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커버스토리] 바비킴 “소싯적 미국에서 ‘비보이’ 활동…리듬감만 얻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1일 11시 10분


코멘트

●생애 첫 1위 통 큰 한 턱, '한우 300만원 어치'
●나가수 탈락 룰 '잔인'…그럼에도 출연한 이유는
●인종차별로 힘든 이민생활, 부모님 원망하기도
●나를 일으켜 세운 건 8할이 '나가수'와 '팬'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 출연하며, 17년 가수 인생에서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바비킴.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 출연하며, 17년 가수 인생에서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바비킴.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비와 어울리는 쓸쓸하면서도 여운 남는 음색. 담담한 독백처럼 모든 걸 내려놓는 듯한 편한 소리. 듣고 나면 위로가 되는, 소주한잔 기울이고 싶게 하는, 그의 목소리는 가을….'

음악 평론가들은 그의 노래를 '김치 솔(Soul)'이라고 한다. SNS에서 바비킴(본명 김도균·38)의 목소리를 검색해 보면 그 말이 조금은 이해된다.

MBC '우리들의 일밤,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에 출연하며, 17년 가수 인생에서 최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바비킴을 만났다.

▶가수 바비킴, '나가수'에서 날다

최근 '나가수' 경연에서 1~2위를 자주 하기 때문일까. 서울 광화문 일민미술관 1층 카페에서 만난 바비킴은 싱글벙글 즐거운 표정이었다. 사인을 청하는 종업원들에게도 기꺼이 사인을 해주었다.

1994년 닥터레게 래퍼로 데뷔한 그는 실력파 가수라는 평가는 받았지만, 가요 프로그램에서 한 번도 1등을 한 적은 없었다.

8월 '나가수'에 합류해서도 첫 무대에서 '사랑 그 놈'을 불러 선호도 조사 5위를 차지했고, 그 다음 1차 경연에서는 '태양을 피하는 방법'(5위), '너의 결혼식'(6위)을 불러 탈락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9월 18일 '골목길'부터 그는 달라졌다. 떨기만 하던 바비킴은 사라지고, 무대를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 것. 그 결과 첫 1위의 기쁨을 얻는다. 그리고 이달 2일 조용필 스페셜에서 '추억 속의 재회'를 불러 2위를 했다. 9일에는 11년 간 함께해 온 힙합그룹 부가킹즈 멤버 주비트레인(주현우), 간디(최헌)와 '물레방아 인생'을 신나게 불러 1위를 재탈환 했다.

'폭풍 성량', '고음 가수'가 득세하던 '나가수'에서 그는 잔잔한 솔 음악으로 간판스타가 됐다.

"제 인생에서 첫 1위예요. 2위도 한 적이 없어요. 처음 1위를 한 날에 '나가수' 가수, 스태프에게 한우로 한턱 쐈어요. 300만 원 들었죠. 회식 자리에서도 실감이 안 났죠.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왜 이렇게 행복한지…. 제 인생에서 첫 1위 평생 간직해야죠."

"두 번째로 1위 한 날은 삼겹살을 쐈어요. 지난번에 한우 사느라 돈이 너무 들었다고 소속사에서 한 소리를 해서.(웃음) 두 번째 1위는 부가킹즈 동생들 덕분이죠. 난 한 게 없어요."

-노래하다 흥에 겨워 어깨춤을 췄어요. 혹자는 "탈춤"이라고 하고 바비킴은 "이상한 춤"이라고 말했죠.

"저는 리듬을 탄 것인데 사람들은 탈춤이라고.(웃음) 준비한 건 아니고. 즉흥적으로 했죠."

-춤 실력은 타고났나요? 어렸을 적 비보이 활동 했다고….

"예? 어떻게 아셨어요. 맞아요. 팀원 끼리 동그라미를 만들어서 춤을 추잖아요? 저는 동그라미 바깥에 있다가 안으로 들어가려고 들어가려고 하다 막상 못 가는 사람이었죠. 집에서는 정말 열심히 연습했는데. 1985~86년 초등학생 때 얘기죠. 힙합이 막 유행했을 때예요. 얻은 건 리듬감이죠."

▶'가왕' 조용필, 마주하니 아버지 같은 느낌

-30~40대 남성의 감성을 대변한다는 평가를 듣습니다. 공감을 사는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곡을 선택할 때는 제가 공감하고 소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봅니다. 노래에는 제 감성이 반영돼야 하고, 솔직하게 불러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성이 담깁니다."

