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 드라마캐릭터열전⑤ 조선시대 ‘엄친아’ 이선준의 두 얼굴?

동아일보 입력 2010-09-23 13:28수정 2010-09-23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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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듯한 외모와 명석한 두뇌, 배경 좋은 집안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조선시대 '엄친아'라고나 할까? 아니면 어디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뛰어난, 게다가 임금 앞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원칙주의자로 성균관 유생 생활을 하는 시대의 행운아라고나 할까?

조선시대 최고의 지성들이 학문을 논하던 '성균관'을 배경으로 설정한 '성균관 스캔들'(김태희 극본, 김원석·황인혁 연출)의 핵심 인물 이선준(박유천 분)은 모두가 부러워할 배경을 두루 갖춘 엄친아다.

당쟁으로 얼룩진 정치 현실에 대한 혐오감을 숨기지 않고 거벽과 사수를 일삼으며 저자거리의 말썽꾼으로 살아가던 남장 여자 김윤희(박민영)에게 배고픈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원한다면 정정당당하게 출세하라고 강권하는 당당함까지 갖춘 매력적인 훈남이 바로 이선준이다.

1등 신랑감 '아름다운 사내'라는 의미의 '가랑(佳郞)'이라는 별호를 가진 그에게도 물론 약점은 있다. 성균관 유생들의 평균 주량에 못 미치는 것은 물론, 술을 마신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약한 주량은 원칙에 입각한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이선준의 아킬레스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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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이 약한 주량 때문에 이선준은 '완벽남'에서 '민폐남'으로 순식간에 전락한다. 술을 마시지도 못하면서 유생들의 자치 활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자신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 참석한 자리에서 이른바 '한 입 털기' 끝에 정신을 잃고 헤롱거리는 이선준의 모습은 엉성함 그 자체이다.

게다가 술기운을 견디지 못하고 잠자리에서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어던지고 다음 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 떼는 모습은 귀엽기까지 하다.

완벽함과 인간적인 매력까지 겸비한 이선준이지만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대대로 권력을 잡아온 노론 명문가 좌의정 '이정무(김갑수)'의 아들로 태어난 이선준이 성균관에 들어가면서부터 "귀한 집 도련님으로 태어나 그 누구에게도 고개 속여본 적 없는 뻣뻣하기 그지없는 놈"으로 선진들에게 질시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특히 탕평과 화합을 강조하는 이선준의 원칙은 같은 노론으로 성균관 유생들의 대표인 '장의'를 맡고 있는 하인수(전태수)의 현실 정치 논리와 부딪치면서 수시로 갈등을 유발한다.

병조판서 하유규(이재용)의 아들이자 성균관 권력의 실세로서 하인수는 가문의 권세를 믿고 오만방자하며 권모술수에 능한 인물로 뼛속까지 서열주의자다. 이선준은 같은 노론이면서도 성균관을 붕당정치의 축소판으로 만드는 하인수와 사사건건 부딪치면서 갈등한다.

노론으로서 출사의 권한까지 쥐고 있는 하인수에게 노론이면서도 남인과 소론을 감쌀 정도로 포용의 생활 정치를 실천하는 이선준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다. 하인수의 계략 때문에 이선준은 종종 곤경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다.

남들이 뭐라 하건 그저 스스로 옳다 생각하는 원칙에 따라 생활할 뿐이다. 이처럼 이선준은 소론 문재신(유아인)은 물론 남인 김윤식(실은 김윤희)과 한 방을 써야 하는 상황조차 자신이 꿈꾸는 탕평과 화합을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일 정도로 포용의 정치학을 실천하는 인물이다.

자신의 정치적 기반이나 선배에 대한 예의보다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합리성을 더 중시하는 이선준의 성격은 동생 김윤식(한연)의 이름을 빌려 남장여자로 성균관에 들어온 김윤희가 선배들에게 바친 '개떡 사건'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선배에게 깍듯한 예의를 갖추는 자리에서 김윤희의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개떡을 먹지 못하는 음식이라고 땅바닥에 팽개치는 선배들에게 이선준은 이렇게 말한다.

