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구가인]루저스피릿⑦ 인디밴드 ‘타바코쥬스’ 백승화&권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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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5월 10일 11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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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저가 위너보다 좋은 이유

●"우린 아마 안 될 거야…, 열심이 안하잖아!"
● 화제의 인디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주인공
●"열심이 안했기 때문에 살아남지 않았을까?"

지난해 이맘 때 유행했던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시리즈를 기억하는가. 숱한 패러디를 낳았던 '안 될 거야' 시리즈의 원본은 다음과 같다.

"나루토(만화)를 보니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다"고 말하는 다소 안쓰러운(?) 행색의 남자는 "우린 열심히 하고 있지 않고" 그러므로 "우리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는다.
"나루토(만화)를 보니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다"고 말하는 다소 안쓰러운(?) 행색의 남자는 "우린 열심히 하고 있지 않고" 그러므로 "우리는 안 될 것"이라고 말하며 씁쓸하게 웃는다.


노숙자다, 외국인 노동자다라는 추측만 무성한 가운데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던 남자에겐 '나루토 아저씨'라는 별명이 붙었다. 동영상과 캡쳐 이미지로 인터넷에서 많은 인기를 얻었던 이 나루토 아저씨 버전은 나중에 여러 패러디를 통해 이른바 '우린 안 될 거야 아마' 시리즈가 되었다.

많은 네티즌들이 놀이 하듯 4단 만화로 "우린 안 될 거야 아마"를 패러디했다. 어쩌면 그건, "하면 된다" "우린 할 수 있다" 식의 외침이 가득한 세상에 대한 피로감의 표출이거나, 혹은 '역시도 아마 안 될 것 같은' 사람들이 공감대를 표현하는 방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우린 아마 안 될 거야, 열심이 안하잖아!"


1년 전 유행했던 시리즈를 굳이 다시 꺼내 설명한 것은, 그 나루토 아저씨가 바로 타바코쥬스의 보컬 권기욱이며 동영상은 타바코쥬스의 또 다른 멤버 백승화가 만든 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일부분이기 때문이다.

2004년 말 결성된 타바코쥬스는 권기욱(보컬), 영욱(기타) 형제와 백승화(드럼), 성호림(기타), 송학훈(베이스)로 구성된 5인조 로큰롤 밴드다.

스스로를 "찌질이들의 대마왕"이라고 부르는 타바코쥬스는 올봄 팀 창단 이래 가장 바쁜 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나는 백승화가 감독하고 타바코밴드가 등장하는(아들은 동료 밴드인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함께 주연을 맡았다)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이 최근 개봉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2집 앨범 '설레발'이 출시를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인터뷰 섭외 당시, 멤버 전원을 만날 지 일부만을 만날지 고민했던 기자는 결국 영화의 감독이자 타바코쥬스의 리더인 백승화(28)와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줬던 밴드의 '얼굴마담' 권기욱(33)만을 만나기로 했다.

음악을 빼면 욕과 술로 점철되는, 영화 속 그들의 거친 모습으로 봐서 왠지 다섯 명 인터뷰는 감당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맨 정신에서 만난 이들은 무척 수줍음을 타는 온순한(!) 청년들이었다.

■ 400만 들어오는 영화로 만들겠다고?



- 우선, 영화 얘기부터 하자. 영화가 개봉한지 좀 지났다(지난 4월22일 개봉했다). 반응은 어떤가.

백승화: "그냥 그렇다. 개봉관이 많이 없어서…."

- 서울 홍대 모 상영관에서 봤는데, 그래도 꽤 많던데…

백승화: "거긴 홍대라 그렇고… 인터뷰 할 때마다 관객 400만이 목표라고 말은 하고 다닌다."

- 영화에선 굉장히 격한 사람들 같았는데… 쑥스러움을 타는 것 같다.

권기욱: "원래 되게 소심하다. 술 안마시면 누구보다. 근데 영화 보고 난 사람들은 우리가 이러니까 막 가식이라고 하더라. 뭐, 가식일수도 있고… 그런데 진짜 멤버끼리 모여도 그다지 시끄럽진 않다. 사실 갤럭시(갤럭시 익스프레스)가 우리보다 욕은 더 많이 하는데…."

- 영화에서 보면 확실히 갤럭시는 반듯하고 열정적인 밴드 같더라.


백승화: "열정이 많은 건 맞는데, 욕도 더 많다."

- 그런데 영화에서는 타바코(타바코쥬스)는 게으르고 찌질한데, 갤럭시는 멋있게 나오더라. 왜 대비를 시켰나.

