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박지하] 어른들의 어린 시절 환상 대변자 ‘명탐정 코난’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6월 17일 11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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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원작의 명탐정 코난은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으로 각색됐다. 컴퓨터게임 속으로 들어가 살인마를 잡는 내용의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극장판13-칠흙의 추적자\' 한 장면.
만화 원작의 명탐정 코난은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으로 각색됐다. 컴퓨터게임 속으로 들어가 살인마를 잡는 내용의 일본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 극장판13-칠흙의 추적자\' 한 장면.

15년간 초등학교 1학년에 머무르며 사랑받는 아이가 있다. 일본에서 1994년 잡지 연재가 시작되고 1996년 TV만화로 방영되기 시작한 '명탐정 코난'이다. 원작의 인기에 힘입어 일본에서는 실사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했고 극장판만 해도 14기까지 나왔다.

한국에서도 단행본이 나왔을 뿐만 아니라 투니버스에서 만화로 방영되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TV(IPTV)를 통해 지나간 에피소드들도 쉽게 볼 수 있다. 극장판 중 '명탐정 코난: 칠흑의 추적자'는 지난해 한국에서 개봉돼 65만 관객이라는 흥행성적을 올리기도 했다. 올 7월에는 국내에서 극장판 14기 '명탐정 코난: 천공의 난파선'이 개봉될 예정이라고 한다.

▶ '초딩' 몸, '고딩' 머리로 사랑받는 코난

'명탐정 코난'은 고등학생 명탐정 남도일(원작 이름: 쿠도 신이치)이 정체불명의 검은 조직이 만든 약을 먹고 초등학생의 몸으로 돌아가 주변의 여러 사건을 해결하면서 검은 조직의 정체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65권에 이르는 시리즈를 통틀어서 보면 검은 조직의 정체를 찾는 것이 메인 플롯이지만, 역시 중요한 것은 탐정으로서 매번 주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다.

그림체는 귀엽고, 주인공들도 초등학생들이지만 범죄의 연속이라는 면에서 어린이를 위한 만화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가끔은 어린이 탐정단에 어울리는 소소한 사건들도 벌어지지만 대부분의 사건은 살인에 집중되어 있다. 실제 과거 KBS에서 방영되던 당시에는 7세 관람가로 설정되어 공중파 방송기준에 맞추기 위해 많은 부분이 편집되어야 했으며 결국은 잔인성과 폭력성을 이유로 조기 종영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13세 관람가이니 주인공이 초등학생이라고 초등학생들이 보는 만화라는 생각은 버리시길.

1994년에 시작한 코난은 2010년인 지금도 초등학교 1학년이다. 벌써 15년째 초등학교 1학년인 코난이 계속해서 사랑을 받는 이유 중의 하나는 코난이 사실은 어른에 가까운 고등학교 2학년이면서도 몸은 초등학생이라는 설정일 것이다. 어린이면서도 어린이가 아닌 코난은 실제 초등학교 1학년의 생각을 대변해주는 것이라기보다는 어른들이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의 환상을 대변해준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코난은 어린애답지 않다. 때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예의 없고 곤란한 질문들을 아무에게나 던지는 특권을 누리기는 하지만, 번번이 어른들 일에 끼지 말라며 혼난다. 사실은 형사아저씨들 못지않게 유능하지만 항상 어린이라고 꿀밤을 맞고 쫓겨나야 하는 코난의 모습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기억을 대변하지 않는가. 코난은 기본적으로 사건을 해결하는 천재적 주인공이지만 동시에 코난이 처한 상황은 코난을 약자로 보이게 한다. 그래서 코난은 명탐정 셜록 홈즈나 포와로보다 우리에게 더 가깝게 느껴진다.

만화 '명탐정 코난' 1권 표지.
만화 '명탐정 코난' 1권 표지.


▶ 얄미운 직장 상사같은 '유명한', 짝사랑하던 옆집 누나같은 '미란이'

다행히 코난 주변의 어른들은 눈치는 없어도 그리 꽉 막힌 사람들은 아니라서 처음에는 마냥 혼나기만 했던 코난도 회를 거듭하면서 상당히 똘똘한 어린아이로 인정받아 경찰의 조사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한다. 처음에는 나를 몰라보더니 결국은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린시절의 환상, 아니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며 크게 말하기엔 조금 쑥스러운 환상을 풀어주고 있는 듯 하다.

