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1인 체제’로 돌아온 짙은 “가난한 뮤지션? 음악은 반짝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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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17일 11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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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겨울 감성을 노래하는 가수 짙은(성용욱·32)이 새 앨범 ‘백야’를 들고 돌아왔다.

그는 메이크업도, 헤어스타일링도 하지 않은 채 어두운 갈색 톤의 니트, 오래 입은 듯 색이 바란 바지를 입고 겨울나무처럼 우뚝 서서 인사를 건넸다. 어색한 표정의 그에게는 서른 두 살의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 소년 같은 쑥스러움이 엿보였다. 짙은의 음악 속 소년 감성의 원천이 새어나온 듯 하다.

이번 앨범 ‘백야’는 지난 EP앨범 ‘Wonderlan’ 이후 1년 5개월 만이다. 기타와 건반을 담당한 윤형로가 그룹에서 탈퇴하고, 보컬 성용욱이 홀로 작업해 또 다른 느낌의 감성과 색다른 음악적 시도가 더해졌다.

겨울을 닮은 음악, 소년을 닮은 짙은을 만나보았다.

▶“이번 앨범은 위로가 아닌, 더 큰 차원에서의 아픔 공감”

“제 노래가 추운 날씨와 잘 어울리잖아요. 작년에 여름에 냈다가 망했어요.(웃음) 이번에는 겨울에 발매하니 반응이 좋네요.”

짙은은 자신의 노래가 겨울과 잘 어울리는 것 같다며 앨범을 소개한다.

이번 앨범 ‘백야’는 언뜻 들으면 이전 앨범들보다 더 밝아진 듯 하다. 수록곡인 ‘March’와 ‘Moonlight’는 짙은의 음악에서 좀처럼 찾을 수 없는 빠른 비트의 신나는 음악들이다. 하지만 좀더 경쾌해진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짙은은 이번 앨범을 통해 “더 큰 차원의 아픔 공감”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번 앨범을 작업하면서 인간들이 느끼는 고통, 한계점이라는 게 다 비슷하다는 것을 느꼈어요. 내게 영감을 준 누군가나, 나, 내 음악을 듣는 사람들 모두 비슷한 상황을 살아요. 제가 겪는 고통들이 특별하지 않다는 걸 깨달은 거죠. 이전 노래들이 위로를 전했다면 이번에는 확장된 의미에서의 아픔 공감입니다.”

짙은은 곡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자 좀더 심오한 이야기들을 꺼낸다.

“‘고래’라는 곡은 형과 커피숍을 하나 차리자고 이야기하면서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지은 곡이에요. 형이 가게 이름을 고래라고 짓자고 하더라고요. ‘고래덕후’라고 불리는 소설가 허만 멜빈의 문구를 이야기해주면서요. 사유의 잠수자, 충혈된 눈을 하고 돌아오는 고래…. 재미있어서 곡을 만들었죠. 곡 내용에는 이중적인 의미가 있어요. 내가 고래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고래로부터 도망치는 내용이기도 하거든요.(웃음)

타이틀곡 백야도 마찬가지에요. 백야라는 것이 빛과 아름다움 등 긍정적인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밤이 되면 어두워져야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도 담겼죠. 이번 앨범 노래들은 모두 열려있어요. 듣는 사람들이 해석하는 것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죠. 저도 들을 때마다 헷갈려요.”

그는 곡 소개를 해나가며 줄곧 ‘헷갈린다’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지만, 그래도 이러한 철학적인 대화가 재미있다며 웃어 보인다. 아니라고 부정해도 사유의 잠수자인 고래, 자신의 노래를 쏙 빼닮은 짙은의 모습이었다.

▶과거 시민단체서 활동…동아일보에 특별 기고도 해

올해 짙은의 나이는 서른 둘. 지난 2008년도 스물여덟의 나이에 데뷔 앨범 ‘짙은’을 발매했다. 다소 늦은 나이에 어떻게 음악의 길로 접어들게 된 것일까 궁금해졌다.

“사실은 음악을 취미 정도로만 하려고 했어요. 일을 하면서 음악도 해볼까라는 생각이었죠. 파스텔 뮤직이라는 음반 제작사가 제가 처음 들어올 때만해도 음악을 지금처럼 공격적으로 하는 회사가 아니었거든요.(웃음) 음반을 내고 활동을 하다보니 바빠지더라고요. 다른 일은 못하겠구나 싶어서 음악만 하게 된 거죠.”

그의 전공은 예상 외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 음악과는 전혀 다른 분야를 공부하고 졸업 후 시민단체에서 사회생활을 해왔다.

“장애인 관련 시민단체에서 일을 했었어요. 투쟁하는 그런 거친 곳은 아니고요.(웃음) 장애인들의 재활을 돕고 후원하는 일 등을 했죠. 동아일보에 기고한 적도 있어요. 돈도 조금 받았어요. 글을 잘 쓰는 것은 아니었는데 잘 봐주시더라고요.”

그가 2007년도 동아일보에 올린 기고는 ‘영어마을 안에 재활촌을 두면 어떨까’라는 제목의 짧지만 강한 주장이 담긴 글이었다. 경기도 파주 영어마을에 다녀온 후 소감과 함께 단순히 교육 뿐 아니라 나눔을 실천하는 교육의 장으로서 영어마을 한쪽에 재활복지마을을 짓는 것이 어떠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글 내용에 앞서 지금과 다를 바 없는 증명사진 속 소박한 짙은의 모습도 눈길을 끈다. 한결 같은 모습, 나눔을 알고 있는 그의 글에 새삼 그의 노래 가사가 색다르게 들린다.