백승화 : "갤럭시도 타바코처럼 만들 수 있는데 밴드의 색깔을 최대한 살리려고 했다. 예전에 관객한테도 비슷한 질문을 받았는데, 갤럭시는 멋진 공연장면이 많은데 타바코는 왜 골방 씬만 자주 나오냐는 거였다. 그런데 내 생각에, 갤럭시와 관련된 장면을 단 한 컷만 넣으라면 그런 큰 무대를 넣어야 할 것 같았다. 반면 타바코는 공연을 많이 하지만 단 한 컷을 넣는다면 골방을 넣을 거 같았다."

- (권기욱에게) 타바코쥬스 멤버로서 영화에 만족하는가? 가장 인상적인 인물이었는데…

권기욱: "그 때 술을 엄청 먹고 다녔다. 당시 특히 뒤틀려 있을 때였는데, 내가 어떤 식으로 보여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살았던 거 같다. 근데 하필 그 때 그렇게 찍혀서… 지금은 착한 아이, 아니 착한 아저씨다."

■ 부평의 모텔촌에서 시작한 인디레이블 '루비살롱'

타바코쥬스의 보컬이자 "우린 안될거야" 영상의 주인공인 권영욱.
타바코쥬스의 보컬이자 "우린 안될거야" 영상의 주인공인 권영욱.

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은 인디레이블 루비살롱 출신 두 밴드 타바코쥬스와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영화다(현재 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루비살롱을 나와 따로 레이블을 차렸다).

1990년대 크라잉넛, 노브레인과 함께 펑크 레이블 '문화사기단'의 중심인물이었던 이규영이 애인의 갑작스런 임신으로 인천으로 낙향한 후, 부평의 모텔촌에 라이브클럽이자 인디레이블인 루비살롱을 설립한다. 영화는 그 이후(주로 2007년부터 2008년 사이) 루비살롱의 소속밴드인 타바코쥬스와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개봉에 앞서 2009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서울독립영화제 등에서 수상한 이 영화는 백승화가 구성과 각본, 연출 뿐 아니라 촬영과 편집까지 홀로 해낸 작품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록 밴드 한다고 하면 라면만 먹고 지하실에서 '음악만이 살길이다'를 외치며 연습하는 모습을 떠올린다"면서 "그런데 사실 우린 나름대로 재미있게 살고 있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편견을 거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애초에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는?

백승화: "인천영상위원회에서 다큐 지원 사업을 한다고 해서, 우연히 지원했는데 하게 됐다. 처음엔 루비살롱이라는 문화공간에 초점을 맞췄다가, 찍다보니 루비살롱이 그다지 유익한 공간이 아닌 거 같아서(웃음) 밴드 비중을 늘리다보니까 밴드영화가 됐다."

- 돈은 얼마나 들었나?


백승화: "엔딩 크레딧에 영화 투자자 두 분이 나오는데, 그게 우리 어머니 아버지다. 지원받은 것하고, 도와주신 것 더하면…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1000만원 내외다."

- 영화에서 인상적인 게 "우린 안 될 거 야"를 비롯해서 "타바코쥬스는 열심히 안하는 게 특징이고, 그게 장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들이었다. 뭐랄까, 열심히 하지 않는 게 컨셉트 같다.

권기욱: "맞다. 만약 우리를 고무줄로 꽉 묶듯 타이트하게 다루면 노래의 맛이 안날 거 같다. 재밌고, 즐기니까 하는 건데 누군가 더 열심히 잘하라고 하면… 우선 노래 할 맛이 안 날 것 같다."

- 타바코쥬스의 모토는 뭔가, 왜 음악을 하나?

백승화: "음악으로 성공하는 걸 원하지만, 그 전에 우리가 재밌어야 한다. 재미가 없으면 안하지 않을까."

- 그런데 좀 유명해지려면, 싫은 일에도 부지런해야하지 않을까. 예컨대, 방송 같은 거라든지…

백승화: "우리도 꼭 해야 할 일은 챙겨서 한다. 다만, 방송은 나가면 좋겠지만, 또 음악 외의 어떤 귀찮은 일을 해야 하면… 안하는 게 나을 것 같다."

■ "열심히 안했기 때문에 살아남지 않았을까?"

- 게으른데도 지금까지 팀이 유지된 데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나.

