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공존을 향해/3부]<1>‘富益健 貧益病’을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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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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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정부 팔 걷으니 ‘건강격차 터널’… 끝이 보였다
가난 서러운데 아파도 돈 때문에 병원 못가고… 일부 지역선 위내시경 받으려면 옆도시 가야

■ 이런 현실

이제 건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꾸준한 관리를 넘어서 돈을 들여야만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이 현실. 유명 대학병원들은 앞 다퉈 서울 강남지역에 최고급 건강검진센터를 열고 있다. 1억 원을 호가하는 연회원권에 피부관리, 안티에이징 서비스, 주치의 개념까지 도입해 건강해지고 싶은 부유층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에 반해 평생 위내시경 한 번 받아보지 못한 채 병을 키우는 건강소외계층도 존재한다.

○ 저소득층 36% “아파도 돈 없어 병원 못 가”

보건복지부가 2009년 발표한 ‘2008년 국민건강통계’에 따르면 ‘건강검진수진율’(최근 2년간 건강검진을 받은 비율)과 ‘암검진수진율’(최근 2년간 암 검사를 받은 비율)은 소득이 적을수록 낮아지는 경향이 뚜렷했다. 건강검진수진율의 경우 소득수준 ‘상’인 응답자의 58.1%가 검진을 받은 것에 비해 ‘하’인 응답자는 39.2%만 받았다. 이 통계는 2008년 4600가구 1만2528명을 대상으로 조사했으며 소득수준은 가구소득을 가족 수로 나눈 값을 근거로 하위 25%를 하, 다음 25%씩을 중하 중상 상으로 구분했다.

병원을 가야 할 일이 생겼을 때 가지 못한 비율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저소득층에 병의원보다 치과의 문턱이 높았다. 소득수준 하인 응답자 중 26.1%가 병의원에 못 갔다면, 치과의 경우 48.8%가 진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나 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그 이유는 ‘경제적 문제’(36.7%), ‘가벼운 증상이라 생각’(19.5%), ‘이용시간 없음’(19.0%) 순이었다.

○ 총표준사망률 창녕 ‘662.97’ vs 분당 ‘336.03’


건강격차는 소득뿐 아니라 지역별로도 크게 갈렸다. 이 사실은 전국 시군구 건강집중지수에 잘 나타나 있다. 보건복지부가 의뢰를 통해 2006∼2009년 실태를 조사한 전국의 △총표준사망률 △암표준사망률(이하 75세 미만) △심뇌혈관질환표준사망률 △손상표준사망률을 살펴봤다.

서울시내 구별로 살펴보면 총표준사망률(10만 명당 사망자)이 가장 높은 구는 중랑구(486.80) 금천구(483.49) 중구(480.91) 순이었으며 가장 적은 구는 강남구(354.88) 서초구(358.52) 송파구(392.09) 순으로 드러났다. 반면 각 부문에서 가장 높은 사망률을 기록한 지역은 종로구(암표준사망률) 강북구(심뇌혈관질환 표준사망률) 중구(손상표준사망률) 등으로 모두 강북에 집중됐다.

전국적으로 살펴보면 총표준사망률의 격차는 더욱 도드라진다. 전국에서 총표준사망률이 가장 높은 경남 창녕군(662.97)은 전국에서 최소 총표준사망률을 기록한 경기 성남시 분당구(336.03)의 두 배 정도였다.

○ 전북 임실과 경남 의령, 응급의료기관 ‘0’


인구 2만5600여 명의 전북 임실군에는 응급의료센터와 기관이 하나도 없다. 응급의료를 전담하는 의사나 간호사는 더더욱 없다. 한 노인복지센터에 활동가로 일하는 이모 씨는 “건강검진 차량이 가끔 오지만 기본적인 검사뿐이라서 위내시경을 받으려면 50km 떨어진 전북대병원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4월 발표된 응급의료 취약지 분석 및 모니터링과 응급의료 자원의 효율적 지원방안 도출 보고서에는 이러한 현실이 잘 나타나 있다. 232개 시군구 중에서 전북 임실군, 경남 의령 산청군, 전북 진안군 등이 취약지로 나타났다.

