖고 있는 이들로부터 지지받지 못하면 성공할 수 없다. (중략) 옳고 그르고를 갖고 싸움하는 시기는 지났다. 누가 더 유능한가의 문제다.”

486에서 586그룹으로 성숙했다면 대한민국의 50대가 직면한 복잡한 삶을 직면해야 할 것이다. 이제 전대협 틀은 깨고 나와야 한다. 국민은 ‘586’의 달라진 모습을 보고 싶을 것이다.

정연욱 정치부장 jyw11@donga.com
#386#486#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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