백승화 : "열심히 안했기 때문인 거 같다. 열심히 안하는 게 단점이자 장점이 되는 게 바로 그 이유다. 보통 밴드들은 음악적 견해 같은 걸로 많이 싸우고 그러는데, 나 역시도 예전엔 우리 팀에 잔소리도 많이 하고 그랬었다. 그런데 그럴수록 음악은 잘 안 나오더라. 열심히 하려고 할수록 지치는 것도 빠르다. 그보다는 즐겁게 하면서 꾸준히 오래가는 게 나은 거 같다. 물론 (권)기욱 형이랑 (권)영욱이 형은 술 먹고 싸우면서 관둔다는 얘기를 지금도 밥 먹듯이 하긴 한다. 그런데, 둘은 혈육이라 헤어지기도 어렵고… 별로 말리지도 않는다."

- 잠깐 해체되기도 했다고 들었다.

권기욱: "영화에서 나온 베이스 조퐈니가 그만 뒀을 때다. 다시 새로운 사람 뽑아서 정 쏟고 그런 게 싫어서 그냥 그만 두자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권)영욱이랑 (백)승화가 술 먹고 다시 합치기로 했다. 울면서(웃음)."

타바코쥬스의 멤버들이 처음 모이게 된 게기는 "음악 방송 반 여자 꼬시는 것 반이 목적인" 모 인터넷 음악방송을 통해서였다. 군에서 제대한 후 밴드를 만들고 싶었던 백승화가 사람을 모았고 그 때 경상남도 영주에서 음악을 하겠다는 생각에 서울로 올라왔지만 "발산할 곳을 못 찾은 채" 공사판만을 전전했던 권기욱을 만나게 된다. 이후 몇 차례 멤버 교체가 이후 지금의 멤버를 꾸리게 됐다.

밴드 이름인 타바코쥬스는 각기 개성강한 멤버들의 유일한 공통점이 골초라는 점에서 착안해 만들어졌다. 귀여운(?) 어감과 달리, 담배를 많이 피면 나오는 가래침을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멜로디는 밝지만, 잘 들어보면 가사가 씁쓸한 타바코쥬스의 음악과도 일맥상통한다.

- 루비살롱 레이블에 몸담게 된 게기 같은 게 있나?

백승화: "집이 인천이다 보니 인천에 생긴 레이블에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홈페이지랑 들어가 봤는데… 너무 구리더라. 내가 메일을 보내서 도와주고 싶다고 했다. 그 후 공연 포스터도 만들고, 뮤직비디오 같은 것도 만들면서 알게 됐고, 자연스럽게 타바코쥬스도 소속팀이 됐다."(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백승화는 현재 타바코쥬스 활동 외에도 프리랜서로 다양한 영상작업을 하고 있다.)

■ "루저(lose)이길 너무 잘했다"


- 타바코쥬스 음악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혹은 어떻게 들어주길 바라는가.

권기욱: "우리는 정말 쉬운 음악을 하는, 대중적인 밴드라고 생각한다. 가끔 미쳐서 로큰롤 밴드라고 말도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가요밴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냥 음악을 듣고 같이 호흡해줬으면 좋겠다. 언젠가 다른 밴드의 선배가, 관객을 이겨야 한다는 얘길 하긴 했는데… 왠지 그런 건 우리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

- 밴드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권기욱: "어떤 여고생으로부터 '당신들이 음악을 해줘서 좋다, 감사하다'는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그 때 울었다."

백승화: "아이돌이 팬 여러분 사랑한다고 하면, 좀 웃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우리도 그렇다. 팬들이 주는 특별함 같은 게 있는 것 같다."
타바코쥬스의 막내이자, 리더, 실질적인 매니저 역을 맡고 있는 드러머  백승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감독이기도 하다.
타바코쥬스의 막내이자, 리더, 실질적인 매니저 역을 맡고 있는 드러머 백승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감독이기도 하다.


인터뷰에서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막사는 것'이라고 말하거나 삶의 어떤 형태를 '성공'과 '낙오'로 규정짓는 것에 대해 반감을 드러냈다. 다음은 영화 '반드시 크게 들을 것'의 제작노트에 백승화가 쓴 글이다.

"돈벌이와 명예가 위너와 루저의 기준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를 루저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사람들은 타바코쥬스를 찌질이들의 대마왕, 루저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그렇게 불려도 된다. 내 생각엔 그런 루저라면 그렇지 못한 위너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루저이길 잘했다."

지난해 초 밴드 창단 4년 만에 정규 1집 앨범을 낸 타바코쥬스는 5월 중순 경 새로운 2집 앨범을 내놓을 예정이다. 5월 30일에는 2집 발매 콘서트도 한다. "우린 안 될 거"라고 자조하고 "열심히 하지 않겠다"고 말하지만, 어쨌건 중요한 건 이들은 계속 로큰롤을 즐기면서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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