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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경제

“정부 말만 믿고 특성화고 왔는데”… 고졸 채용 확 줄인다

입력 2013-12-23 03:00업데이트 2013-12-23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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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 너무 어려워요” 3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3 현대·기아자동차 협력사 채용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채용공고를 받아 적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011년 초 대기업 A사와 학생 채용 우대에 관한 협약을 맺고 마이스터고 인가를 받은 서울 B고는 올해 10월 절망감을 느끼게 할 만한 전화 한 통을 A사로부터 받았다. 시간선택제 일자리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으로 일자리 여력이 없어 약속했던 채용 인원을 보장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학교 측은 “정권이 교체된 뒤 고졸 채용에 대한 기업들의 태도가 확 바뀌었다”며 “항의나 질의를 하고 싶어도 당시 협약을 맺었던 담당자들이 대부분 자리를 옮겨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011년 말 본격화한 ‘고졸 채용’ 훈풍이 불과 2년 만에 사그라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고졸 채용 인원을 경쟁적으로 늘렸던 공공기관과 금융권, 기업들이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고졸 채용 규모를 줄일 것으로 보인다.

295개 공공기관이 최근 정부에 제출한 2014년 고졸 채용 인원은 1933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2512명, 지난해 2508명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전 정부가 지난해 11월 공공기관 채용의 20% 이상을 고졸자로 뽑고, 비중을 점차 늘려 2016년 40%를 채우겠다고 약속했던 것과는 딴판이다.

고졸 출신을 대거 채용해 화제가 됐던 은행과 증권업계도 고졸 채용 인원을 절반 수준으로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715명을 뽑았던 은행들은 올해 491명만 채용했다. 지난해 162명을 뽑았던 증권사들 역시 올해는 88명 채용에 그쳤다. 기업들의 내년 고졸 채용 규모도 불투명하다. 고졸 채용 바람이 불기 전부터 뽑아온 생산직 인력은 별 차이가 없지만, 정부 방침을 따르려고 2011년 이후 뽑은 사무직과 서비스직은 채용 규모가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동아일보가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4대 그룹 인사팀에 문의한 결과 2011년 이후 많게는 연간 2배씩 늘려오던 고졸 채용 인원을 내년에는 줄이거나 올해 수준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기업 관계자는 “경기 불황으로 내년에 채용 인력을 크게 늘릴 여력이 있는 기업은 거의 없다”며 “생산라인에 배치되는 95%를 제외한 나머지 고졸 인력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채용을 전제로 고교 2학년을 대상으로 ‘고졸 인턴 채용’ 제도를 운영해 온 한화그룹도 올해 채용 인원을 지난해보다 소폭 줄일 계획이다.

고졸 채용에 대한 기업들의 태도가 2년 만에 확 달라지자 실업계고 및 마이스터고들은 당황해하고 있다. 김혜선 경기상고 취업특성화부 교사는 “고졸 취업난은 이미 올해 졸업생들부터 겪고 있다”며 “작년이었다면 어렵지 않게 취업했을 상위권 학생들 중에도 취업 못한 학생이 적지 않다”고 전했다.

지난해 취업률 100%를 달성했던 미림여자정보과학고조차 학생들의 미래를 걱정하긴 마찬가지다. 학교 관계자는 “대기업이 언제까지 뽑아줄지 모르기 때문에 최근 강소기업 관계자들을 학교로 초청해 설명회를 여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특히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취업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정부의 말만 믿고 마이스터고나 실업계고에 진학한 학생들은 “속았다”는 반응이다.

금융 특화 고교인 서울금융고 3학년 학생회장 장석원 군(19)은 “내신 성적 상위 10% 선에 펀드투자상담사, 전산회계 2급, 전산회계운용사 자격증도 땄는데 올해 지원한 공기업과 증권사 등 4곳에서 모두 탈락했다”며 “작년이 고졸 채용 피크였고 앞으로 계속 줄어들 것이라고 선생님들이 말해 당황스럽다”고 했다.

실업계 C고 2학년 학부모회장을 맡고 있는 강모 씨는 “정부가 특성화고 출신들을 많이 뽑겠다고 거듭 약속해 아이를 중학교 3학년 때 실업계고로 진학시켰는데 이제 와서 말을 바꾸면 어쩌자는 것인지 불안해 미칠 지경”이라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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