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블라인드’는 스릴러? 김하늘의 성장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15일 12시 50분


‘블라인드’  욕조 장면 촬영 중 슬레이트를 들고 밝게 웃어보이는 김하늘. 그때는 웃었지만 상처를 가진 민수아로 살아가는 동안 몹시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사진출처=레몬트리.
‘블라인드’ 욕조 장면 촬영 중 슬레이트를 들고 밝게 웃어보이는 김하늘. 그때는 웃었지만 상처를 가진 민수아로 살아가는 동안 몹시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사진출처=레몬트리.
"뺑소니 목격…아니 사건을 느끼신 본인 맞고요?"

시각장애인이 뺑소니 사건을 목격했다. '목격'이란 단어가 어색하다. 그래서 순박한 인상의 조희봉 형사(조희봉)는 단어를 수정한다.

10일 개봉한 영화 '블라인드'는 이 아리송한 상황에서 출발한다. 시각장애인 민수아(김하늘)는 최초 목격자가 된다. 경찰대를 다니다가 장애를 입은 수아는 예민한 감각을 더해 범인과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진술을 한다. 하지만 제2의 목격자 기섭(유승호)이 등장해 이를 뒤엎는다.

이 영화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싸움이다. "보이진 않아도 알 수 있는 건 많다"는 수아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는 기섭. 엇갈린 증언을 조합해 가며 진실의 조각을 찾아간다. 관객 역시 인물들의 외양에 속으면 안 된다. 빗길에 서 있던 수아를 차에 태워주던 친절한 남자처럼….

하지만 잔혹한 장면과 '한니발' 수준의 범인이 나오는 스릴러를 기대한 관객이라면 조금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영화는 민수아의 성장담에 더 가까우니까.

▶ 스릴러 영화, 체온을 가지다

범인을 쫓고, 잡는 과정의 재미와 스릴를 중시했던 기존의 스릴러 영화들과 달리 '블라인드'는 오히려 코끝을 찡하게 하는 장면이 많다.

3년 전 교통사고로 동생 동현과 시력을 동시에 잃고 외롭게 살아가는 수아의 모습이나 충직한 안내견 슬기의 죽음 등이 그렇다. "내가 좋아하면 다 떠나거든. 부모님도 그랬고, 동현이도 그랬고, 슬기도 그랬고…" 수아가 기섭에게 덤덤하게 자신의 아픔을 털어놓는 대사는 처량하게 느껴진다.

"뺑소니가 확실하다"는 자신의 말을 건성으로 듣는 경찰들에게도 당당함과 품위를 잃지 않는 수아지만, 어딘가 미소가 씁쓸하다.

그런 수아에게 사건은 또 한 번의 '터닝포인트'가 된다. 철저히 믿었던 자신의 추리가 흔들릴 때 좌절하고, 범인의 협박에 약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조 형사와 함께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가며 그녀는 잠시나마 생기를 띄고, 포기했던 꿈을 다시 꾸기도 한다. 또, 수아에게는 조 형사, 기섭, 슬기 등 든든한 조력자가 있다.

수아는 매 단계를 거치며 성장한다. 특히 죽은 동생을 연상케 하는 기섭은 이야기의 한 축을 완성한다. 거친 말투에 반항심 가득한 기섭을 보며 수아는 동현을 떠올리고, 또 그에게 누나 노릇을 하면서 죄책감을 던다.

결정적으로 수아 스스로 사건을 해결하면서 자신을 죄여오던 것들을 모두 벗어던진다. 동생의 죽음, 보이지 않는 눈. 변한 것은 없지만 또 위안받을 가족을 얻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시 입성한다. '마지막 행동'이 수아를 구원한 셈이다.

‘블라인드’는 조주연 배우와 연기견까지 호연을 보여준다. 왼쪽 위부터 유승호, 조희봉, 양용조, 달이. 사진제공=레몬트리.
‘블라인드’는 조주연 배우와 연기견까지 호연을 보여준다. 왼쪽 위부터 유승호, 조희봉, 양용조, 달이. 사진제공=레몬트리.


▶김하늘, 어디까지 가려고?

