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집중분석]드라마캐릭터열전③ 대한민국 외모지상주의에 하이킥! 김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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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8월 29일 19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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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나이 서른이란 사랑과 결혼, 그리고 일과 미래에 대한 고민에 시달릴 때라고 한다. 뛰어난 미모와 총명한 두뇌, 제법 괜찮은 집안 배경까지 갖췄다면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하지만 그녀는 특별히 잘나지도 못했고 가진 게 많지도 않다. 예쁘기는커녕 뚱뚱한 몸매와 괄괄한 성격이 유별나며 바람둥이 애인을 쫓아다니다 직장마저 잃었다. 서른 살 노처녀의 고민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녀, 방앗간 집 셋째 딸 김삼순은 씩씩하다.

자신을 배신한 애인을 향해 "다 부숴버릴 거야!"라고 강짜를 놓았다. 분한 마음에 남자 화장실인지도 모르고 들어가 엉엉 울다가 마스카라가 범벅이 된 얼굴로 낯선 남자에게 화를 낼 정도로 사리분별력이 없어 보인다.

그래도 그녀는 특유의 솔직담백함과 자기 일에 대한 자신감으로 씩씩하게 살아가는, 제법 내공이 센 여자다. 그런 그녀가 외모지상주의에 빠져 허우적대던 대한민국을 향해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린 뒤 벌써 몇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녀는, 이 땅의 수많은 '김삼순'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S라인'과 'V라인', 그리고 '초콜릿 복근'이 '섹시'라는 신성불가침의 단어와 함께 대중의 의식을 마비시키는 대한민국에서 외모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권력이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국보급 외모를 갖춘 조각미남과 꽃미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도 외모지상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신이 빚은 조각 같은 외모의 남자가 바람 불면 날아갈 것 같은 가냘픈 외모의 아름다운 여자를 만나서 가슴 저린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여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시청자의 이목을 끌어당기는 탁월한 외모였다. 적어도 김삼순의 등장 이전까지는 정말 그랬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외모지상주의는 2005년 여름 잠깐이나마 종언을 고해야만 했다. 'S라인'이나 'V라인'과는 태생적으로 거리가 먼 것 같은, 게다가 이름마저 촌스러운 서른 살 노처녀 파티셰의 삶과 사랑을 경쾌하게 다룬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김도우 극본, 김윤철 연출)이 대한민국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혜성처럼 나타난 김삼순(김선아 분)이 드라마 속의 조각미남과 꽃미녀의 비현실적인 매력에 질려 있던 비슷한 처지의 동년배 여성은 물론 남성 시청자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외모지상주의에 하이킥을 날린 것이다.


김삼순은 실업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로 고민하는,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매력을 발산한 인물이었다. 뚱뚱한 몸매에 내세울 집안도, 학벌도 없으면서 '백마 탄 왕자님'을 꿈꾼다. 하지만 현실 속의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또한 실직 이후에 취업을 걱정하고 매번 다이어트 계획을 세우지만 항상 실패하고 마는, 그래서 관음의 대상에 머물렀던 기존의 여성 캐릭터와 완전히 차별화된 현실적인 모습이 바로 '김삼순'의 매력이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고 마시고 자는 걸로 푸는 평범한 여자 김삼순은 그래도 자기 몸을 제대로 응시할 줄 아는 주체적인 시선의 소유자였다. 응시의 대상에서 주체로 자리 이동함으로써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었던 내공이 김삼순이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근원이었다.

이 지점에서 김삼순은 남성적 시선에 의해 응시의 대상으로 고착된 여성의 몸에 대한 비판적 변화를 이끌어낸 투사이기도 했다.

김삼순은 시청자의 시선을 의식하고 그것에 맞춰 만들어진 캐릭터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 김삼순의 솔직담백함은 비슷한 처지의 동년배 여성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은 물론, 여성의 심리를 궁금해 하는 남성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줄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DVD방에서 현진헌(현빈)이 마치 키스라도 할 것처럼 장난스럽게 다가오는 상황. 자신의 심장박동수가 올라가자 "너무 오래 굶은 거야. 단지 그것뿐이야. 넌 너무 오래 굶은 거야. 진정해!"라고 독백하는 장면에서 김삼순의 매력지수가 급상승할 정도였다.