"이는 음식이 아닙니다. 언젠가 선진께서 출사해 돌봐야 할 백성의 고혈입니다. 그러니 드십시오."

그러더니 땅에 떨어진 개떡을 주워 먹고 당황하는 선배들에게 "양반의 체면은 버렸습니다. 허나 사람의 도리는 버리지 않았습니다"라고 일갈하는 장면은 불합리한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이선준의 당찬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선준의 반듯하면서도 엉뚱한 매력은 중이방에서 함께 기거하는 김윤희에게 마음을 빼앗기는 과정에서도 드러난다. 한 번도 길이 아니면 가본 적이 없던, 도가 아닌 것엔 눈길 한 번 줘본 적이 없던 이선준이 결코 사내임을 의심해본 적 없는 남장여자 김윤희를 좋아하면서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은 사랑에 빠진 순수한 청년의 마음 그 자체이다.

남인 출신의 김윤희에 대한 이선준의 애틋한 감정은 소년에서 청년으로의 성장통이면서 동시에 붕당정치의 중심에 자리한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자각하는 계기가 된다.

김윤희는 물론 문재신과의 생활을 통해 이선준은 아버지 세대가 만들어 놓은 정치 현실과 자신이 만들고 싶은 세상의 괴리를 확인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깨닫는다. 사색당쟁으로 얼룩진 현실 정치의 축소판으로 노론과 소론 그리고 남인이 부딪치는 성균관에서 원칙에 입각한 탕평과 화합을 강조하며 생활하던 이선준의 가치관에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신권을 중시 여기는 노론가의 자제답게 왕권은 사대부에게 견제 받아야 한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던 이선준의 의식에 균열을 일으킨 것은 물론 김윤희와 문재신이지만, 결정적인 것은 탕평책을 펼치던 임금과의 학문적 교류였다. 배움이 깊어갈수록 이선준은 글 읽는 즐거움을 깨우쳐 준 것은 물론 바람직한 정치인으로서 모범을 보여주던 아버지가 실은 불의한 권력의 실세에 지나지 않았음을 자각한다.

이선준은 자신의 삶의 뿌리였던 아버지를 부정하고 뛰어넘어야만 아버지 세대가 만든 세상의 모순을 해결하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역설적인 상황 앞에서 갈등한다.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정의로운 삶을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이선준이였기에 아버지와의 대립과 갈등이 그를 자기모순의 상황에 빠지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후견인이기에 앞서 자신을 낳아준 아버지를 단죄하기 위해 칼을 들어야 하는 이선준의 행동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통과의례이다. 그의 선택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확인하기 어려우나, 우리 모두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은 분명하다.

이처럼 아버지의 아들이자 올바른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선비로서의 기로에서 이선준이 겪어야 하는 고뇌는 그를 인격적이고 정치적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인간적 고뇌가 깊으면 깊을수록 이선준의 매력은 배가 된다. 이선준은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과 타인에 대한 배려심으로 무장한 매력적인 인물이다. 반듯함 속에 숨겨진 엉뚱한 매력은 이선준이 현실 저 너머에 존재하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어디서건 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 시대의 훈남임을 의미한다.

특히 이선준이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정치 철학으로 사색당쟁을 극복하고 백성을 위하는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청년의 기개를 찾아보기 어려운 현재 상황에서 많은 것을 일깨워준다.

소년에서 청년으로 그리고 가문을 대표하는 장손에서 나라의 동량으로 태어나기 위해 겪어야만 하는 이선준의 성장통은 기득권을 버리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바꿀 수 없으며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준다.

'조선시대 성균관 유생 이선준'은 원칙과 상식에 입각한 반듯함과 언제든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함으로 그만의 사랑과 정치 방정식을 풀어나간다. 이것만으로도 지금 우리가 그를 주목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을까?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평론가 drama@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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