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탄 맞은 다리 끌며 대응사격 지휘…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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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참 보호하려다 40여개 파편 박혀
■ 처절했던 제2연평해전 순간

‘쿵.’ 월드컵 한국-터키의 3, 4위 결정전이 있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 연평도 서쪽 해상에서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남하한 북한 경비정이 참수리 357호정에 기습적으로 포를 쐈다.

함교와 조타실에 퍼부은 북의 포격과 총격에 함교에 나와 교전을 지휘하던 고 윤영하 소령이 총상을 입고 쓰러졌다. 이희완 대위(34)가 대신해 지휘에 나서다 다리에 포탄을 맞았다. 너덜너덜해진 다리를 질질 끌면서 이 대위가 사격 명령을 내렸다. 통신실에 있던 이철규 상사(34)도 엉덩이와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다. 허리 밑으로 움직여지지 않자 ‘나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이 상사가 옆에 있던 당시 상병 김용태 씨(28)에게 소리쳤다. 배에 탄 지 15일 된 신참이었다. “김 상병, 괜찮나. 정신 차려라!” 이 상사가 윽박지르자 겨우 정신을 차린 김 상병이 “맞은 데는 없습니다” 하고 답했다. 이 상사는 떨고 있는 김 상병을 통신실 구석에 밀어 넣고는 감싸 안아 파편을 막았다. 이때 이 상사는 40개가 넘는 파편을 맞았다.

조타실이 고장 나 배를 움직일 수 없게 되자 전자장 전창성 중사(33)가 나섰다. 함미까지 가면 수동으로 타를 조종할 수 있었다. 함미까지 뛰어가던 전 중사가 왼쪽 어깨에 관통상을 입었다. 상병이었던 권기형 씨(29)는 총을 들고 있던 왼손에 관통상을 입었다. 입고 있던 구명조끼를 한 손으로 풀어헤친 뒤 왼손을 압박하고는 오른손을 장전해 사격했다. 최고 연장자인 갑판장 이해영 원사(46)는 부정장의 지시를 전달하러 중갑판을 뛰어다니다 머리에 파편상을 입었다. 황창규 상사(36)는 전원이 끊어진 40mm포를 곧바로 수동으로 바꿔 쐈다. 황 상사는 교전 직후 화염에 휩싸인 조타실에 들어가 전사한 한상국 중사를 끌어내려다 연기와 유독가스를 들이마시고 쓰러졌다.

오전 10시 56분, 6명의 전사자와 18명의 부상자를 낸 31분간의 교전이 종료됐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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