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김마스타] 국산 엘리엇 스미스 혹은 소녀 취향… ‘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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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5일 15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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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펑크록밴드 소속의 불세출 기타리스트에서 통기타 가수로
● 점점 고립되어 가는 현대인들에게 치유의 음악을

때론 날씨로 인해 기분이 좋아지곤 한다.

날씨에 따라 듣는 음악 또한 가지각색이다. 특히 자신과 전혀 다른 길을 걷는 음악을 만날 때마다 귀가 쫑긋거린다. 그중에 오늘 소개하고 싶은 음악은, 펑크록밴드 소속의 불세출 기타리스트에서 졸지에 통기타를 들고 소녀들 귀에 입김 불어넣는 달콤한 싱어송라이터로 변신한 석준(29·본명 이석준)이다.

그는 10대 시절 '화염병'이란 펑크밴드에서 활동했다. 무척이나 독특했다. 기타잭을 무려 200m로 세팅하고 대학 노천극장을 그야말로 방방 뛰어다녔던 사내였다. 펑크의 상징인 노란머리염색을 한 것은 물론이고, 입만 열면 1960년대 브리티시 인베이젼(British invasion) 시대를 동경한다고 자부하던 짐승 로커였다.

그런데 말이다. 사람이 살다가보면 벼락이 정수리에 정확하게 떨어져 완전 다른 사람이 되는 경우가 있다. 석준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이제는 단정한 캐주얼 차림으로 예쁘장한 소녀취향의 노래를 부르는 그의 과거를 상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를 소개하는 이유도 그의 변신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 로커에서 부드러운 싱어송라이터로

지난해 이맘때 즈음 처음으로 데뷔앨범 '독(DOK)'을 내놓고 초판을 단숨에 팔아치운 그 매력은 도대체 무엇일까?

요즘 사람들은 둘 중 한명은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한다. 특히 이성보다 감성에 지배되는 사람들은 장마시즌이 되면 더 유별나 진다. 필자 역시 마찬가지인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면 길거리 포장마차에 앉아서 지붕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의 음악은 감성적인 이들에게 제격이다. 특히 아이돌 사진을 천장에 붙이고 잠을 청하는 처녀들에게는 '석준'의 음악이 제격이다.

그간 TV를 통해 비주얼에 대한 욕구는 충족시켰지만 자신의 귀에 대고 아스라한 속삭임을 해줄 음악이 그리웠을 사람들, 빠른 비트에 묻혀 대체 뭐라고 떠드는지 알아들을 수 없는 음악에 지쳐 있는 사람들을 위한 웰 메이드 음악이 바로 '석준표' 음악이다.

■ 누군가 귀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이는 음악

석준 음악의 모토는 공감대다.

사실 낯선 관계에서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수준의 감정이입이란 오로지 개인이 추구하는 예술세계의 공유를 통해 가능할 뿐이다. 석준이 가진 매력은 누구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읊조림에 있다.

고 김광석의 '서른즈음'이란 노래가 있다. 작편곡자인 강승원이 만든 이 노래는 김광석의 목소리와 그 자신의 고집스러운 음악인생을 통해서 대중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또 한 사례가 있다면 이한철이 만들고 이소라가 부른 7집 'Track 8'이라는 음악을 꼽을 수 있겠다.

죽은 그가 부르는 노래 /
지난 이별이 슬프게 생각이 나 /
간절히 원해 /
Wanna stay with you, oh! tonight… /

쉽게 짝을 이루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대개 용납되지 않는 한 가지 이상의 불편한 진실이 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사라지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에게는 스스로에게 있는 문제를 마주할 용기가 없다. 배울 만큼 배웠고 가질 만큼 가진 이들일수록 판타지에 가까운 망을 두르기 마련이다.

파편화 되고 독거노인이 되어가는 이들에게…

정리정돈 되지 않는 삶을 살고 있는 이들에게는 현실과 판타지간의 간극을 메울 탈출구가 필요하다. 석준의 음악은 빛바랜듯하면서도 철저하게 고립되어 있는 자아의 연못에 얼굴을 비추는 것 같은 느낌을 전한다.

그 연못이란 반드시 혼자서 들여다봐야한다. 낯선 귀신이 튀어나올 지라도 말이다. 소녀 취향의 '엘리엇 스미스'의 음악은 이제 와서 돌이켜 보면 독거노인을 위한 음악일지 모른다.

군중속의 고독을 가슴 아래 깔고 사는 단독거주인들, 부모로부터의 독립을 넘어 아예 인간관계의 단절을 꾀하는 이들, 혼자 밥 먹고 혼자 영화보고 혼자 쇼핑하고 혼자 불 켜둔 현관문을 밀고 들어가는 사람들. 아무리 외롭더라도 우리는 독거노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락가락 하는 날씨에 맘도 같이 오락가락 하는 장마시즌이다. 깨져버릴 듯이 섬세한 목소리와 사운드, 그리고 어둡고 차가운 밤의 진정성을 간직한 세미포크음악, 석준의 '독', '회상', '불면증', '잔향', 'It's not a long day', '그림자'를 여러분들 집 대문에 걸린 우유주머니 속에 배달하고 싶다.

'학수고대했던 날'을 부른 이어부 밴드의 백현진이나 데미안 라이스의 백보컬을 담당했던 리사 하니건(Lisa Hannigan)의 2008년작 'Sea sew'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석준의 음악 'DOK'을 꼭 들어봐야 한다. 아마도 듣는 순간 당신의 공허감은 이미 치유될지 모른다.

이 친구의 변신이 글을 읽는 이들에게 계기가 되어 '석준'의 노래제목처럼 '불면증'과 '불안감' 속에서도 '독'같은 파괴적 거품이 일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독(DOK)

막혀버린 수채 구멍 같은 내 머리 속에
쓰디쓴 투명색 독약을 천천히

거리위로 표정 없는 사람들 속에 섞여
매일 똑같은 하루하루 쳇바퀴 돌듯이

그렇게 시간은 곪아 흘러가겠지
그리곤 구역질나는 세상에 취해
오늘도 난

비틀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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