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짱’ 스포츠클라이밍 선수 송한나래 “현실의 벽 앞 주저앉은 청춘들, 저랑 거친 절벽 넘어 꿈 찾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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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한나래가 17일 경기 고양시 ‘해피볼더 일산 클라이밍 짐’에서 홀드(손잡이)를 잡고 벽을 오르고 있다. 송한나래의 아버지 송석원 씨는 딸의 훈련에 도움을 주기 위해 2008년 이 실내암장(연습장)을 열었다. 고양=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송한나래가 17일 경기 고양시 ‘해피볼더 일산 클라이밍 짐’에서 홀드(손잡이)를 잡고 벽을 오르고 있다. 송한나래의 아버지 송석원 씨는 딸의 훈련에 도움을 주기 위해 2008년 이 실내암장(연습장)을 열었다. 고양=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안녕, 송한나래라고 해.

내 이름 처음 들어봤지? 국가대표 선수고, 가수 (윤)미래 언니와 스포츠 브랜드 광고(CF)도 같이 찍었는데 아직 유명하지 않나보군.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는데. 자랑을 좀 더 하자면 (김)연아 언니가 1회고 내가 ‘제3회 경기도교육청 글로벌 인재상’ 수상자야.

내 이름 한나래는 ‘큰 날개’라는 뜻이야. 큰 날개로 난 암벽을 올라. 스포츠클라이밍 선수거든. 인공 얼음벽을 오르는 아이스클라이밍은 지난해 시작했어. 대회 성적은 일일이 내 입으로 말하기 쑥스러우니 궁금하면 인터넷에서 찾아보면 돼.

난 올해 한국외국어대 국제스포츠레저학부 3학년이 돼. 운동선수라고 대학 쉽게 왔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해. 남들하고 똑같이 입학사정관(자기추천자) 전형으로 합격했거든.

잘난 척하자면 공부도 그리 빠지는 편은 아니었어. 중학교 때는 선생님이 운동 그만하고 외국어고에 진학하면 어떻겠냐고 하실 정도였지. 고등학교 때도 운동만큼 공부도 열심히 했어. 그런데 친구가 그러더라. “너는 운동하니까 공부 안 해도 되는 거 아냐?” 정말 대판 싸웠어. 머리 나쁘니까, 공부하기 싫으니까 운동한다는 말 정말 싫었거든. 프랑스 파리에 훈련 갔을 때는 에펠탑 구경보다 운동하는 것이 훨씬 더 좋았지.

생각해 보면 나는 참 독했나봐. 우리 집은 경기 파주, 연습장은 서울 광진구 건국대 앞에 있었어. 매일 2시간 넘게 버스와 지하철을 갈아타고 다녔지. 그 시간을 쪼개 공부했어. 훈련 마치고 밤 12시가 넘어 지하철 종점(3호선 대화역)에서 깨보면 손에 들고 있던 책이 바닥에 떨어져 있기 일쑤였지. 그래도 집에 가면 다시 샤워하고 공부했어. 시험 때마다 밤새우는 건 기본이었고.

그런 딸이 안타까우셨는지 아빠가 집하고 가까운 일산에 실내 ‘암장(巖場)’을 차리셨어. 딸한테 다걸기(올인)하신 거지. 참, 우리 아빠(성함은 송석원)도 산악인이셔. 네 살 때 아버지 등에 업혀 놀이기구 타듯 산에 오르내린 게 산에 대한 첫 추억이야.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도 고3 때 대학 가려니까 쉽지 않더라. 원래 모 대학 특기자 전형에 지원했는데 스포츠클라이밍 대회 입상 성적은 수상 실적으로 안 쳐주더라고. 국제 대회에서 우승도 했는데 말이야. 유일하게 스포츠클라이밍 실적을 인정하는 다른 학교에서는 면접 내내 같은 종목 선배들의 학교생활이 너무 불성실하다는 말만 들었어. 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건 당연한 일. 그래서 정면 돌파로 입학사정관제를 택했지.

이런 일을 겪으면서 희망 전공도 스포츠생리학에서 스포츠마케팅으로 바꿨어. 내가 하는 운동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었으니까. 이 운동이 좀 더 대중적이 돼서 언젠가 올림픽 정식종목이 되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

성인이 되고 나니 운동 때문에 여자로서의 나를 포기해야 할 때가 있어. 지난해 아이스클라이밍을 시작하니까 등하고 어깨에 근육이 붙는 게 느껴지더라. 스포츠클라이밍할 때 힘도 좋아지고. 남자 선배가 “너, 그렇게 몸이 좋아서 웨딩드레스나 입겠냐”고 하더라고. 속상했지만 괜찮아, 내가 좋아하는 유아인(배우) 오빠는 이런 못난 생각하는 남자 아닐 테니까.

지금은 이렇게 튼튼하지만 어릴 때는 집 앞 슈퍼마켓 가듯 병원 드나들던 아이였어. 기관지가 안 좋아 코피가 한 번 나면 멈추지 않았고. 집 밖에 나설 때면 엄마가 늘 옷을 한 벌 더 준비하셨지. 그런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운동을 시작하니까 다 낫더라고. 여대생처럼 말하자면 꿈을 좇아 거친 절벽을 오르니까 병균이 못 따라오는 걸까.

사람들이 절벽을 오르면서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묻는데 사실 아무 생각도 못해. 그냥 절박하게 오르는 거지. 경쟁 선수를 이기는 것보다 나한테 지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고 할까. 그래서 내 블로그 제목도 ‘Don't lose yourself’야.

혹시 살면서 자신한테 너무 자주 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아? 그러면 꼭 스포츠클라이밍에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어. 한 번만 해보면 알 거야. 보기보다 위험하거나 어려운 운동이 아니라는 것을. 장담하건대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때 자신을 믿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거야. 특히 현실의 벽 앞에 주저앉은 모든 청춘들, 이 운동 같이 해보지 않을래?

고양=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송한나래#스포츠클라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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