어린이라서 전면에 나설 수 없는 코난은 허술한 탐정 유명한(모리)을 마취총으로 잠재우고 음성변조를 통해 항상 유명한인 척 사건을 해결한다. 코난의 덕으로 명탐정 소리를 들으면서 그것도 모르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코난을 어린애 취급하는 유명한은 주변에 있는 얄미운 어른을 그대로 형상화 한 듯하다. 어쩌면 주변의 얄미운 상사일지도 모른다. 원래는 고등학교 2학년인 남도일의 여자친구이자 어린아이가 되어버린 코난의 엄마 역할까지 하는 미란이(란)는 내 여자친구가 되기엔 너무나 멀었던 예쁘고 상냥한 누나를 간접적으로 여자친구로 만들어준다.

또한 코난은 항상 모험과 여행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게다가 브라운 박사님이 만들어 준 도구들은 어린이라는 코난의 신체적 한계마저 뛰어넘게 해준다. 특히 코난의 사건 해결이 중심인 에피소드들은 주로 동네 바깥에서 벌어진다. 유명한이 어디론가 초대를 받아서 미란이와 코난을 데리고 대저택으로 가거나, 브라운 박사님이 코난과 소년탐정단을 데리고 캠핑을 가거나, 미란이의 친구와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작가의 취미생활이 반영되었는지 어린이답지 않게 낚시 여행도 자주 간다.

그렇다고 명탐정 코난이 단지 어린시절에 꿈꾸던 탐정이 되어 모험의 세계를 떠나는 환상에 대한 만화만은 아니다. 코난이 사실 고등학생이라는 것과, 같은 반 친구 홍장미(하이바라)가 코난과 마찬가지로 스무살 가량의 어른이지만 검은 조직에 의해 아이의 몸이 됐다는 설정은 극이 어른들의 감정과 생각 구조를 따라가는 것을 어색하지 않게 한다. 코난이 사건을 해결할 때를 제외하면 아이의 모습을 보이는 것에 비해 장미는 다른 어린이들이 다가가기 어려워할 만큼 완전한 어른의 행동을 보여준다.

고등학생인 미란이가 어른이라기보다는 청순가련형의 여고생 캐릭터를 구현하는 반면, '쓸데없이 나서다간 주변 사람들까지 위험해진다'는 장미의 기본 태도와 어린아이들의 장난과 흥분을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모습은 독자들 마음속의 어른이다. 명탐정 코난은 장미를 통해 성인 독자들이 감정을 이입할 구석을 만들어 주는 동시에 대비되는 천진난만한 어린이 탐정단의 모습을 통해 끊임없는 사건에서 오는 긴장을 완화시켜 주고 있다.

▶ 분명한 인과관계, 설명 가능한 코난의 세계

더 중요한 것은 코난의 세계는 항상 설명 가능한 세계이며 모든 일에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명탐정 코난의 범인들은 항상 설명 가능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범행동기를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은 범인을 찾기 위한 주요한 단서가 된다. 게다가 코난의 범인들은 마지막에는 항상 자신이 왜 그랬는지를 털어놓는다.

기본적으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고 연계되어 있다는 가정 하에 범인을 잡는 과정의 지적유희가 미스터리 추리물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의 스릴러물에는 동기가 불분명한 살인마나 정신이상자가 나오는 경우가 많다. '왜 그랬냐고!' 라는 질문이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왜'라는 질문에 뚜렷한 대답을 얻기 힘든 경우가 늘어나는 최근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도 같다. 하지만 명탐정 코난에는 요즘 영화에 많이 나오는 그저 살인을 목적으로 하는 연쇄살인 같은 것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다투다가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질렀거나, 과거의 원한에 대한 복수인 경우가 많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코난의 일상처럼 사건의 연속이 아니듯이, 현실적으로 모든 사건이 코난의 경우처럼 논리적으로 풀려나가고 배경에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차근차근 설명되는 세계란 어린 시절의 환상 일 뿐, '살인의 추억'과 같은 미궁 속이나 CSI처럼 첨단 장비들의 도움이 필요한 곳이 우리의 현실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분명히 설명될 수 있는 세계, 끊임없이 사건이 벌어지면서도 어린이 탐정단의 재롱과 귀여운 그림체가 너무 큰 긴장감을 덜어주는 세계를 보여주는 것이 명탐정 코난의 또 하나의 인기비결이 아닐까.

명탐정 코난의 오리지널은 만화책이다. 하지만 한국판 성우들의 호연으로 에니메이션으로 보기에도 나쁘지 않다. 한국의 방송분은 이름과 지명을 모두 한국으로 바꾸고 화면에 등장하는 일본어마저 대부분 한국어로 바꾸어주었는데, 일본어 원작에서 오는 말장난도 상당히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올 여름은 명탐정 코난 시리즈와 함께 무더위를 쫓아보는 건 어떨까?

박지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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