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면 산다, 응급 상식]<1>밀폐된 공간에 갇혔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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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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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보다 몸 덮을 것 먼저 찾아라

누군가 화재로 몸에 화상을 입었거나 당뇨병을 앓고 있는 부모가 갑자기 쓰러졌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내 아기의 구토가 멈추지 않을 때의 응급 대처 요령은 무엇일까? 예기치 못한 사고로 내가 갇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는 매일 크고 작은 사건을 접한다. 때로는 일분일초를 다투는 응급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상황별로 적절한 대처법을 알고 있다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확률도 높아진다. 동아일보는 대한응급의학회와 공동으로 ‘내 몸 살리는 응급상식’ 시리즈를 진행한다.
《502명의 생명을 앗아간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1주일이 지나자 더는 생존자가 없을 거란 관측이 많았다. 그 예상은 빗나갔다. 사고가 난 지 9일과 11일, 각각 생존자가 발견됐다. 2주가 넘었다. 구조대원은 물론이고 일반 국민도 이제는 정말 생존자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두의 예상을 깨고 사고 발생 15일 만에 극적으로 생존자가 발견됐다. 아이티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한 지진, 중국의 탄광 매몰, 브라질 산사태…. 최근 국내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초대형 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만약 산사태나 건물 붕괴 등으로 인해 밀폐된 공간에 갇힌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곽영호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교실 교수의 도움말로 밀폐된 공간에 갇혔을 때의 대처법을 알아본다.》
■ 3의 법칙 (3·3·3)
낮은 온도선 - 3시간 생존
물이 없으면 - 3일 못버텨
식량 없다면 - 3주가 한계

○ ‘3의 법칙’을 기억하라


건물 붕괴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생존자를 찾고 있다. 무너진 건물이나 밀폐된 공간에 격리됐을 경우 우선 심신을 안정시킨 뒤 체온을 유지할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건물 붕괴 현장에서 구조대원들이 생존자를 찾고 있다. 무너진 건물이나 밀폐된 공간에 격리됐을 경우 우선 심신을 안정시킨 뒤 체온을 유지할 방안을 찾는 게 중요하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호랑이에게 잡혀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밀폐됐거나 고립된 공간에 혼자 남겨질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할 속담이다. 보이스카우트가 생존수칙으로 만든 ‘STOP’에도 같은 내용이 있다. ‘STOP’은 Stop(공포와 당황으로 허둥대는 것을 멈추고 마음을 가라앉히고), Think(현재의 사태를 곰곰이 검토하여), Observe(주위를 잘 살펴 본인에게 도움이 될 것을 파악하고 모은 후), Plan(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살아남을 계획을 면밀하게 수립하는 것)의 앞 글자를 딴 것이다.

바짝 정신을 차렸다면 구조대가 올 때까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행동수칙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고립돼 있기 때문에 식량부터 구하려 한다면 틀렸다. 의학적으로 사람이 생존하는 데 꼭 필요한 ‘3의 법칙’이 있는데, 여기서 식량 우선순위는 맨 마지막이다.

3의 법칙에 따르면 매우 낮은 온도에서 인간은 3시간 이상 생존할 수 없다. 물이 없으면 3일을 버틸 수 없다. 식량이 없으면 3주 이상 살 수 없다. 결국 체온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을 찾는 게 가장 시급하다.

○ 머리부터 따뜻하게 하라

저체온증이 생명을 위협할 수준이 되지 않도록 하려면 우선 몸을 마른 상태로 유지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젖은 옷을 벗고 축축한 몸은 마른 수건으로 닦아내도록 한다. 갈아입을 옷이 없다면 머리만이라도 닦아내야 한다. 머리를 통해 열이 가장 많이 손실되기 때문이다. 겨울에 모자를 쓰면 금방 따뜻해지는 기분이 드는 것도 같은 이치다. 남아 있는 천이나 옷으로 머리를 감싸주도록 한다.

저체온증으로 인한 손상은 손가락과 발가락 등 심장으로부터 먼 곳에서 시작된다. 따라서 머리 다음으로는 몸의 끝 부분을 보온해줘야 한다. 이어 덮을 수 있는 것은 모두 꺼내 덮도록 한다. 공기가 충분한 상황이라면 불을 피우는 것도 방법이다. 다만 많이 밀폐된 공간이라면 공기가 빨리 소모되기 때문에 불을 피워서는 안 된다.

산소 확보도 필수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호흡의 수를 줄이도록 한다. 성인 남녀의 1회 호흡 공기량은 각각 500mL, 400mL 정도다. 1분간 20회 호흡을 하면 1분 동안 성인 남자는 10L, 여자는 8L의 공기가 소모되는 것. 개인의 폐 건강 상태, 흡연 여부에 따라 산소소모량이 다르기 때문에 산소가 사라지는 마지노선을 계산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불안과 흥분으로 헉헉거리며 숨을 쉴 때는 산소가 빨리 줄어든다. 숨을 천천히 쉬어야 하는 이유다.

○ 흙탕물이나 소변도 활용해야

저온 상태에 오래 노출돼 있으면 몸에 있는 수분이 더 빨리 손실된다. 몸에서 진한 노란 빛깔의 소변이 나온다면 이미 탈수 증세가 시작됐다는 사인이다. 이때는 어떻게든 물을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정말 아무 물도 없다면 소변을 다시 마시는 게 좋다. 더럽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주정거장에서도 소변을 재활용해 식수로 쓴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건강한 사람의 소변은 병원체가 없다. 소변이라도 모아서 마시면 조금씩 수분보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다.

구조대원을 기다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 절망하게 된다. 그러나 공기와 물, 식량만으로 생존시간을 계산할 수는 없다. 가장 중요한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좌절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꼭 사랑하는 가족과 다시 만나겠다는 마음, 즉 희망을 놓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격리시간이 길어진다면 개구리가 동면하듯이 컴컴한 곳에 누워 수면자세를 취하도록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최소한의 에너지만 쓰는 것이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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