▶ 멤버 윤형로 탈퇴로 1인체제 “둘 사이 갈등, 주로 제 뜻대로 했죠.”

이번 앨범은 성용욱 개인이 혼자서 준비한 첫 앨범이다. 음악적 색깔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음반을 준비하며 그의 마음은 사뭇 달랐을 것.

“사실 앨범을 혼자 작업한다고 해서 더 힘든 것은 없었어요. 겨울 콘서트 전에 앨범을 발매하려다보니 작업이 좀 급하게 진행됐거든요. 힘들어 할 겨를이 없이 그냥 느낌이 가는 대로 선택하고 쭉쭉 진행한거죠. 또 파스텔 뮤직 소속 센티멘탈 시너리라는 친구도 많은 도움을 줬고요.”

그간 함께 활동해온 윤형로가 다소 서운할 수 있는 대답이다. 하지만 성용욱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두 사람의 갈등과 헤어짐을 이야기한다.

“그동안 갈등이 생기면 거의 제 맘대로 해온 게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오해는 마세요. 우리 요새도 밥 자주 먹고 굉장히 친해요. 갈등이 많기는 했지만 모두 음악적, 발전적인 갈등이었죠. 저는 현실적인 부분을 좀더 고려해서 사람들이 실험적인 음악을 얼마나 공감해줄 것인가, 짙은의 어쿠스틱한 색깔을 어떻게 지켜야할 것인가 등을 고민했고, 형로는 색다른 음악적 시도들을 꿈꿨거든요.”

그는 오히려 해체를 통해 두 사람 모두 더 원하는 음악을 해볼 수 있고, 또 다른 음악적 성장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설렘을 비추기도 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음악, 공연을 해보고 싶어요. 리듬감 없는 음악들이나 포크 음악 등이요. 공연에서는 통기타 하나와 목소리 하나만 가지고 한 시간을 진행해보고도 싶고요. 윤형로 씨는 일렉트로닉 음악 한대요. 이전에는 디제이도 하려고 했었어요. 그렇다고 정신없고 시끄러운 일렉트로니카는 아니고 감성적인 일렉트로니카 준비하고 있대요."

▶ 노래에는 온통 ‘달과 별’…“가난한 뮤지션이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

그의 노래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소재는 바로 ‘달과 별’. 이번 앨범에도 어김없이 수록곡 ‘Moonlight’, 달을 노래한 곡이 실렸다.

“달과 별, 반짝반짝 서정적이잖아요. 가난한 뮤지션이 볼 수 있는 것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직접 ‘가난한 뮤지션’이라는 단어를 꺼내 조금 당황스럽긴 했다. 생각해보니 앞서서도 그는 “헤어스타일도, 메이크업도 돈이 없어서 못했다”는 말들을 우스갯소리처럼 흘리며 건네긴 했다. 낡았지만 따뜻해 보이는 그의 코듀로이 바지처럼 짙은은 소박하지만 늘 따뜻함을 꿈꾸는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즐기고, 또 노래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많이 힘든 건 아니에요. 음악으로 전향을 한 직후에는 가난함의 불편을 느꼈지만, 이제는 소비를 줄여가며 사는 법을 터득했거든요. 최대한 안 사고, 얹혀살고…. 지금도 형이랑 같이 살아요. 하하. 하지만 대부분의 뮤지션들이 그렇듯 심리적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늘 있죠.”

주변에 인디에서 활동을 하다가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많은 돈을 버는 가수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에게 대중적인 인기에 대한 갈망이 없냐고 묻자 그의 답변은 명쾌했다.

“유명세요? 욕심 없어요. 처음부터 없었어요.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라거나 그런 것은 아니고요. 사실 ‘하고 싶은 음악’이라는 것 자체가 언어적인 의미일 뿐 음악을 할수록 그게 뭘 의미하는 것인지 알 수 없어요. 그냥 단순히 대중적인 성공을 바라지 않는다는 거죠. 사실 구속 받는 것도 싫어해서 유명세가 무서운 것도 있어요.”

그는 ‘하고 싶은 음악’이 무엇인지는 갈수록 모르겠다고 말하지만 음악을 하며 ‘행복한 것’은 확실하다고 말한다.

“음악을 하며 항상 행복하다고 느껴요. 음악으로 먹고 살기. 이 자체가 과연 가능할까 생각했는데 제가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게 신기해요.(웃음) 가장 짜릿한 순간은 아무래도 공연할 때죠. 그리고 내가 만든 좋은 노래를 들을 때. 뿌듯해요.”

그는 마지막으로 음악적 바람도 그의 모습처럼 소박하게 전했다.

“그때그때 원하는 음악을 하며 충실하게 음악을 즐기고 싶어요. 상황에 따라 해볼 수 있는 음악들도 시도해보고요. 지금 당장의 바람이라면, 조금 선이 굵은 듯한 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제 목소리가 아직 많이 소년 같은데 이제 서른도 넘겼으니 조금은 거칠고 투박한 게 어울리지 않을까요?(웃음)”

글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사진 오세훈 기자 ohhoon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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