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장규수 박사의 ‘스타시스템’]⑩연예인과 기획사 그리고 PD란 먹이사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7월 25일 11시 34분


● 갑과 을의 수직관계에서 비리가 발생한다
● 대리인 자격제도의 도입과 PD의 업무분리 필요

故장자연 씨의 전 매니저 유장호 호야 엔터 대표 기자회견 장면. 연예산업의 피해자는 대부분이 연예인 지망생으로 기획사와 제작사 PD들이 이들을 착취하는 구조다.스포츠동아 DB
故장자연 씨의 전 매니저 유장호 호야 엔터 대표 기자회견 장면. 연예산업의 피해자는 대부분이 연예인 지망생으로 기획사와 제작사 PD들이 이들을 착취하는 구조다.스포츠동아 DB

경찰청은 최근 연예인 불법행위 집중단속을 실시한 결과 140명을 검거했다고 밝혔다. 연예인 지망생에게 방송출연을 조건으로 금품을 받아 가요순위를 조작하거나 기획사와 PD가 금품을 주고받는 등 예전부터 만연한 비리가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한 셈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기획사가 연예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경우가 33.6%에 달했다는 결과는 물론이고 PD 역시도 검거된 자들 중 20%나 연예인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줬다는 조사결과 또한 충격을 안겼다

주된 피해자는 당연히 연예인 지망생이고 가해자들은 PD나 관련협회 혹은 연예기획사 등 우월적인 위치에 있는 이들이다. 대한민국 연예산업이란 출연을 미끼로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는 관행이 만연해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특히 금품수수, 횡령 등 금전적 범죄가 37.8%를 차지한다.

이러한 결과는 비록 4개월간의 단속에서 적발된 것이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도 저질 연예기획사 관계자와 PD가 출연을 미끼로 연예인들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자행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 연예산업의 대리인 자격제도의 도입

미국은 엔터테인먼트산업에 있어 중개인, 즉 에이전트(agent)에 대한 자격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각 주별로 정해진 법률에 따라서 공인된 자격을 갖춘 에이전트들이 연예활동에 대한 중개를 할 수 있고, 법으로 정해진 수수료를 받으며 공정한 거래를 중개, 대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 또한 상공부 산하의 경기인(經紀人)협회를 통하여 경기인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일정한 교육과 자격검정시험을 통하여 취득한 중개인, 즉 문화경기인, 연예경기인 자격을 갖춘 자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회사의 형식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지만 전문적인 경기인허가를 받은 자가 최소 2인 이상이 있어야 연예기획사를 설립할 수 있으며, 정기적으로 교육과 관리를 실시한다.

따라서 한국의 연예산업에 있어서도 전문적인 인력을 양성하고 공인자격제도를 실시하여 일정부분을 관리, 규제하면 이러한 상식이하의 문제들은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결국 이러한 문제들은 관련 법규나 관리가 미숙하고 현장의 전문적인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아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자격제도의 도입과 관련 기관의 관리를 통해서 상도덕에 맞는 업무의 진행과 연예산업의 전문화가 이룩될 수 있으며, 연예인에 대한 부당한 대우가 없어질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으로 정해진 수익분배율을 따르며 연예인과 기획사가 고용의 관계가 아닌, 동등한 파트너의 입장에서 상호간의 이익을 도모하며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방송사의 내부처벌규정 강화 필요

특히 이번 사건에는 가수들의 출연과 인기순위에 PD와 관계자들이 비리를 저질러 29명이나 적발되었는데, 그 중에서 PD가 12명이나 금품을 받아서 불구속 입건되어 충격을 주고 있다.

그러나 몇 년마다 한 번씩 되풀이되는 일명 'PD파동'을 볼 때, 그 처벌의 수위가 약하다는 지적이 많다. 뇌물과 향응 등 비리를 저지른 PD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은 후, 시간이 지나면 계속 업계에서 활동하다보니 계속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공중파 방송사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모PD는 과거에 PD파동에 연루되어 퇴사한 후, 케이블 방송사로 옮겨서 활동하다가 최근까지 코스닥에 상장한 엔터테인먼트사의 대표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유명 라디오 DJ들도 금품수수로 물의를 일으켰으나 몇 년 후 복귀한 사례도 다수 존재한다.

