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서울시 ‘천경자 기증작 93점’ 저작권 내놓을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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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부터 시행된 새 저작권법… “지자체 보유 저작권, 누구나 사용”
市, 공유재산 등록 추진하지만… 반환 원하는 千화백 딸 협조 미지수
市 “지나친 상업이용 막아야” 주장… 일각선 “대중과 공유 법취지 역행”

서울시가 국내 대표적 화가인 천경자 화백(90·사진)으로부터 기증받은 작품 93점의 저작권을 잃게 생겼다. 이 작품들의 가치는 수백억 원대로 추산된다. 서울시는 뒤늦게 천 화백의 딸인 이혜선 씨(69)에게 저작권 등록을 위한 협조 공문을 보냈지만 이 씨가 이에 응할지는 알 수 없다. 이 씨가 지난해 초 서울시에 어머니의 작품을 되돌려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이달 초 이 씨에게 ‘천경자 화백 저작권 등록에 따른 협조 요청’이라는 공문을 보낸 것으로 14일 확인됐다. 공문을 보낸 이유는 새로 개정된 저작권법 때문이다. 1일부터 시행된 이 법의 제24조의 2(공공저작물의 자유이용)에 따르면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업무상 작성해 공표한 저작물이나 계약에 따라 저작재산권의 전부를 보유한 저작물은 허락 없이 이용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천 화백이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1998년 9월 서울시에 기증한 작품 93점의 저작권을 이제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 화백의 ‘1972년 정글 속에서’는 2011년 4억5000만 원에, ‘초원Ⅱ’는 2009년 12억 원에 경매에서 각각 낙찰된 것을 감안하면 서울시가 소유한 작품 100여 점의 가치는 수백억 원에 달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서울시는 한국저작권위원회에 저작물을 등록하는 ‘묘수’를 냈다. 그렇게 하면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따라 공유재산으로 관리돼 새 저작권법의 적용을 받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유권뿐만 아니라 저작권도 종전대로 서울시가 갖게 된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미국 뉴욕에 살고 있는 이 씨에게 우편으로 관련 공문을 보냈다. 천 화백의 작품들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 등록하려 하니 천 화백의 인감증명서와 관련 신청서(양도등록 단독신청 승낙서)를 작성해 보내달라는 요청이다.

하지만 이 씨가 서울시의 요청을 받아들일지는 불투명하다. 작품의 대리인으로 지정된 이 씨는 지난해 2월 귀국해 “서울시의 관리 소홀로 작품이 훼손됐다”며 작품 반환과 함께 양도된 저작권까지 돌려줄 것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시는 “작품이 노후화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인데 이를 훼손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거절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서울시가 이 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됐다.

뉴욕에 사는 이 씨는 14일 본보와의 통화해서 “서울시는 커다란 관(官)이고 저는 아무것도 아닌 민간인일 뿐이다. (반환 요청을) 그렇게 한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냐”면서 섭섭함을 토로했다. 이 씨는 서울시의 저작권 등록 협조 요청에 대해선 “아직 정식 공문을 받아보지 못했다. 받아서 내용을 살핀 뒤 협조하든, 안하든 할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서울시의 별도 저작권 등록 추진이 바람직한 일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개정 저작권법의 취지는 국가 또는 지자체가 가진 저작물을 대중과 자유롭게 공유하자는 것인데 서울시의 조치는 이에 역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문화관리팀 관계자는 “천경자 화백이 기증할 때는 ‘저작권을 잘 관리해달라’는 취지에서 맡긴 것인 만큼 서울시에서 계속 관리를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작품 취지와 달리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이기도 하다”라고 설명했다.

서울시가 소장한 천 화백의 작품은 일부가 서울시립미술관에 전시돼 있고 나머지는 수장고에 보관돼 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
#천경자#저작권#기증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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