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후의 성장엔진을 찾아라]<2>브라질 미래 이끄는 자원개발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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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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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기업 배불리던 자원부국, 이 악물고 심해유전 독자개발

페트로브라스가 운용하는 반잠수식 석유플랫폼 P-52(왼쪽)는 심해유전에서 원유 시추와 가스전 개발 및 생산작업을 하는 해상종합기지다. 세계 3대 철광석 생산 기업인 발레의 카피타오도마투 광산(오른쪽)에서는 품질 좋은 적철광을 대량생산한 뒤 자체 철로와 항구를 통해 전 세계로 수출한다.
페트로브라스가 운용하는 반잠수식 석유플랫폼 P-52(왼쪽)는 심해유전에서 원유 시추와 가스전 개발 및 생산작업을 하는 해상종합기지다. 세계 3대 철광석 생산 기업인 발레의 카피타오도마투 광산(오른쪽)에서는 품질 좋은 적철광을 대량생산한 뒤 자체 철로와 항구를 통해 전 세계로 수출한다.
지난해 12월 14일 오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연안의 대서양 상공. 기자를 태운 헬리콥터는 망망대해 115km를 날아 눈이 시리게 푸른 바다 한복판에 자리 잡은 해상 종합원유 생산기지인 P-52 광구에 도착했다. 한국 취재진에게는 처음 공개된 P-52는 브라질 국영 석유에너지기업 페트로브라스의 반잠수식 석유플랫폼이다. 미국 주재 브라질대사관은 ‘10년 후 브라질’을 준비하고 있는 곳을 추천해달라는 본보의 연락을 받고 주저 없이 이곳을 꼽았다.

○ 공룡 국영기업이 브라질 자존심으로

한때 공룡처럼 몸집만 컸지 경영효율 의지가 없다고 해 ‘페트로사우루스’라고 불렸던 페트로브라스는 글로벌 에너지기업과의 피나는 경쟁과 혁신으로 이제 브라질의 자존심으로 자리 잡았다.

캄푸스 해상분지에 속한 1800m 깊이의 론카도 유정(油井)에 자리 잡고 있는 P-52는 하루 18만 배럴의 원유와 천연가스 750만 m³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있다. 8만 t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생산기지이지만 P-52는 강풍에 끊임없이 흔들렸다. 파도 소리, 원유와 바닷물을 분리하는 작업의 소음 탓에 귀마개를 해야 했다. 지름 34인치(86.36cm)의 파이프가 끝도 없이 뻗어 있었다. 엘데르 패스터 운영부장은 “녹색파이프는 물, 노란색은 천연가스, 회색은 원유가 지나간다”고 설명했다. 분리 과정을 거친 원유는 56km 길이의 심해 파이프라인을 통해 유조선에 실려 리우데자네이루 항으로 이동한다.

2006년 페트로브라스가 주도했던 캄푸스 유전개발의 성공은 브라질이 석유강국으로 부상한 전환점이었다. 현재 브라질의 석유생산능력은 1일 200만 배럴. 페트로브라스는 2014년까지 2240억 달러를 투자해 원유생산량을 1일 400만 배럴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담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

심해유전 개발에 필요한 투자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페트로브라스는 최근 기업공개(IPO)로 700억 달러를 끌어모았다. 투자자들이 페트로브라스의 ‘실력’을 믿어줬기에 가능한 결과다. 현재 페트로브라스의 시가총액은 2700억 달러. 미국의 엑손모빌(3130억 달러)에 이어 세계 2위의 에너지업체로 우뚝 섰다.

○ 심해유전에 달린 브라질의 미래

성공의 비결이 궁금했다. 30년 이상 이 회사에서 근무한 타다 요시 현장소장은 “1970년대 오일쇼크를 경험하면서 깊은 바다에서 석유를 뽑아내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감이 세계 최고 수준의 심해유전 개발기술을 가능하게 했다”며 “20년 이상 인고의 세월이 필요했지만 열매는 달콤했다”고 말했다.

브라질 민족주의 상징이었던 페트로브라스를 1990년대 중반 국제경쟁의 무대로 내몰았던 브라질 정부의 결정도 페트로브라스가 도약하는 계기가 됐다. 로베르투 울프 기술부장은 “외국 기업에 브라질 내 석유 채굴을 허용했다. 이 같은 경쟁을 거쳐 강해진 페트로브라스도 브라질에 머물지 않고 앙골라 나이지리아 등 30여 개국의 심해유전 사업에 진출했다”고 말했다.

브라질의 심해유전은 최대 1000억 배럴의 매장량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같은 심해유전을 통해 2020년까지는 1일 생산 규모를 540만∼570만 배럴로 늘려 세계 7위 산유국에 진입한다는 계획이다.