필자의 연구논문에서도 제안했듯이, 연예산업에서도 삼진아웃제도의 활용 등 보다 강력한 처벌방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음주운전 적발의 경우처럼, 계속해서 비리를 저지르는 프로듀서, 디렉터, 작가들은 업계에서 퇴출시키는 것이다.

연예인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 방송출연정지 조치를 취하면서, 방송사들은 물의를 일으킨 PD들을 급여삭감, 정직 등 가벼운 처벌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PD, 즉 프로듀서가 디렉터를 겸하는 한국의 시스템도 끝나야한다. 프로그램의 기획과 제작을 총괄하는 프로듀서는 예산과 관련된 부분은 물론 프로그램의 제작연출까지 맡아 캐스팅과 역할의 비중까지 좌우하는 막강한 권력을 갖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 방송사의 PD들은 연예인의 캐스팅과 출연료 등급의 결정 그리고 작품에서의 비중까지 좌지우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선진국의 사례나 영화, 광고 등의 경우처럼 프로듀서와 디렉터의 역할분리가 요구된다. 즉 PD의 과도한 권한이 축소되어야 한다.

가수가 되기를 꿈꾸는 연예인 지망생들이 한 실용음악학원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연예산업 중흥을 위해서는 공인된 대리인(에이전트)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동아일보 DB
가수가 되기를 꿈꾸는 연예인 지망생들이 한 실용음악학원에서 훈련을 받고 있다. 연예산업 중흥을 위해서는 공인된 대리인(에이전트)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동아일보 DB

■ 갑과 을의 수직적 관계란 딜레마

이러한 문제점은 결국 '갑'과 '을'의 관계, 즉 출연을 희망하는 자와 출연을 결정하는 자의 입장이 명확히 갈리면서 발생한다.

이번 사건에서 발각된 계좌이체로 금품이 제공된 건수가 이 정도니, 현금거래와 향응제공 등을 포함하면 그 정도는 아주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연예인과 기획사 그리고 방송사와의 수직적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연예인이 더욱 실력을 향상시키고, 연예기획사도 보다 전문적인 집단으로 무장하면 방송사, 영화사 등 미디어제작사들과 동등한 콘텐츠제작파트너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업무의 수직적 시스템 외에도 문제를 발생시키는 오랫동안 관행화된 PD와 매니저들과의 관계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가 더 있어 보인다.

첫째, 직종별 수준차이가 심하다. PD라는 직업군은 대부분 높은 경쟁률을 거친 고학력자들로 구성되고 전문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매니저라는 직업군은 대부분 저학력자로 구성되어 있고 업무의 전문교육시스템도 아직 부실한 실정이다.

둘째, 오래된 나쁜 관행이 전수되고 있다. 금품과 향응제공 등 접대문화에 익숙한 나쁜 관행이 신입PD와 신입매니저들에게도 계속 전수되며 아직 후진적 시스템이 존속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십여 년 전, 방송사에서 일하다가 연예기획사로 회사를 옮기고 처음 매니저를 시작할 때, 아주 놀라운 경험을 직접 겪은 바 있다.

예를들면, 담당 연예인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회식은 출연자 또는 소속사에서 돌아가며 계산하는 등 PD와 매니저의 관계는 상하관계, 주종관계인 비상식적인 측면을 수없이 경험한 것이다. 이번에 드러난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인 것이 현장의 실태다.

이번 사건은 연예인에게 부당한 불법행위가 드러난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반대로 스타들의 무리한 요구와 행태가 기획사나 방송관계자들을 곤란하게 만들며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리고 실력 없는 연예인들이나 저질 매니저들이 금품과 향응을 무기로 출연을 의뢰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그러나 명확한 사실은 연예인과 기획사 그리고 방송사들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각 분야의 전문 집단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상호협력하고 수평적인 파트너의 관계에서 공정한 상거래가 이루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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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규수 | 연예산업연구소 소장 gyuso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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