또한 이 영화는 '김하늘'이란 배우가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준다.

1996년 한 의류 브랜드의 모델로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김하늘은 데뷔작부터 주연만 해왔다. '얼굴만 예쁜' 배우였다면 금방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금방 연기력 논란의 딱지를 뗐다. '블라인드'의 안상훈 감독이 지금의 김하늘을 두고 "강박에 가깝게 준비를 해오는 배우"라고 평할 정도.

그리고 줄곧 '현명한 선택'을 보여줬다. 위태로운 10대(영화 '바이준, 1998'),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드라마 '피아노'), 로맨틱 코미디의 여왕(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2002'), 도도한 여배우(드라마 '온에어, 2008') 등 '파격 노출'과 같은 극단의 방법이 아닌 호감과 이미지를 함께 높이는 방법으로 다양하게 필모그래피를 채워왔다. 그런 신중함 덕에 스타와 배우의 길을 안정적으로 조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첫 스릴러 도전 '블라인드'. 김하늘은 시각장애인으로 분해 식상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보여줬다. 로맨틱 코미디에서 보여준 사랑스러움을 유지하면서.

이 영화가 스릴러로서 매끄럽게 흘러가는 데는 안재훈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김하늘의 자연스러운 연기가 주효했다.

긴장감을 유발하는 장치로 수아의 장애가 활용한 만큼 김하늘은 '정말 눈이 보이지 않는 듯' 연기로 관객을 몰입시켰다. 수아는 범인을 눈앞에 두고 보지 못하고, 다급한 상황에서도 선뜻 행동하지 못한다. 특히 지하철에서 수아가 범인에 쫓기는 시퀀스에선 닫힌 출구를 향해 뛰는 수아를 보고 있노라면 답답함에 가슴을 칠 지경이다.

과거 장애(문소리, 영화 '오아시스, 2002')와 병(김명민, 영화 '내사랑 내곁에, 2009')을 가진 영화 속 인물들을 떠올려 보자. 신체적 제약을 '흉내'가 아닌 '연기'하는 것은 엄청난 고통과 훈련이 동반한다는 셈. 데뷔 13년차 김하늘은 '블라인드'를 통해 아직도 보여줄 게 많음을 스스로 입증했다.

영화 ‘블라인드’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두명의 목격자가 엇갈린 진술을 하면서 진행 된다. 사진제공=레몬트리.
영화 ‘블라인드’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두명의 목격자가 엇갈린 진술을 하면서 진행 된다. 사진제공=레몬트리.


▶'블라인드' 스릴러와 휴먼드라마 그 중간에


'블라인드'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짜임새 있는 전개만으로도 볼만하다. 수아가 느끼는 세상을 구현한 장면들도 인상적이다. 111분 동안 쉴 틈 없이 쫓고 쫓기는 영화는 아니지만, 스릴러로서 기본 이상의 재미를 선사한다.

아역배우에서 남자 연기자로 존재감을 보여준 유승호와 무거워질 수 있는 영화의 분위기를 유쾌하게 전환해주는 조희봉, 눈빛 연기만으로도 존재감을 과시한 양영조 등 주·조연 배우들도 주목할 만하다. 달이의 처연한 눈빛 연기는 마음을 울리기도.

또, 스릴러가 아닌, 휴먼드라마로 조금 틀어 본다면 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다. 비극적인 사고 이후 사회로부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소외시킨 한 여인이 세상으로 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금은 아쉬운 부분들에 너그러워질지도 모른다. 덜어냈다면 지금보다 더 세련된 스릴러가 됐을 수아-동현의 이야기라든지, 후반부 작위적인 몇몇 장면들이 그렇다.

그리고 털털하고 사람 좋아 보이는 '1박2일'의 '야생녀' 김하늘을 더 신뢰하게 될지도 모른다. 김하늘이 민수아처럼 치명적인 좌절을 겪진 않았지만 자신의 가뒀던 장벽들을 뚫고 세상으로 다시 나온 수아와 끝없이 도약하는 김하늘은 무척이나 닮아있으니까.

사진출처=레몬트리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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