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풍산개’의 풍산이가 ‘아저씨’·‘의형제’를 찍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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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6월 23일 12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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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풍산개’ 스틸컷. 사진제공=더홀릭컴퍼니
영화 ‘풍산개’ 스틸컷. 사진제공=더홀릭컴퍼니

'풍산개'는 김기덕 영화다. 영화 포스터를 보면 새까만 얼굴을 한 윤계상이 오만상을 찌푸리고 있다. MBC '최고의 사랑'에선 생크림보다 부드러운 남자이지만 '풍산개'에선 비장하고 심각하다. '김기덕 영화=불편함'이란 편견이 되새김질 된다.

이야기는 서울에서 평양까지 3시간이면 물건을 배달하는 의문의 사내(편의상 풍산, 윤계상)로부터 시작한다. 어느 날 그는 물건이 아닌 사람을 빼달라는 의뢰를 받는다. 남한으로 망명한 북측 고위 간부의 애인 인옥(김규리)이다. 두 사람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애틋한 사랑을 느낀다.

진지한 줄거리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여니, "누와르 인줄 알았는데, 찍고 나니 코미디도 있더라"라는 배우 김규리의 말이 떠올랐다.

전재홍 감독은 지난 14일기자간담회에서 "영화는 토털 엔터테인먼트"임을 강조했다. 감독의 말대로 이 영화가 어떻게 관객들을 '엔터테인' 하는지 지난해 화제작과 비교했다.

비교 대상은 '황해'와 '아저씨'다. 특히 주인공 풍산이 허름한 외향과 모습,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에너자이저 괴력은 '황해'의 주인공 구남(하정우)과 '아저씨'의 태식(원빈)과 닮았다.

▶'풍산개'의 풍산 vs '황해'의 구남 vs '아저씨'의 태식

배우 윤계상은 의문의 사나이 풍산으로 변신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제공=더홀릭컴퍼니
배우 윤계상은 의문의 사나이 풍산으로 변신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준다. 사진제공=더홀릭컴퍼니

#1 풍산의 등 뒤로 총알이 쏟아진다. 다리에서 피를 철철 흐르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다친 몸으로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괴력의 주인공…. 액션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그런데 보다보면 문뜩 궁금해지는 게 있다. 저들만 모아 싸움을 붙이면 과연 누가 이길까?

'풍산개'의 풍산과 좀처럼 죽지 않는 '황해'의 구남과 인간병기 '아저씨' 태식을 맞붙여보자.

풍산은 남한의 국가정보원과 북한 인민군을 맨손으로 제압한다. 숱한 고문과 부상에도 인옥을 구하기 위한 거침없는 돌진은 기본이다. 그 밖의 특기로는 분노의 괴성 지르기, 식사 대신 흡연하기 등이 있다.

풍산처럼 '아저씨'의 태식은 외부와의 소통을 최소한으로 하며 살아가는 '은둔형 외톨이'이다. 과묵한 점은 풍산과 태식 둘 다 비슷하다. 물론 풍산은 대사 하나 없이 눈빛으로만 의사소통하지만.

또한 둘 다 마음을 보듬어줬던 여인 인옥과 소미가 있어 그들을 지키기 위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윤계상, 원빈 모두 꽃미남 배우라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그에 비해 구남은 현실적인 능력치를 가지고 있다. 사실 청부살인에 앞서 예행연습을 해야 하는 평범한 택시 운전수이기 때문이다.

세 사람이 한 영화에 출연한다면, 싸움의 승산은 태식이 가장 유리하다.

'아저씨'에서 전직 특수 요원 태식이 훈련받은 장정 스무 명을 시원하게 처치하는 장면은 통쾌함을 넘어선 재미를 준다. 그만큼 태식은 압도적인 공력을 갖췄다. 단순하게 물리친 사람 수를 따져도 태식이 훨씬 많다.

대신 근성은 '황해'의 구남이 최고다. 쫓아오는 경찰을 피해 골목길에서 도망치고, 추격자들이 있음에도 서울에서 울산까지 도망친다. 마지막까지 복수를 완성하려는 끈기를 보여줬다.

이쯤 되면 셋 중에 풍산이 가장 어정쩡하다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겐 여태껏 다른 영화에서 보지 못했던 '스페셜 무기'가 있다. 바로 장대다. 장대 하나만 있으면 휴전선도 가뿐히 넘는 게 바로 풍산이다. 전재홍 감독의 설명을 따르자면, 남북을 자유롭게 오가고 싶은 마음을 장대에 담았다고 한다.

