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184>

  • 입력 2009년 9월 20일 13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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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장 마지막 발라드

재판이 시작되기 전 특이한 뉴스가 미디오스피어에 올라왔다. 로봇방송국 <보노보> 사장 찰스가 노민선의 무죄를 선언하고 나선 것이다. 로봇MC 남과의 인터뷰에서 찰스는 세 번 째 꼬리를 퉁퉁 쳐가면서 이렇게 보안청을 비난했다.

"노민선 박사는 세계적인 뇌신경과학자이자 '배틀원 2049' 우승 로봇 글라슈트 팀의 핵심 맴버입니다. 지금 그녀를 연쇄 살인범으로 모는 것은 '배틀원 2050' 개최를 반대하는 자연인 그룹의 음몹니다. 이미 뉴스를 통해 나갔듯이, <보노보>는 노 박사를 팀장으로 하여 '배틀원 2050'에 참가할 최강 로봇을 6개월 안에 선보일 예정입니다. 이미 세계적인 기업 일곱 군데에서 노 박사 팀에 연구 지원을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2연패를 거둘 가능성이 점점 커진 이 마당에 노 박사를 살인범으로 모는 건 한 마디로 코미딥니다. 퉁!

노 박사는 이미 보안청에서 이번 연쇄 살인이 최 볼테르 교수와 서사라 그리고 두 사람을 추종하는 반인반수족에 의해 저질러졌다고 진술한 바 있습니다. 전임연구원 세렝게티와 보르헤스 역시 노 박사의 범행을 목격한 적이 없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투웅!

노 박사가 범인이라는 보안청 특수대의 주장은 허위이며 날조된 겁니다. 이 사건을 맡은 은석범 검사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자연인 그룹의 대모 손미주의 하나 뿐인 아들입니다. 믿고 싶지 않지만, 보안청 내부에 자연인 그룹의 잔당이 침투하여 이처럼 허황된 일을 꾸민 건 아닌지 참으로 걱정입니다. 퉁 투웅!"

재판장 강 마이클은 테러 등 긴급 상황에 대비하여 재판정에 방청객을 입장시키지 않았다. 그 대신 민선의 주장을 받아들여, <보노보>를 통해 재판 과정 전부를 생중계하도록 허락했다.

재판 첫날부터 원고와 피고 사이에 불꽃이 튀었다.

석범은 속전속결로 재판을 끝낼 작정인 듯 남 앨리스 형사를 첫 증인으로 채택했다. 앨리스는 아직 기계몸에 익숙하지 않았기 때문에 부자연스럽게 목과 허리를 돌려댔다. 기계몸 비율이 70퍼센트를 넘어서면 적어도 1년은 재활훈련을 받아야 한다. 앨리스는 <보노보>의 카메라맨 로봇을 노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보노보>의 찰스 사장이 피고를 지원하는 건 피고가 서사라 트레이너를 불법 사이보그 격투시합에 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그 시합을 주최한 이가 바로 찰스 사장이고요."

배심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강 마이클 판사가 물었다.

"증인은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습니까?"

"서사라 트레이너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또한 불법 경기가 열린 경기장 건물 앞까지 갔었고요."

민선이 끼어들었다.

"보안청 형사들이 남 형사가 지목한 빌딩을 압수 수색했지만 불법 경기장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앨리스가 고개를 돌려 민선을 째려보았다.

"서 트레이너가 부상을 당해 최 교수가 응급수술을 했을 때, 그때도 피고는 우연히 서 트레이너 집을 방문했다가 쓰러진 서 트레이너를 SAIST로 옮겼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서 트레이너는 글라슈트의 시스템 정비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 사이보그 경기에 출전했던 겁니다."

강 판사가 물었다.

"관악산 방화도 피고가 증인과 서사라 트레이너를 죽이기 위해 반인반수족 M을 교사하여 저지른 짓이라고 진술했습니까?"

"그렇습니다. 판사님!"

"불법 사이보그 경기가 발각될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뿐만이 아니라면?"

"서 트레이너가 준결승전에서 글라슈트가 보인 특이행동의 원인을 눈치 챘기 때문입니다."

"특이행동의 원인을 눈치 챘다고 했습니까?"

배심원의 시선이 앨리스에게 집중되었다. 그때까지 자리에 앉아만 있던 석범이 일어섰다.

"당시 경기를 담은 영상을 증거물로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보노보>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된 겁니다."

강 판사가 배심원을 쓰윽 훑은 후 석범에게 시선을 돌렸다.

"좋습니다. 핵심만 보도록 합시다."

석범이 준비한 파일을 허공에 띄워 플레이 버튼을 눌렀다. 경기장의 함성이 먼저 배심원들의 귓전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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