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좌절… 부상… 재활… 굴곡의 레이서 역전 드라마 쓰다

  • Array
  • 입력 2009년 11월 9일 03시 00분


‘경륜황제’ 안락한 삶 버리고
사이클 복귀뒤 치명적 부상 “달릴수만 있다면” 無慾 터득
9년전 올림픽 노메달 회한 “이제 다시 도전할 용기 생겨”

2009 투르 드 서울 국제사이클대회에서 우승한 조호성(가운데)이 2위 디르크 뮐러(왼쪽), 3위 그리샤 야노르슈케(이상 독일)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조호성은 “한국 선수로서 서울 도심에서 열린 첫 국제대회에서 우승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2009 투르 드 서울 국제사이클대회에서 우승한 조호성(가운데)이 2위 디르크 뮐러(왼쪽), 3위 그리샤 야노르슈케(이상 독일)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조호성은 “한국 선수로서 서울 도심에서 열린 첫 국제대회에서 우승해 감개무량하다”고 말했다. 특별취재반
《사이클에도 광화문 시대가 다시 열렸다. 1968년 창설된 동아사이클대회가 2회 대회까지 광화문에서 출발한 뒤 꼭 40년 만이다. 동아사이클이 도심 교통난을 피해 도심을 떠난 뒤 광화문은 자동차와 매연으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2000년 서울국제마라톤대회 겸 제71회 동아마라톤대회 때 마라토너들이 광화문을 메워 사람 냄새를 풍겼고 올 8월에는 광화문광장이 개장돼 시민들의 공간이 됐다. 첫 대회인 투르 드 서울 국제사이클대회가 광화문광장에서 출발해 골인함으로써 이제 광화문은 다양한 문화 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됐다. 군사정권 시절 4·19혁명을 기념하는 유일한 스포츠 행사였던 동아사이클이 재탄생한 투르 드 서울은 녹색성장의 키워드로 떠오른 자전거를 통한 새로운 문화혁명을 주도할 것으로 전망된다.》
■ 우승자 조호성 스토리
눈을 떠 보니 병원이었다. 몸을 움직이려 했으나 말을 듣지 않았다. 갑자기 무서워졌다. 다시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조호성(35·서울시청)은 올 3월 대만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경륜 황제’ 자리를 박차고 나와 아마추어 사이클 선수로 돌아온 지 3개월째. 정상이 아닌 몸으로 무리한 게 화근이었다. 처음엔 대회에 참가해 컨디션이나 점검해 볼 요량이었다. 하지만 막상 자전거에 올라타니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투르 드 대만 5일째, 내리막길에서 그는 힘껏 페달을 밟았다. 그의 기억은 거기까지만 남아 있다.

자전거는 가드레일을 받은 뒤 5m 정도 되는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목뼈 3∼5번 골절. 얼마 후 깨어났지만 ‘이제는 끝이구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다행히 회복은 빨랐다. 병원 한쪽에 마련한 연습실에서 목 부위를 고정시킨 채 다리 운동을 시작했다. 자전거에 앉자 새로운 삶을 얻은 기분이었다. 1등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사라졌다. 세상을 보는 눈도 여유로워졌다. 달릴 수만 있다면 그걸로 좋았다. 5월에는 자전거의 본고장인 프랑스로 건너가 재활을 겸한 훈련에 매진했다. 4개월에 걸친 맹훈련을 마치고 돌아오자 다시 자신감이 샘솟았다. 5년간 경륜을 하면서 얻은 노련함이 덧붙었고, 무엇보다 즐기면서 타는 자전거였기 때문이다.


복귀 무대는 지난달 열린 전국체전이었다. 남자 일반부 개인도로 금메달과 45km 도로 독주 은메달. 복귀전치고는 만족스러운 성적이었다.

그리고 국제대회 복귀 무대였던 8일 열린 2009 투르 드 서울 국제사이클대회. 출발선에 선 그는 “오늘도 즐기자”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생전 처음 달려보는 서울 도심은 신선하다 못해 신기했다. 비가 흩날리는 가운데 옆으로 보이는 한강의 풍광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즐거웠다. 신이 났다. 마음껏 페달을 밟았다. 결승선을 2km 앞두고 차를 타고 뒤따라오던 정태윤 감독이 ‘공격’ 신호를 보냈다. 페달에 온몸의 힘을 실었다. 앞서가던 독일 선수 2명을 단숨에 제치고 결승선을 가장 먼저 통과했다. 자신도 모르게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경륜 시절 수없이 했던 1등이었지만 기분이 달랐다. 서울 도심을 달리는 대회에서 맛본 첫 우승이었기 때문이다.

우승을 확정짓자마자 두 살배기 딸 채윤이를 품에 안고 입을 맞췄다. 옆에는 6년 전 결혼한 아내 황원경 씨(29)가 서 있었다. 참 고마운 아내다. 매년 2억 원 넘게 벌던 경륜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아내는 “당신의 꿈이 소중하다. 꿈 없이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격려해 줬다.

경륜 황제로 군림하고 있을 때도 올림픽 메달의 꿈은 한번도 그의 머릿속을 떠난 적이 없다. 9년 전 시드니 올림픽 포인트레이스(트랙에서 몇 바퀴를 돌 때마다 순위를 매겨 총점으로 최종 승자를 가리는 경주)에서 그는 단 1점이 모자라 4위를 했다. 아쉬움을 안고 살던 그에게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은 또 다른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포인트레이스 금메달리스트인 후안 라네라스(스페인)의 나이는 39세였다. 눈이 번쩍 떠지며 한 줄기 빛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런던 올림픽이 열리는 2012년에 그의 나이는 38세다. 나도 할 수 있다.

그의 롤모델은 수영의 박태환과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다. 그들 덕분에 수영과 피겨가 인기 스포츠가 됐다. 조호성은 “제가 잘해야죠. 제가 안 되면 후배들이 잘해야죠. 수영이나 피겨처럼 사이클이 국민들에게 힘을 주고, 국민들로부터 사랑받도록 하는 게 꿈”이라고 말한다. 투르 드 서울 우승으로 첫 단추는 잘 끼웠다. 그가 소속된 서울시청 사이클 팀은 하루의 휴식도 없이 투르 드 하이난을 위해 9일 중국으로 출국한다. 그의 인생도 자전거 바퀴처럼 쉬지 않고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특별취재반>
▽스포츠레저부
장환수 부장, 안영식 차장,
양종구 이승건 이헌재 이종석 김동욱 기자
▽사회부
이동영 황진영 조종엽 기자
▽사진부
박경모 부장, 김동주 안철민
이훈구 차장, 전영한 변영욱
원대연 김재명 기자
▽스포츠동아
양회성 기자

▲동아닷컴 뉴스콘텐츠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