순간, '나가수-조용필 스페셜' 당시 가왕 조용필이 그의 노래를 들으며 지그시 눈을 감은 게 떠올랐다. 그는 조용필의 '추억 속의 재회'를 편곡해 불렀다. '코리안 솔'이라는 점에서 두 가수는 통하는 게 있다.

-'가왕' 조용필 선생을 만났죠? 특별히 하신 말씀이 있나요?

"가왕은 예전 회식 자리에서 한 번 뵌 적은 있는데 기억은 못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이 사실상 첫 만남이라고 해도 되겠지요. 제가 중간 점검 때 1절만 불렀는데 '뒤에 또 뭔가 있겠지? 이대로는 안 되겠지?'라고 물음표를 주셨죠. 더 부감이 갔습니다. 긴 말을 하지 않으세요. 긴장을 풀어라 정도의 말을 더 하셨습니다."

-'가왕'을 직접 보니 느낌은?

"저희 아버지(트럼펫 연주자 김영근 씨)와 비슷합니다. 한참 혼자 골똘히 생각하다가 짧은 말을 던지는데, 그 말이 다 의미가 있고 뜻 깊습니다. 동안이시라 얼굴도 50대 초반으로 보여요. 음악 선배의 느낌이었습니다."

-'나가수'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보니, 바비킴 씨처럼 1등을 한 가수가 나오면 탈락자도 나오기 마련인데요. 탈락자를 보는 기분은 어떤가요?

"울컥하죠. 김조한, 조관우 씨가 탈락하던 날도 방송에서는 여자들 우는 모습만 나왔지만 다들 한 식구니까 울었어요. 7명 모두 한 가족처럼 방송을 했는데, 형제를 보내는 느낌이라서 슬펐어요."

-가혹한 방식이라고 생각하나요?

"세계적으로 이런 방식은 없을 겁니다. 잔인하죠. 10년 넘게 가요를 부르던 가수가 경쟁하고 탈락하고, 그것도 흔히 접할 수 있는 가요를 부르면서요. 안타깝죠."

-그럼에도 나가수에 출연한 이유는?

"후회할 것 같아서입니다. 개인적으로 인생은 모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삶 속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부지런히 살자. 무슨 일을 해도 감사하게 살자.' 앞으로도 나가수를 통해 더 열심히 살 것 같아요."

바비킴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팬들 덕분” 이라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바비킴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팬들 덕분” 이라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salt@donga.com

▶LA 흑인 폭동…깨진 아메리칸 드림

-1994년 데뷔해 2004년 '고래의 꿈'을 발표하기 까지 무명 생활이 길었죠. 2살 무렵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는데, 어떻게 돌아오게 됐나요?

"스무 살 때까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만 살았어요.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동으로 한국으로 갑작스럽게 왔고요. 부잣집 아들 교포가 음악이 하고 싶어 한국에 온 것과는 아주 달랐죠."

그는 잠시 쓴 커피를 마시며 생각에 잠겼다.

"미국에 이민 간 건 아버지의 트럼펫 연주자 꿈 때문이었어요. 가시자마자 아버지는 중국인이 운영하는 조그만 바에서 월급도 제대로 못 받고 연주를 하셨어요. 나중에는 꿈을 포기하고 막일을 하셨죠. 겨우 돈을 모아 사업을 시작했지만 흑인 폭동으로 거지가 돼 온 가족이 십 원 한 장 없이 한국으로 도망 왔어요. 집도 제대로 없고 친척 도움으로 한국생활을 시작했죠. 저는 '그 놈의' 음악을 하겠다고 덤볐지만, 11년간 아무것도 안 됐습니다."

-미국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인종차별이죠. 뚱뚱하다고 여드름이 많다고 놀림 받듯 동양인들도 생긴 걸로 놀리나 보다 하고 받아 들였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놀리는 사람들 눈에서 악의가 느껴졌어요. '나는 너를 인종 때문에 싫어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그럼 나는 누구 탓이라고 생각하겠어요? 부모님이라고 생각하죠. 그때부터 방황하기 시작하면서 공부를 안 했습니다."