죽을 고생을 하며 얼굴이 하얗게 질리도록 밀항을 했던 구남이 알면 분통을 터트릴 일이다. 처음엔 헛웃음이 날 수도 있지만 그를 보며 조금 부러움이 이는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풍산은 여자에게 사랑을 확인받는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인옥과 격정의 키스를 나누기도 했다. 반면, 구남의 아내는 행방이 묘연하고, 태식의 아내는 불의의 사고로 갑자기 죽었다. 그런 의미에서 풍산이 진정한 '위너'일지도.
▶풍산개' vs '의형제' - 김기덕 키드의 맞불

#2 "동무, 자장면 소화되기 전에 죽고 싶나?"

북한 공작원 우두머리(유하복)가 인옥을 협박하는 장면이다. 살벌한 대사인데,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온다.

'황해'의 면가(김윤식 분)와 김태원 사장(조성하 분)을 섞어놓은 듯한 카리스마가 있다.

북한에서 온 그는 '제국주의 미국'의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고 클래식을 들으며, 스카프를 두르는 멋쟁이다. 풍산과 인옥이 참아왔던 감정을 폭발시키며 키스를 나누는 모습에 "운명을 느꼈다"고 말하는 로맨티시스트기도 하다.

이처럼 '풍산개'는 영화 곳곳에 '깨알 같은' 웃음을 숨겨 놨다. 수시로 블랙 코미디와 휴먼드라마를 오가 2시간의 러닝 타임이 지루하지 않다.

“키스야? 인공호흡이야?” 신경질적인 질문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아 웃음이 난다. 전재홍 감독은 영화 곳곳에 웃음을 심어놨다. 사진제공=더홀릭컴퍼니
“키스야? 인공호흡이야?” 신경질적인 질문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아 웃음이 난다. 전재홍 감독은 영화 곳곳에 웃음을 심어놨다. 사진제공=더홀릭컴퍼니

지난해, 또 다른 '김기덕 키드' 장훈 감독은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 '의형제'를 내놓았다. 한때 국정원 요원과 남파 공작원이었지만, 조직에서 버림 당하고 자신의 가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다.

개인이 국가의 이해관계에 의해 이용된다는 점, 무겁고 피비린내 날 수 있는 소재를 비교적 유쾌하게 포장했다는 점 등이 두 작품의 공통점이다. 무엇보다 남북문제를 지금의 시각, 젊은이들의 생각으로 담아냈다.

하지만 현재 전재홍 감독과 장훈 감독이 다른 길을 가듯, 영화의 결말도 전혀 다르다.

'의형제'는 송강호와 강동원의 따뜻한 우정으로, 예민한 문제를 비켜간다. '풍산개'는 배우들의 입을 빌려 직접적으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풀어낸다.

이는 풍산이 국정원과 북한 암살단을 한 공간에 모아 놓는 장면에 집약되어 있다. 누가 이 상황을 만들었는지, 함께 살아갈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하기보다 무의미한 희생을 되풀이하는 남과 북의 답답한 현실을 그대로 그려냈다. 보는 이에 따라 너무 정직한 대사가 민망할 수도 있다. '지나치게 가르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밖에도 '풍산개'에는 가끔 불편한 장면이나 설정이 있다. 15세 관람가의 상업영화로 손색없이 매끄럽게 흘러가는 '의형제'와 다른 점이기도 하다. CG였다고는 하지만 '그곳'을 침으로 찌르는 고문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몸서리 처진다.

▶돈이 아닌 열정으로 영화는 계속 된다

이 영화의 제작비는 2억 원. 그렇게 총 제작비 100억 원의 영화들과 경쟁한다. 이 영화를 찍을 당시 김기덕 필름에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없었다.

전재홍 감독은 영화를 찍으면서 나중엔 100원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영화가 시작할 때 '투자 : 김기덕, 풍산개 스태프'라는 글귀가 보일 때 마음이 뭉클해지기도 한다.

배우와 스태프들의 노 개런티 참여, 배우의 모습을 보여주는 윤계상, 한파에 진흙 누드 등 영화 외적으로도 흥미로운 점이 많은 영화다. 액션, 멜로, 코미디 등의 다양한 장르가 버겁게 조화를 이룬다는 점이 아쉽지만 매력적인 인물과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즐기다 보면 120분은 금방 지나간다.

동아닷컴 김윤지 기자 jayla301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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