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뮤직] 전성기 소녀시대의 파워풀한 복귀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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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15일 17시 20분


코멘트
● 케이팝(Kpop)의 지존(至尊)으로 우뚝 선 '소녀시대'…
● 내놓은 앨범마다 아시아 석권…, 어디까지 진화할지가 숙제


누군가에 몰입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 인간미에 대한 구체적 이미지가 형성된다. 이 같은 '캐릭터'의 유무는 스타와 비스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
일본 음반시장에서 한국 걸그룹 열풍을 일으킨 소녀시대. 아시아 No.1 걸그룹이란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다.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일본 음반시장에서 한국 걸그룹 열풍을 일으킨 소녀시대. 아시아 No.1 걸그룹이란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다.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대한민국의 걸그룹 가운데 대중들이 뚜렷한 '캐릭터'를 인지한 걸그룹은 '소녀시대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이들은 나아가 '아시아 No.1 걸그룹'이란 영예로운 타이틀까지 거머쥘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지금부터 3년 전인 2007년 8월2일 '다시 만난 세계'란 싱글 앨범으로 등장했던 '소녀시대'를 주목한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소녀시대'란 낯선 이름조차도 놀림거리였다(SM에서조차 그들을 '여자 단체팀'으로 불렀다고 한다).

물론 당시에도 걸그룹은 적잖게 존재했고 새로운 그룹도 꾸준하게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소녀시대는 백댄서가 불필요할 정도로 엄청난 숫자(9명)와 이들이 아직 덜 훈련된 고등학생들이라는 점이 특이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기획사 창고 대방출'이란 비아냥거림까지 나돌았다.

실제 엇비슷한 외모에 그다지 구별되지 않는 캐릭터로 무장된 소녀 9명이 무대 위에 우르르 몰려나오면, 사람들은 어린 소녀들을 무대 위로 내몬 기획사를 탓하기 일쑤였다.

■ 평범한 아이돌에서 아시아를 정복한 케이팝의 대표주자로…

그러나 현재는 누구도 의심할 여지없는 '소녀시대'다. 2등과의 격차도 현격하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도대체 2인자가 누구인지조차 혼란스럽다. TV만 켜면 그녀들이 등장하고, 예능 버라이어티는 이미 그녀들의 매력에 점령당했다. 어떻게 이렇게 변할 수 있었을까?

비단 우리나라만의 특수 현상도 아니다. '소녀시대'는 이른바 전 아시아적인 현상이다. 웬만한 아시아 젊은이들은 대한민국 정치인의 이름은 몰라도, 소녀시대의 '태연', '제시카' '티파니' 등은 정확하게 알고 있다. 이 같은 팬덤 현상은 곧바로 대한민국의 이미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인기 절정에 있는 소녀들이 새 앨범 '훗(Hoot)' 을 들고 나왔다.

대중의 반응 역시 폭발적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소녀들의 군무를 보며 넋을 놓는다. 일본과 한국에서 앨범판매 1위에 오른 것은 물론이고 유튜브 조회 건수도 2주 만에 500만회를 훌쩍 뛰어 넘었다.

훗은 '정규앨범'이 아닌 '미니앨범'이지만 소녀시대에게는 기념비적인 앨범으로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아시아 정상을 확인한 시점에, 더 이상 한국만을 시장으로 한정하지 않고 글로벌한 전략 아래 출시된 대작이다.

이번 '훗'에서도 여전히 시각적인 모험을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실 노래를 어떻게 부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대중은 그녀들을 스스로의 마음속의 '지니'로 떠올리며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그들의 뮤직비디오에서 음악은 단지 그녀들의 춤에 깔리는 배경음악으로 존재할 뿐이다.

그래서인지 음악은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는 사람들을 마치 세뇌하기라도 하려는 듯, 단순하면서도 중독적인 멜로디로 반복된다. 아주 가끔의 잔잔한 브레이크는 반복의 식상함을 없애기 위한 요소일 뿐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녀들의 이번 앨범 '훗'에서는 이전 앨범들에서 그녀들이 몇 초씩 나눠서 부르던 '독창' 부분이 없다는 점이다. '훗'은 모두가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 부르지만, 마치 한사람이 부르는 것 같이 느껴질 만큼, 독특한 음색이다.

모두가 하나가 된 듯이 동일한 의상으로 같은 동작을 반복한다. 이제야 소녀시대는 진정한 팀이 된 것일까?

