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정신병자냐” 상담 꺼리다 최근 예방센터 찾는 노인 부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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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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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충동 시달리는 ‘위기의 황혼’들
배우자 사별-자식과 소원
‘가족에 짐’ 생각에 ‘충동’
“누군가 내게 관심 갖는구나”
말동무-심리치료 통해 안정

“눈만 감으면 자꾸 죽고 싶어. 높은 곳으로 올라가 뛰어내리고 싶고….”

장태현(가명·70) 씨는 키 178cm에 말끔하게 차려입은 노신사였다. 서울 서대문 노인자살예방센터 상담실 안에서 만난 그는 지난해부터 자살 충동을 참지 못해 일주일에 한 번씩 심리치료를 받고 있다.

“15년 전 사업 실패 후 아내가 떠났지. 나도 좌절이 큰 만큼 방탕한 생활을 했어. 이후 자식들과도 연락이 두절되더군.” 장 할아버지의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이후 그는 쪽방촌 등을 전전하다 2년 전부터 반지하 빌라에서 혼자 살고 있다.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자 미칠 것만 같더군. 휴…. 처음에는 그냥 막 화가 나고 외로웠지만 견딜 만했어. 누군가 그리우면 하루 종일 서울역, 공원 등을 돌아다녔거든. 근데 어느 순간부터 죽고 싶다는 충동이 강해졌어.”

김영순(가명·72) 씨도 일주일에 한 번씩 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는다. 김 씨는 남편도 있고 경제적으로 풍족했지만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3년 전 한강에서 투신자살을 시도했지만 몸이 떠오르자 물에서 기어 나왔다. 이후에도 계속 음독자살을 시도했다. 김 씨가 자살 시도를 하게 된 것은 딸이 외국에 나가 살고 아들과 관계가 소원해지면서부터다.

“처음에는 기분이 별로 안 좋은 정도였어. 하지만 자꾸 성격이 내성적으로 변했어요. 멍하니 있으면 눈물이 나고 상담을 받으면서 펑펑 울었어. 내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지.”

이처럼 최근 지역 내 노인자살예방센터를 찾는 노인이 많아졌다. 서울 서대문, 성북구, 노원구 노인자살예방센터와 성남, 경기도 노인자살예방센터 등에는 매주 적게는 30명 많게는 400명 이상의 노인들이 심리상담사를 찾아 자살충동에 대해 고민하고 치료를 받고 있다. 신변과 생활에 큰 문제가 없는데도 자살충동을 느끼는 노인들이 적지 않다.

박재희(가명·71) 씨도 자신이 나이가 들어 무기력한 줄만 알았다. 돈도 넉넉했고 남편, 자식들과의 관계도 좋았다. 하지만 2년 전부터 몸이 아프고 자꾸 자고 싶어졌다. 병원을 찾았지만 병명은 알 수 없었다. 이후 자살 충동이 강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자식들에게 짐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던 것 같아. 그 순간부터 죽고 싶다는 충동을 자주 느꼈어.”

서울시정신보건센터 이명수 센터장은 “노인은 젊은 사람들과 달리 더 산다고 해서 미래가 나아지리란 희망이 없어 자신이 생각하는 현재의 문제를 더 크게 느끼게 된다”고 지적했다. 노인 상담가들은 “노인 자살을 막기 위해서는 자살 충동자를 찾아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혔다. 노인이 먼저 상담기관을 찾는 사례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기자가 노인자살예방센터에서 만난 노인들은 대부분 처음에는 ‘내가 정신병자도 아닌데 왜 (센터에) 가느냐’는 식으로 화를 냈다고 말했다.

노인자살예방센터들은 1년에 상·하반기를 나눠 경로당, 교회 등을 찾아다니며 노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다. 이들의 자살 위험도를 미리 파악해 위험도가 높은 노인의 경우 관리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또 수시로 전화를 걸어 상태를 체크하고 말동무가 되거나 방문 상담, 센터 내 심리 치료 등을 병행하고 있다. 서대문노인자살예방센터 강순성 팀장은 “노인들에게 누군가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을 느끼게 해야 자살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 박지영 상지대 교수 “이럴땐 조심”
“살아서 뭐해” 지병치료-식사 거부
평소 아끼던 물건 줄때도 의심을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어르신을 살릴 수 있습니다.”

5년에 걸쳐 노인자살생존자들을 연구해온 상지대 박지영 사회복지학과 교수(42)의 말이다. 박 교수는 자살 시도 후 살아난 노인들을 집중 상담하며 노인 자살자가 보여 왔던 특징, 정신 상태 등을 분석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노인들은 다른 연령대의 자살 시도자와 달리 자살에 대해 의사표현을 하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따라서 평소처럼 목욕을 다녀오거나 집안을 청소하는 등 아주 일상적인 활동을 한 후에도 자살을 시도한다.

우선 자녀나 배우자가 갑작스럽게 죽거나 노인이 가족에게 부담이 되는 질병을 얻었을 때 가족들은 노인을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한다.

노인이 “나 같은 사람이 살아서 뭐해”라고 하소연을 하거나 “죽으면 편할까?” 등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하는지도 관찰한다. 또 계속 해오던 지병 치료나 식사를 거부하는 경우도 주의한다. 자기 물건에 손대는 것에 민감해지는 경우에도 관심을 가지야 한다. 또 갑자기 고마움을 표시하거나 평소 아끼던 물건을 줄 때도 눈여겨봐야 한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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