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현우]민주당, 등원 명분 충분하다

  • 입력 2009년 8월 26일 02시 55분


18대 국회는 개원한 이래 국민에게 너무 큰 실망과 분노를 주고 있다. 개원 자체도 80일 넘게 지연됐다. 그리고 쇠고기 수입 문제, 미디어관계법, 비정규직법 등 여야가 대립한 사안을 국회 내에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거리투쟁과 폭력국회 속에서 공전을 거듭했다. 그 결과 모든 주요기관 신뢰도 조사에서 국회가 꼴찌로 평가됐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 영결식이 국회 앞마당에서 치러지는 모습을 보면서 거대한 국회의사당이 국민의 애도를 의회정신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장소가 되리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았다. 9월 정기국회를 앞두고 있지만 여야의 의사일정 조정이 쉽지 않은 것 같다. 국회와 국민은 별개인 듯이 느껴진다. 국회 무용론마저 대두되는데도 불구하고 정당은 그들만의 국회 속에 갇혀 있다.

국회를 정상화하라는 국민의 요구를 왜 받아들이지 않는지 따져보자. 우선 정당의 내부사정이 복잡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한나라당은 미디어법을 볼썽사납게 통과시키는 과정에서 당내의 이견이 있었고, 전반적으로 무기력한 분위기를 쇄신하는 추진력을 갖지 못했다. 아마도 당분간 또 다른 갈등 없이 국회가 운영되기를 바랄 것이다. 민주당 역시도 지도력 부재에 시달리고 있다. 두 명의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급작스러운 정치 환경의 변화 속에서 누가 정통성을 확보할지 내심 계산이 복잡할 것이다.

조문정국을 1주일 더 이어가겠다는 민주당의 입장이 전해진다. 그동안 국회가 보여준 파행을 볼 때 김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의 정신을 국회 정상화로 이어가는 것이 의미가 있다. 그동안 국회일정을 무시하는 일이 상례화됐지만 이제라도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 앞으로 국회에서 처리해야 할 법률안은 대부분 여야 간 커다란 이견이 있는 내용이 아니다. 얼마든지 여야가 합의를 할 수 있는 민생법안이다. 민주당이 국회를 여는 데 부담을 느끼는 것이 자칫하면 자신에게 유리한 정국변화를 모색하려는 속셈으로 비칠 수 있다. 그만큼 국회 정상화는 절실하고, 파행으로 얼룩진 국회에 국민이 신물을 내고 있다.

18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소수당의 한계 때문에 여러 차례 장외투쟁을 택했지만, 그동안 민주당이 국회를 외면하고 얻은 소득이 무엇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20%대 초반에 머무는 민주당 지지율은 한나라당의 지지가 감소해도 늘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민주당에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보여준다.

국회 파행의 가장 중요한 원인은 정당 간 불신의 심화이다. 국회운영은 기본적으로 관습에 의하며, 의원 간의 존경과 신뢰가 바탕이 된다. 그만큼 국회운영에 자율성을 부가한 것이다. 상대를 경쟁적 동반자로 여기지 않는다면 국회 정상화는 어렵다. 따라서 한나라당도 다수당으로서 민주당이 등원할 수 있는 명분 축적에 성의를 보여야 하며, 신뢰 회복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여야 한다.

정당이 자신들의 계산법으로 국회운영에 대한 전략을 세울 때 국회는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소수인 야당이 의석수보다 큰 힘을 가지려면 여론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국회의원들이 국회가 아닌 다른 곳에서 정치를 한다면 국민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국회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이 옳음을 국민에게 알릴 때, 여당을 제대로 압박할 수 있다. 국회가 논의의 장이기 때문에 합의가 되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파행이나 공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사안일 때 국회의 노고를 인정받을 수 있다. 정치는 명분의 경쟁이다. 그런데 지금은 명분 없이 이기적 계산에 의해 국회가 공전될 위험에 처해 있음을 국민은 우려한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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