■ 이런 대안


총 5만9825명 중 홀몸노인이 800여 명, 장애인 3200여 명, 기초생활수급권자가 6350여 명(2006년 기준). 철거민들이 집단 이주하면서 마을의 틀이 만들어졌고 도시개발공사가 지은 아파트를 중심으로 저소득층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었다. 주변 해운대 신시가지와의 차이는 사망률에서 더욱 도드라졌다. 표준사망률을 1∼10분위로 구분할 때 신시가지의 좌동과 우동이 최저치인 1, 2분위에 속했다면 반송지역은 최고치인 10분위에 있었다. 다닥다닥 집들이 붙어 있는 동네에 구멍가게가 유독 많았던 이유도 주민들의 높은 흡연율과 음주율 때문이었다.

해안가 내륙에 위치한 부산 해운대구 반송동. 여기서 20년째 장애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는 유제헌 씨(60)는 봉사활동을 하며 몸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무거웠다. “장례식을 치른 후 자식에게 전화를 걸어보면 ‘내 책임이 아니다’라는 자식도 있어요. 너무 가난해서 돌볼 여력이 없다는 사람도 많고요. 아파도 병원에 데리고 갈 사람이 없는 현실이 마음 아팠죠.” 그런 유 씨조차 봉사활동을 하면서 장애인 남편을 돌보느라 18년째 앓고 있는 허리디스크 치료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 부산 반송동, 지역주민 참여 ‘건강 희망 찾기’


반송동에 변화가 움튼 것은 2007년 8월. 부산대 윤태호 교수(예방의학) 연구팀은 이때부터 2년간 ‘건강한 반송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취약계층의 건강 수준을 올리기 위해 연구팀이 중점을 뒀던 부분은 보건소 등 기존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고 지역 주민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

우선 보건소의 업무를 건강형평성 개선사업에 집중하도록 했다. 인력 부문에서는 주 2회 보건지소에 근무했던 금연상담사를 상주시켰고 알코올상담사와 보건소 및 주민을 잇는 활동가 1명을 추가했다. 큰돈을 들이지 않고 할 수 있는 걷기운동을 장려하기 위해 마을 내 걷기 코스를 개발하고 다른 지역보다 유독 높은 청소년 흡연율을 낮추려 금연 금주구역을 정하고 캠페인을 벌였다. 주민 홍석양 씨(55)는 “어린이집을 돌아다니며 흡연과 음주의 폐해를 쉽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게 어떤 물질적인 지원보다 효과가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효과가 나타났다. 흡연율이 4.6% 감소했고 주 5일 30분 이상 신체활동 실천율 또한 2배 이상 증가했다.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지난해에는 주민들을 중심으로 건강반송네트워크가 결성돼 현재 40여 명의 주민 건강지킴이가 활동하고 있다. 건강에 대한 지역의 관심이 높아지자 주민들의 오랜 염원인 건강증진센터도 들어섰다. 7개월째 건강지킴이로 활동하는 유 씨는 “보건소의 교육을 받아 어르신과 장애인의 건강과 영양 상태를 점검하다 보니 내 건강도 돌보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영국, 범정부 차원에서 건강격차 해소사업


반송동프로젝트가 지역과 주민을 연계했다면 영국에서 1998년부터 7년 동안 1300만 명의 인구를 대상으로 했던 건강활동구역(Health Action Zones·HAZs)은 정부 차원에서 주도한 대표적인 시범사업이다. 1980년 건강 및 사회보장부서가 발간한 블랙리포트(The Black Report)는 영국 사회의 ‘어두운 진실’을 다룬 건강 불평등 보고서였다. 복지제도를 도입한 이후 전반적인 건강 수준이 높아졌는데도 지역 간, 계층 간 건강 불평등이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는 것이었다. 가난한 계층의 사망률이 부유층 사망률의 2배가 넘고 그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란 내용이다.

이 프로젝트의 특징은 목표가 구체적이라는 점. 정부는 2010년까지 평균수명을 남녀 각 78.6세, 82.5세로 설정하고 심장질환 뇌중풍(뇌졸중) 관련 질환에 따른 사망률을 최소 40% 줄이겠다고 했다. 평가지수 또한 구체화해 독감예방접종자 비율과 학교 내에서 최소 일주일에 2시간 이상 건강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 비율까지 높이도록 했다. 이화여대 최경희 교수(예방의학)는 “건강 격차의 원인을 사회구조의 불평등에서 찾고 이를 범정부 차원의 합동위원회를 꾸려 통합정책을 펼친 것이 효과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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