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에 만난 사람]커피 볶는 목사 황성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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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열풍이라는데… 제대로 마시는 사람 별로 없더군요”

황성윤 목사가 자신이 운영하는 커피 천국이란 뜻의 ‘Coffee Heaven(커피 헤븐)’ 앞에서 볶은 커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황 목사는 “한국 사람에게 맞는 좋은 커피를 만들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돕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고양=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황성윤 목사가 자신이 운영하는 커피 천국이란 뜻의 ‘Coffee Heaven(커피 헤븐)’ 앞에서 볶은 커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황 목사는 “한국 사람에게 맞는 좋은 커피를 만들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돕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고양=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2007년 어느 날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혹시 커피를 배우고 싶지 않느냐’고. 엉겁결에 따라나섰는데 그날로 커피에 반했다. 한 외국인 선교사가 내려준 커피는 그동안 마셔온 커피와는 차원이 달랐다. 진하면서도 달콤했다. 부드러우면서도 와인향이 풍겼다. 어떻게 이런 맛을 낼 수 있을까. 궁금한 것을 많이 물어봤다. 그때부터 커피와 사랑에 빠졌다.

황성윤 목사(57)가 ‘착한 커피’ 보급에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커피가 너무 맛있고 커피로 몸과 마음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제대로 커피 공부를 시작했다. 수많은 책을 봤고 전국의 커피 명소로 소문난 곳은 다 찾아다니며 배웠다. 그래도 갈증을 채울 순 없었다.

원두를 어떻게 볶느냐에 따라 커피 맛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체득한 뒤 연구실을 만들어 커피 볶는 일에 매달렸다. 책을 보고 과학적이라고 알려진 방법으로 볶아 보아도 맛이 그때 그때 달랐다. 비싼 원두를 잘못 볶아 내다버리는 일도 많았다. 지금까지 버린 원두도 엄청나다. 맛을 본 친구들은 “야, 좋은데 왜 그래?”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커피를 공부하는 전문가로선 만족할 수 없었다. 뭔가 빠졌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게 5년여를 보내다 2012년 봄 아프리카 커피 연수 프로그램에 따라나섰다. 커피 원두의 본고장 아프리카에 가면 뭔가 얻을 게 있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에티오피아 짐마대에서 보낸 3주간의 연수 과정은 커피에 대한 그의 생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커피에 대해 눈을 떴다고 할까. 짐마대 커피전문가 과정에서는 커피를 보는 눈의 차원이 달랐다. 전 세계 커피가 다 있었다. 짐마대 농대는 일종의 ‘커피 뱅크’로, 전쟁과 지진이 나도 커피를 원상태로 보유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커피나무마다 고유의 향이 있었다. 커피에 담긴 수많은 향은 볶는 기술(로스팅)에 따라 달라졌다. 교수들도 그동안 맛봤던 것과는 전혀 다른 커피를 알려줬다. 커피 고유의 향을 느낄 수 있도록 볶는 방법도 배웠다. 3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커피의 본산 에티오피아에서 느낀 커피의 특징은 1000번을 볶아도 맛은 각양각색이었다는 점이다.

“똑같은 커피를 같은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볶아도 향이 다르게 난다. 그만큼 커피는 다양한 향을 가지고 있다. 커피 본연의 향을 느끼도록 볶는 게 최선이다.”

황 목사는 전 세계적으로 수천 종의 커피가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이 중에서 사람들이 실제로 마시는 커피는 140종 정도라고 한다. 커피의 질도 천차만별이다. 그는 “요즘 국내에서 유기농 식품이 뜨고 있듯 커피도 유기농 커피를 마셔야 몸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커피는 크게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로 분류된다. 아라비카는 야생에서 성장한 자연산 나무에서 딴 유기농 커피 원두를 말한다. 콩 하나에서 수많은 향을 느낄 수 있다. 하나의 원두에서 15가지 향이 나는 것도 있다. 와인향까지 난다. 아라비카는 최근 전 세계 커피 애호가들이 즐겨 찾고 있다. 한번 마시면 그 향을 잊을 수 없고, 카페인 함량이 적어 많이 마셔도 수면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로부스타는 일반적으로 재배한 커피를 말한다. 병충해 예방을 위해 농약을 쓰고 가공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향이 떨어진다. 인스턴트나 캔커피 등의 원료로 사용되며 카페인 함량이 높다.

황 목사는 아프리카에서 커피를 ‘치료제’로 쓰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아프리카에서는 민간요법으로 커피를 상처가 난 부위에 바르거나 배탈이 날 경우 마시게 한다. 병리학적으로도 커피에 치유 효과가 있어 많은 사람이 연구하고 있다.