"아버지처럼 되고 싶어서 중학생 때 트럼펫을 시작했는데 아버지가 반대하셨어요. 그래서 야구를 시작했죠. 열심히 했어요. 하지만 크니까 야구를 직업으로 생각할 수가 없더군요. 경쟁자들은 덩치가 크고. 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지만, 키가 작은 나는 웬만한 선수보다 3배 더 훈련할 것을 요구받았어요. 포기했죠."

"내가 과연 뭐를 할 수 있을지 방황했죠. 당시에 아마추어 클럽을 가면서 랩도 하고 노래도 하고 몰래 음악을 했어요. 한국에 와서 어학당을 2년 정도 다니다가 다시 미국에 갔는데 거기서 아버지의 도움을 받았죠. 아버지 소개로 오디션을 받게 됐어요."

-이렇게 목소리가 좋은데 데뷔 초에는 래퍼로만 활동했어요. 왜 그랬나요?

"오디션 때 랩과 노래를 불렀는데 랩은 끝까지 들었는데 노래를 1절 듣고 다 끊으셨어요. 팀장이 전화해서 '네 목소리는 노래는 안 되고, 랩을 잘하는 것 같다. 스타일도 마침 레게 스타일이라서 마침 앨범 준비하는 형들이 있다. 듣고 연락을 다오.'라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객원 래퍼로 들어갔다가 상의 후 멤버가 됐습니다."

1994년 데뷔 후에도 EBS 영어 교육 프로그램 성우, 음악 세션 등 그는 아르바이트를 닥치는 대로 했다. 그리고 2004년 '고래의 꿈'이라는 좋은 노래를 선물로 받게 돼 긴 무명의 터널을 벗어나게 된다.

▶4월 추락사고…하반신 마비의 위기…그리고 반전

바비킴은 '나가수'에 무척 감사함을 느낀다. 4월 4m 높이 난간에서 떨어져 갈비뼈를 크게 다쳤던 그를 일으켜 세운 게 '나가수'이기 때문이다.

"운이 나빴으면 하반신 마비가 올 수 있었던 큰 사고였어요.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왜 하필 저예요? 라고 하늘에 하소연했죠. 숨쉬기조차 고통스러운 순간 제 눈에 들어온 건 병실 TV에 나온 '나가수'였죠. 출연 얘기가 오가던 중 사고를 당했거든요. 이런 기적 같은 반전에 감사하고 나가수에도 감사합니다."

후유증으로 아직도 재채기를 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한다. 나가수에 출연하려고 그는 보컬 트레이닝부터 다시 받았다.

트럼펫 연주자인 아버지 김영근 씨는 "순위 생각 말고 네가 가진 걸 모두 쏟아 부어서 후회를 남기지 말라"고 조언했다. 아버지는 그가 가장 어려워하는 음악 선배다.

-바비킴 씨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요?

"아버지는 음악인으로서 고집 세고 까다로운 분이죠. 아직도 제 모습을 다 안 보여줬다고 질타하세요."

'나가수'에 출연하고 어린이부터 노년까지 팬 층도 두꺼워졌다. 그의 팬을 자청한 배우 박중훈은 트위터에 "자유로운 영혼에서 나오는 듯한 '필(feel)'이 매력적"이라며 "대개 필 좋은 가수는 에너지 과잉으로 부담스러운데, 바비킴은 편안하면서도 강하게 사람을 빨아들인다"고 평했다.

바비킴은 23일 2차 경연 방송을 앞두고 있다. 이미 녹화는 끝났다. 그는 호주 멜버른 시드니 마이 뮤직홀에서 치러진 이번 경연에서 김현식의 '사랑 사랑 사랑'을 불렀다. 노래 도중 마이크가 꺼지는 아찔한 경험도 했지만 그는 멈추지 않고 끝까지 불렀다.

-끝에게 팬들에게 전할 말씀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팬들 덕분입니다. '나가수'에 나오고 짧은 시간 안에 팬들이 보여준 사랑과 관심은 충격적이었어요. 부가킹즈 4집을 냅니다. 전국 투어도 연말까지는 할 거예요. 나가수는 꼭 중간 탈락하지 않고 명예졸업(7차례 경연에서 살아남은 가수에게 주어지는 영예)하고 싶어요."

최현정 기자 phoebe@donga.com 
박영욱 동아닷컴 기자 pyw06@donga.com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스마트폰 앱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