페트로브라스는 바이오에너지 분야에도 4년간 35억 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브라질은 에탄올과 석유를 함께 쓰는 자동차가 곳곳에서 눈에 띌 정도로 바이오에너지 강국이기도 하다.

○ “스마트 자원개발이 경쟁력”

지난해 12월 16일에는 브라질 최고의 철광석 회사인 발레가 운영하는 철광석 광산을 찾았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비행기로 1시간을 날아간 뒤 또 1시간 동안 차를 달려 도착한 ‘카피타오도마투’ 광산은 온통 적갈색이었다. 노천광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었고 캐낸 철광석은 8km 길이의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발레가 운영하는 화물기차역으로 쉴 새 없이 운반되고 있었다.

세계 3위의 철광회사인 발레는 전 세계 철광석 공급의 35%를 책임지고 있다. 그만큼 브라질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철광석회사에서 최고의 경쟁력은 얼마나 매장량이 많은 광산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지만 발레는 ‘스마트 자원개발’로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었다. 철광석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위해 설립한 ‘페로스기술센터’가 대표적인 사례. 이 연구소는 전 세계에 6대밖에 없는 장비로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화성 착륙 탐사선이 광물탐지작업에 사용했던 뫼스바우어 분광계도 보유하고 있었다. 호제리우 카네이루 소장은 “포스코를 포함한 전 세계의 고객사들에 발레가 생산하는 철광석에 대한 기술 조언이 연구소의 가장 중요한 임무”라며 “발레 철광석을 사용한 철강회사 제품의 품질이 높아지면 발레의 경쟁력도 높아진다”고 말했다.

1일 취임식을 한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신임 대통령은 브라질의 석유와 천연가스 자원에 대해 “브라질이 미래로 가는 패스포트(여권)”라고 당당히 밝혔다. 석유생산으로 브라질의 에너지 자급자족을 실현하는 한편 여기에서 나온 재원을 사회 공공사업에 대한 과감한 투자, 빈곤의 퇴치 및 계층 간 소득차 극복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했다.

2009년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는 세계 8위의 경제규모를 가졌고 구매력평가지수(PPP)로는 9번째 경제강국인 브라질. 브라질은 미래 성장동력인 석유와 광물자원 확보를 위해 ‘스마트’하게 준비하고 있었다.

글·사진=페트로브라스 P-52 광구·벨루오리존치 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5대 경제강국 진입, 인재 확보가 관건”▼

교육낙후-두뇌유출 고민… 기업 스스로 인력양성 나서

10년 내 경제규모 5위 국가의 반열에 오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운 브라질이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신경 쓰는 대목은 ‘두뇌유출(brain-drain)’ 차단이다. 아무리 부존자원이 많고 고속성장을 한다고 해도 핵심인재들이 브라질을 떠나는 현상이 지속된다면 국가의 미래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R&D) 투자가 중국이 1.4%, 일본이 3.4%인 반면 브라질은 1.1%에 그친다는 점도 브라질의 미래를 장밋빛으로만 볼 수 없는 대목이다. 페트로브라스와 발레 등 성공사례가 있지만 브라질은 아직 R&D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다.

지난해 12월 17일 리우데자네이루의 발레 본사에서 만난 루이스 멜소 발레기술연구소 소장은 “브라질의 미래는 해외유출 인재의 브라질 복귀와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 스카우트에 달려 있다”며 “무한경쟁에서 살아남을 길은 인재에 대한 과감한 투자와 국경을 허문 인재의 등용”이라고 말했다.

브라질에는 1100여 개 대학에 240여만 명이 재학 중이지만 종합대학의 역사는 100년이 채 안 된다. 대졸 인력이 전체 인구의 13%에 불과하다. 성인 문맹률도 11.4%로 높은 편이며 아마존 등 낙후지역에는 교사 수도 절대 부족하다.

대학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발레 같은 글로벌 기업은 자체적으로 인력 양성에 주력하고 있다. 발레 기술연구소는 브라질에서 독립연구기관 3곳을 운영하고 있다. 광물연구를 주로 하는 미나스제라이스 캠퍼스, 지속가능한 개발을 연구하는 파라 캠퍼스, 재생 가능한 에너지 개발을 연구하는 상파울루 캠퍼스가 그것이다.

미나스제라이스 캠퍼스의 학장은 호주 퀸즐랜드대 교수 출신이고 파라 캠퍼스의 학장은 영국 옥스퍼드대 박사 출신이다. 사람만을 불러오는 것이 아니고 해당 지역에서 쌓아온 노하우와 선진기술을 동시에 접목시킬 수 있는 네트워크를 통째로 가져오는 것이 목표다. 발레는 자체적으로 박사학위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며 2012년에 첫 학기를 시작한다. 브라질의 매사추세츠공대(MIT)를 지향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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