커피가 이슬람 사회를 거쳐 유럽으로 퍼진 13세기 무렵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예멘의 승려 오마르는 모카의 왕비가 병에 걸렸을 때 그녀를 위해 기도해주다 그만 왕비와 사랑에 빠졌다. 모카의 왕은 격노하여 오마르를 우사브 산 속으로 추방했다. 오마르가 먹을 것을 찾아 산속을 찾아 헤맬 때 한 마리의 새가 빨간 나무를 쪼아 먹는 것을 봤다. 오마르는 그 빨간 나무 열매를 한번 끓여 보았는데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이 좋은 향이 났고 마셨더니 피로가 사라졌다. 그때부터 오마르는 그 열매를 넣고 끓인 물로 많은 병자를 낫게 했다. 모카의 왕은 오마르의 이런 공적을 인정하고 죄를 용서했다.’(오카 기타로의 ‘커피 한잔의 힘’에서)

커피가 병을 고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페르시아 종합의학서 ‘의학집성’은 커피가 사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다고 기술했다. ‘예로부터 아프리카에 자생하던 분(Bunn)의 씨앗을 갈아서 끓여낸 액체는 위에 좋은 효능이 있다’고 쓰여 있는데 역사상 커피의 효능에 대해 처음 밝힌 책이다. 커피가 서양사회에 알려진 뒤 수많은 연구가 진행됐다. 일반적으로 당뇨와 만성 간염, 알코올성 간경변증, 파킨슨병, 우울증 등에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커피가 함유하고 있는 카페인과 카페산, 개미산, 피라진산, 메틸피라진 등이 우리 몸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한다.

“커피는 단순히 졸음을 없애주는 기호식품이 아니다. 잠이 온다고 몇 잔씩 마시면 안 된다. 특히 제대로 볶아 제대로 내린 커피가 아니라면 오히려 몸에 해를 줄 수도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 커피 열풍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커피전문점이 생겼고 이를 즐기는 사람도 늘었지만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드물다.”

황 목사는 “커피는 우리 몸에 아주 좋은 역할을 하는데 커피를 잘못 마셔 몸을 망치는 경우가 많다”며 “커피를 볶는 방법에 따라 커피 향이 달라지고 볶고 내리는 방법에 따라 카페인양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카페인이 적은 좋은 커피를 마시면 몸에 기운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는 “아라비카와 로부스타는 원가 차이가 많이 나는데 로부스타를 고급 커피로 착각하고 마시는 이들도 있다”며 “이런 잘못된 문화가 한국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황 목사는 커피를 제대로 배우고 나서 2012년 10월 경기 고양시 가좌동의 인적이 드문 곳에 커피 천국이란 뜻의 ‘Coffee Heaven’(커피 헤븐)을 오픈했다. “한국 사람들에게 맞는 커피를 만들어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돕겠다”는 게 그의 포부. 인적이 드문 곳을 택한 이유는 커피처럼 은근하게 향기를 내기 위해서다. 커피숍이 아니다. 커피를 볶는 곳이다. 볶은 커피 원두를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커피도 한잔 대접하는 장소다. 처음엔 지인들을 상대로 돈을 받지 않고 나눠줬다. 그러자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원두까지 얻어 가는 지인들이 헌금하는 셈으로 얼마씩 내고 가면서 이젠 원두값 정도만 받고 있다. 지금은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커피 마니아가 400명이나 된다.

황 목사는 한국 사람에게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로스팅과 핸드드립 방법을 개발했다. 볶는 방법이 보통 6가지인데 좀 더 부드럽게 커피 향을 느낄 수 있는 방법을 추가해 만들었다. 핸드드립은 원두 가루 위로 뜨거운 물을 천천히 부어 커피를 우려내는 방식이다. 좀 더 부드러운 맛과 향을 즐길 수 있다. 그는 “한국 커피 문화가 지나치게 외국에서 들여온 기계 커피에 의존하고 있어 문제”라며 “커피 향을 제대로 느끼려면 드립커피를 마셔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계는 수증기로 순간적으로 강하게 내리기 때문에 카페인 성분이 강하고 탄 맛이 나 커피 본연의 향기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그는 “커피를 볶거나 핸드드립을 하는 방법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이고 수학 공식처럼 딱 맞는 방법은 없다”며 “요즘 드립커피를 연구하는 사람이 늘고 있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황 목사는 안수를 받고 얼마간 목회 활동을 하다 요즘은 ‘일터교회’ 활동을 하고 있다. 일터교회는 세계적 종교 지도자 G 피터 와그너가 쓴 책을 기반으로 시작된 선교 활동으로 삶 속의 일터를 교회로 삼고 선교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에게는 ‘커피 헤븐’이 곧 선교의 현장으로 커피가 선교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물론 종교를 강요하진 않는다. 찾아오는 사람들은 커피를 사고 마시기만 하는 게 아니라 황 목사와 살아가는 얘기를 나누고 고민도 함께한다. ‘커피 헤븐’엔 커피만 있는 게 아니라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문화도 존재한다.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든 커피 볶는 법과 내리는 법도 알려준다.

황 목사는 ‘커피 전도사’이기도 하지만 음악 재능기부에도 열심이다. 어린 시절부터 기타와 피아노에 심취해 전문가 수준이 됐다. 목사이자 음악가이자 바리스타인 셈이다. 그는 교회나 지역단체 등에서 요청이 오면 언제든 무대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사실 오래전부터 좋은 커피를 마셔야 한다고 주장하고 핸드드립 커피 문화를 선도해 온 사람 중 일부가 어느 순간 돈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안타깝다. 초창기의 커피맛이 사라지고 있다. 커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국민들이 좋은 커피를 마시도록 노력하는 사람이 더 늘어야 한다.”

전국의 유명한 핸드드립 커피숍을 찾아 다녔는데 맛이 달라지는 곳이 생기고 있다는 얘기다. 그는 “커피가 잠을 쫓는 기호식품이 아닌 우리 몸의 건강을 돕는 보양식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초심의 자세를 잃지 않고 ‘착한 커피’ 보급에 나서겠다는 다짐이다.

고양=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커피#황성윤 목사#커피 헤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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