■ 여전히 노래보다는 스타일로 승부하는 소녀시대
데뷔 초기 뚜렷한 특징이 없던 시기의 소녀시대. 그러나 성공적으로 캐릭터를 자리잡아가며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데뷔 초기 뚜렷한 특징이 없던 시기의 소녀시대. 그러나 성공적으로 캐릭터를 자리잡아가며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사진제공=SM엔터테인먼트

SM은 현명하게도 '소녀시대'의 이미지를 팔겠다고 작정한 듯해 보인다. 이미 소녀시대는 너무도 유명해졌다. 이제 특정 멤버를 위해 독창 부분을 만들어 넣어 멤버 개개인을 대중에게 어필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듯하다. 뮤직비디오에 있어서도 솔로 파트는 많이 퇴색됐다. 이제는 개개인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목소리로 대변되는 개성들을 제시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혹은 이렇게도 해석할 수 있다. 이제는 기획사 주도의 치밀한 컨셉 제시가 없더라도 멤버간의 개성에 대해 대중끼리 완벽한 공유가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효연이 춤을 잘 추고 태연이 노래를 잘 부르는 것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이제는 '소녀시대' 자체가 바로 브랜드인 것이다.

어쩌면 노래의 핵심 포인트는 간주 사이사이에 깔리는 '소녀들의 웃음소리'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노래보다 더 중요한 대목은 바로 이 소녀들이 즐겁게 웃고 떠드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그것만으로 대중들은 충분히 즐겁고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걸그룹의 음악성이나 예술성을 따지는 것만큼 쓸모없는 일도 없을지 모른다. 소녀들의 노래 때문에 이들이 소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느 방송에 인터뷰한 일본의 한류팬은 "소녀시대를 듣고 있으면 행복해진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케이팝의 유행을 설명하는 가장 적확한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국내에서는 그동안 대중음악 시장과 거리가 멀었던 '아저씨 부대' 들이 열정적으로 그녀들을 소비하는 주된 소비층으로 떠올랐다. 이 의미는 아저씨 부대들이 더 이상 현실세계에서 행복감을 찾을 수단이 없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 소녀시대를 듣는 이유? 행복해지니까…

멤버 얼굴을 구분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로 특징 없어 보이던 소녀시대가, 어느 순간부터 대중에게 각 멤버들의 개성을 모두 각인시키는데 성공했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주요한 이유는 대형 기획사 SM의 능력이라는 사실에 변함이 없을 것이다.

물론 그 방법은 간단하다. 효과적으로 많이 노출시켜 대중들에게 익숙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친숙해진 대상을 판단할 때는 그 판단기준이 부드러워지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그의 외모가 아니라, 인간미를 기반으로 마음속 호감도를 그려나갈 것이다. 심지어 그 마음 속에 자리잡은 호감도는 도리어 외모를 판단하는 개개인의 기준점을 흔들어버린다.

아시아 대중은 이미 SM이라는 대형기획사에서 치밀하게 기획된 '콩깍지 씌우기' 전략에 완벽하게 당한 셈이다. 이미 뮤직 비디오에서 소녀시대 멤버들이 하나하나 화면에 등장할 때, 이미 그들의 이름과 이미지를 마음 속에 하나하나 떠올리고 있다.

소녀시대의 이번 뮤직비디오를 보고난 수많은 아저씨 팬들의 솔직한 소감은, 소녀들의 춤이나 얼굴은 잘 안보였다는 점이다. 오로지 그녀들의 매끈한 다리에 시선이 간다. 이것은 소녀시대를 처음 본 일본의 방송사 관계자들(PD나 작가, 혹은 카메라 기자)의 시선과 동일한 수준이다.

어쩌면 이 매끈한 다리가, 소녀들이 대중에게 '콩깍지'를 씌우는 방법. 즉 떡밥이 가득 달린 낚시 바늘과 비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처음 그녀들을 접한 수많은 해외 아저씨 팬들 역시 그녀들의 외모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포커스는 그녀들의 각선미보다는, 톡톡 튀는 개성으로 옮겨갈 것이다.

아니, 상당수의 대중은 이미 그녀들의 캐릭터에 푹 빠져버렸다. '훗'의 특징은 더 이상 소녀들이 개개인의 캐릭터를 설명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저 이전 노래가 잊혀지기 전에 새로운 노래로 '등장'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해야 할 상황이 됐다.

이 같은 대형 기획사의 전략이 언제까지 유효할지 또한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게 됐다. 이미 소녀시대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왕두호 / 베이시스트 fourplay@gmail.com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 오·감·만·족 O₂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news.donga.com/O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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