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예산 지연 납득못해” 정치권 압박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25일 03시 00분


■ “내년 준예산 대비” 초강수

“예산의 1.2%인 4대강 문제삼아 전체 처리않나” 비판… 野 “협박하나” 반발
與 “27일까지 예산조정 마무리”… 여야 협상은 여전히 평행선

이명박 대통령이 24일 새해 예산안 처리 지연과 관련해 정치권을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특히 예산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서민 대책은 물론이고 공무원 임금조차 줄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며 야당의 태도변화를 촉구했다.

○ 이 대통령, 민주당을 정조준

이 대통령은 그동안 정치권과의 대립은 가급적 피해 왔다. 지난해 촛불시위를 거치면서 야당과 국민의 이해와 협조가 없이는 국정 운영이 어렵다는 점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은 이례적으로 격하게 야당을 성토했다. 서민대책과 관련해선 타협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적 명분에서 앞선다는 자신감도 깔려 있는 듯하다.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은 “오늘 회의에선 예산안 처리가 지연될 경우 경기 회복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서민들, 특히 겨울철 서민들의 생활고가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일 것이라는 걱정이 굉장히 많았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언급을 통해 예산안 연내 처리 불발의 1차 책임이 청와대보다는 정치권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전체 예산의 1.2%에 불과한 4대강 사업 예산을 문제 삼아 예산안 처리를 하지 않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민주당을 정면으로 비판했다.

청와대는 준예산 편성 사태가 현실화될 경우 예상되는 피해 상황을 열거하며 정치권의 각성을 주문하기도 했다. 준예산 체제가 되면 기존에 예산이 배정돼 계속 진행되는 사업 등에만 재정을 집행할 수 있다. 따라서 내년 1학기부터 도입할 예정인 ‘취업 후 학자금 상환 제도’가 운용될 수 없다. 또 희망근로, 청년 일자리 사업, 가사·간병도우미를 비롯한 사회적 일자리 사업 등 공공 일자리 제공이 중단된다. 아울러 사회복지시설 자금 지원이 끊기고 각종 건설공사 등도 지연된다.

○ 여야, 엇갈린 반응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한 여야의 반응은 크게 엇갈렸다. 한나라당 핵심 당직자는 “상식적으로 판단한다면 물리력을 동원하지 않으면 (예산안 처리가 불가능해) 준예산을 집행하는 것이 자명해지고 있다”면서 “예산 집행에 허점이 생기면 여당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하라는 취지가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민주당이 뒤늦게 예산안 심의에 응한다고 하더라도 올해 말까지 예결특위 계수조정소위를 통해 예산 액수를 조정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야당과의 협상과는 별도로 자체적으로 계수조정소위를 개최해 늦어도 27일까지는 각 상임위 등에서 증액한 예산의 조정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방침이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의 발언을 야당에 대한 협박이라고 비판했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대통령이 예산안을 놓고 대화하자는 제의는 거부하고 오히려 국회와 야당을 협박하고 있다”며 “준예산을 편성하면 당연히 지급해야 하는 공무원 봉급을 안 주겠다는 말까지 서슴없이 할 정도”라고 말했다. 그는 여당과의 예산안 협상전략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뭐라고 해도 대운하 예산은 (통과시켜선) 안 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여야 예산안 협상 대표인 한나라당 김성조 정책위의장과 민주당 박병석 의원은 오전과 오후 두 차례 협상을 했다. 전날에 이어 이틀 동안 네 차례 만나 의견 조율에 나섰지만 양측은 이견만 확인했다. 양측은 4대강 예산의 구체적인 삭감 수치에 대해서는 의견도 나눠보지 못했다고 한다.

김 정책위의장은 회의 직후 “벽을 느꼈다”고 토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의에서 김 의장은 “25일 이후 양당 원내대표를 협상단에 포함시키는 ‘4자회담’을 열자”고 제안했고, 박 의원은 “나중에 답변을 주겠다”고 말했다.

고기정 기자 koh@donga.com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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