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같은 대외변수 무시한 폐쇄적 거시경제정책 고수가
1997년 외환위기 근본 원인
2만달러 매진하던 盧정부도 원화절상 방관하다 위기 초래
4만달러 초석 놓겠다는 朴정부 국민의 감동 앞당기려다
盧정부같은 실책 되풀이 말아야
최중경 객원논설위원 미국 헤리티지재단 연구위원
흔히 1997년 외환위기는 금융감독을 소홀히 해 외채 증가를 방치했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말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위해 자본시장을 개방하고도 폐쇄경제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거시경제정책의 실패가 원인이다.
OECD 가입으로 개방경제가 되고 외환위기 가능성에 상시 노출됐기 때문에 “국민소득, 물가와 같은 대내(對內) 균형변수보다 국제수지, 환율과 같은 대외(對外) 균형변수를 중시해야 한다”는 경제이론에 충실해야 했다. 그런데 정반대로 거시경제정책 목표를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달성’ ‘물가 5% 이내 억제’에 두었다. 알게 모르게 환율 절상을 묵인했고 환율 정상화를 촉구하는 산업계의 탄원은 “환율 10% 절상을 생산성 10% 향상으로 상쇄하자”며 피해 나갔다.
매출액 영업이익률이 5% 내외인 제조업에서 당장 생산성을 10% 올린다는 것도 탁상공론이지만 계산에도 오류가 있었다. ‘경쟁국의 생산성 증가율+10%’만큼 생산성을 올려야 환율 10% 절상을 상쇄할 수 있다. 기업들은 발을 동동 굴렀지만 수출경쟁력이 떨어져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했고, 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단기외채를 들여오다 보니 악성외채가 누적되고 외환위기가 온 것이다.
그런데 “거시경제 운용의 결과인 외채 증가가 환란 주범”이라는 상식 밖의 얘기가 상식처럼 퍼졌다. 원인 분석이 미흡하니 위기를 겪고도 달라지는 게 없었다. 환율 절상을 방관하며 국민소득 2만 달러 달성에 매진하던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1000억 달러 순채권국이 2년여 만에 순채무국이 되고 경상수지도 적자로 전환됐다. 그 결과가 이명박(MB) 정부 출범 직후 위기로 나타났다. 이처럼 소득목표에 집착하다가 두 번이나 외환위기를 겪고도, 아베노믹스와 양적완화 축소로 인한 환율전쟁 와중에 또다시 소득목표가 논의되고 있다니 뜻밖이다. 거시정책 담당자들이 범했던 실책이 되풀이될까 우려된다.
박근혜 정부는 “3만 달러를 넘어 4만 달러 시대를 여는 초석을 놓는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목표 시점이 언제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환율 절상 없이 국민을 감동시킬 속도로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국민 감동을 앞당기려고 환율 절상을 묵인하면 경상수지 적자, 단기외채 누적을 거쳐 외환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있다.
또다시 외환위기가 오게 되면 1997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참혹할 것이다. 재정에 여유가 없어 우량 기업들이 헐값으로 외국에 팔리고 대량 해고가 일반화할 것이다. 해외생산 비중이 높고 브랜드 파워가 생긴 지금은 1997년과 달리 환율 절상을 이겨낼 수 있지 않겠느냐고 하지만 틀린 얘기다.
환율이 절상되면 해외생산 비중이 높아져 국내 일자리가 없어진다. 한국 상품의 브랜드 파워는 적당한 품질에 값이 싸서 생긴 것이지 절대 우위의 기술력에서 비롯된 게 아니다. 그래서 비싸지면 바로 무너진다. 현대자동차와 도요타자동차의 북미 판매실적을 비교해 보면 안다. 환율이 떨어진 다음 달 수출실적을 보고 “수출에 영향이 없는데 웬 호들갑이냐”고 하는데,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그런 무심한 얘기를 하는 게 신기하다. 이번 달 수출은 길게는 수년 전에 체결된 수출계약을 이행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1달러에 500원인 적도 있었는데 웬 엄살이냐 하지만 경제학 이론을 무시한 견해다. 이론상 물가가 더 오른 만큼 원화가 절하돼야 한다. 한미 양국의 과거 물가상승률만 놓고 보면 원화는 더 절하돼야 한다. 환율 절상으로 손해가 나도 공장을 돌리고 수출도 한다. 판매가격으로 임금과 재료비, 에너지만 충당할 수 있으면 손해가 나도 공장을 돌리며 버틴다. 설비투자는 매몰비용이기 때문이다. 기술 진보로 새 기계가 나오면 쌓아둔 설비투자 자금은 없고 은행은 손실 기업이라고 외면한다. 새 기계로 만든 제품을 찾는 해외바이어는 떠나고 공장문은 닫힌다. 환율 절상이 산업에 가하는 결정타는 2, 3년 이상 시차가 있다 보니 당국자들은 문제의 심각성에 둔감할 수 있다.
소득목표는 경제가 정치화하는 지름길이다. 국민소득이 1만 달러 오를 때마다 외환위기를 겪어야 하는가? 외환보유액이 충분하다는 얘기도 할 게 아니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으로 1000억 달러 이상 부족하다는 분석도 있다. 국제투기자금이 외환보유액의 20배는 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더욱이 미국의 환율 간섭까지 겹쳐 있다. 한국 경제는 지금 중대한 고비를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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