적어도 성적인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내숭을 떨어야 한다는 것이 진리처럼 받아들여지던 상황에서 성적 욕망을 거침없이 토로하는 김삼순은 신선한 문화적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투박하고 거친 말투와 달리 남자에게 사랑받는 여자가 되고 싶은 그녀의 욕망은 촌스러운 이름 김삼순을 버리고 김희진으로 개명하려는 의지로 표현되기도 한다. 솔직담백함이 매력적인 김삼순이 현진헌을 향한 감정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도 지난 사랑의 상처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그랬다. 사랑 때문에 상처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안다. 사랑이 끝난 줄 알았는데 시나브로 사랑이 다시 찾아왔을 때의 두려움을…. 사랑을 느낄 수 없도록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로 김삼순은 여린 감성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김삼순의 매력은 또 있다. 계란 한 판의 나이 서른을 넘기면서 그녀가 겪는 인생에 대한 고민은 그동안 기존의 드라마에서 관념적으로 혹은 교조적으로 제시된 것들을 뛰어넘어 진솔함으로 다가와 시청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사랑을 잃는다는 것, 어쩌면 자신감을 잃어버리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몸이 마음에게 물었다. 난 아프면 의사가 고쳐주지만 넌 아프면 어떻게 하니? 그러자 마음이 말했다. 나는 나 스스로 치료해야 돼".

김삼순의 이 독백은 사랑과 결혼에 대한 고민과 압박이 심한 서른 즈음의 여성들에게 잠언(箴言)처럼 받아들여지면서 공감을 이끌어냈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김삼순은 "어느새 내 말만 하는 어른이 되어버렸어"라며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는 어른의 독선을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또 "난 가끔은, 아주 가끔은 주목받는 생이고 싶거든요"라면서 평범한 여성의 바람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자동차의 뒷모습에도 표정은 있다"며 외면당하는 것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면서 인생에 대한 성찰의 시선이 만만치 않은 현명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렇게 김삼순은 우리들과 같은 시대를 살아가면서 함께 아파하고 같이 성장한 캐릭터였다.

김삼순은 그토록 간절히 바랐던 김희진이라는 이름의 꿈을 버림으로써 외모지상주의에 함몰된 동시대의 우리에게 진정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날씬하지도 않고 예쁘지도 않은 데다 이름마저 촌스러운 노처녀 김삼순이 진정한 사랑을 찾아나가는 과정은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내면의 자신감을 갖도록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그녀는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자기감정에 솔직하고 애써 예쁜 척 하지 않으면서 당당하게 하고 싶은 말을 할 줄 아는 김삼순은 동시대 우리들에게 당당하고 솔직함이 외모에 우선할 수 있음을 알려준 존재였다.

김삼순은 청순함으로 대변되는 수동적인 신데렐라는 물론, 강인하고 씩씩한 생활력을 갖춘 '캔디렐라'의 틀을 벗어던지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가는 우리 사회의 변화된 여성상을 현실적으로 반영한 캐릭터라는 점에서 기억할 만하다.


아버지의 빚보증 때문에 능력 있는 남자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받아도 자신의 노력으로 그것을 상환하고 언니의 도움으로 자신의 베이커리를 운영할 정도로 그녀는 남성 중심의 사회문화적인 질서에서 벗어난 인물이기 때문이다.

물론 신드롬으로까지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의 외모지상주의에 하이킥을 날렸던 김삼순을 향한 숭배가 한 풀 꺾여 시들어버린 것은 참으로 아쉽다. 그럼에도 털털하고 솔직담백한, 그래서 사랑스러운 여자 김삼순의 사회문화사적인 의미는 두고두고 귀감이 될 것이다.

윤석진 충남대 국문과 교수·드라마평론가 drama@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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