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상석]새 인권위원장, 균형감 갖춰야

  • 입력 2009년 7월 20일 02시 56분


나쁜 아버지 밑에서 자란 두 아이가 있었다. 둘은 똑같이 아버지를 미워했다. 한 아이는 아버지를 증오하며 아버지를 닮아가더니 그 분노에 그을려 자기마저 망쳐버렸다. 다른 한 아이는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며 결코 아버지 같은 인생을 살지 않겠다는 분투와 노력으로 마침내 아버지를 극복해내고 대성하였다.

인권 과잉-피로감 없었는지

사람이 상처를 받아 그것이 축적되면, 분노와 적개심으로 내면 깊숙이 쓴 뿌리가 자리 잡게 된다. 인간에 대한 불신과 미움, 권위에 대한 부정과 반항심, 걸핏하면 싸우고 소리 지르는 자기 방어적 과잉 공격과 관계파괴적인 성격이 거기에서 우러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그들이 치유받고 싶다는 신음소리일 수도 있다. 자기의 억울함을 돌아봐 달라는, 자기도 한 인간임을 알아봐 달라는, 위로받고 싶고 놓여나고 싶다는 몸부림일 수도 있다.

그래서 상처받은 자의 아픔을 속속들이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지닌 ‘상처를 극복한 자’만이 진정한 위로자이자 치유자로서의 능력을 얻게 되는지도 모른다. ‘상처 입은 치유자’가 상처 받은 자를 보듬어 안아 줄 때 감추어진 분노의 응어리가 풀리면서 폭력이 아닌 대화로 소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장의 자리는 참으로 어려운 자리인 것 같다. 예산과 인력이 많이 주어지는 기관장도 아니고, 그나마 독자적인 결정권을 가지는 권좌도 아니다. 11인의 인권위원 중 위원회를 대표하며 업무를 통할하지만, 일의 결정은 재적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할 일은 많고, 안팎으로 말도 많다. 3년 전에는 위원장이 내부 갈등으로 출근 거부 사퇴한 일도 있었다. 이번에 중도 사퇴한 위원장의 이임사에서는 정부가 단행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기구 축소에 관하여 대통령을 상대로 헌법재판소에 제기한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언급하고 있다. 이런 끝에 “저의 후임자는 정부와 국민의 존중과 사랑을 받아, 지난 8년간 위원회가 범한 약간의 시행착오를 극복하는 한편, 그동안 이룩한 찬란한 업적을 발전적으로 승계하기 바랍니다”라는 구절도 보인다.

2001년 11월 출범한 국가인권위원회는 그간 인권정책을 총괄적으로 기획·개발하고, 인권상담 법률상담 등의 접근성 전문성을 높였으며, 인권침해 및 차별행위를 조사·구제하는 등 괄목할 만한 활동을 벌여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환 수술비를 건강보험으로 보장하자고 제안하는가 하면 종교적 병역 거부를 인정하는 권고를 채택하기도 하면서, 정작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이런 일부 편향된 목소리로 인해 국민들로 하여금 인권 과잉 내지 인권 피로감을 느끼게 한 점을 전임 위원장은 이임사에서 아울러 지적하고 있는 것 같다.

정부와 창조적 대화-견제를

사실 국가인권위원회만큼 자랑스럽고 귀한 기관도 없다. 국민 개개인의 자존심과 권리의식을 세워주고, 헌법상의 기본적 인권은 물론 경제 교육 건강 환경 등 삶의 질과 품격에 관하여 세심하게 어루만지는 독립된 국가기관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더군다나 선진국가의 길목에서 국민 다수를 위해 벌여야 할 실용적 ‘생활인권운동’이야말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자임하고 나서야 할 소중한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상처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결국은 그 상처를 어떻게 다루어내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따라서 정부는 국가인권위원회의 설립 목적과 취지를 살려 인권 옹호 및 국민 통합의 창구로 일익을 담당할 수 있도록 지지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겠다. 동시에 국가인권위원장은 ‘상처 입은 치유자’처럼 품어 안는 마음으로 구성원들을 설득하고 화합시켜 좌나 우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호민관 역할을 감당하도록 추슬러야 한다. 또 정부에 대해서도 창조적 대화와 적절한 견제를 통한 긴장 어린 동반자 관계를 유지해 가야 할 것이다.

이상석 변호사·전 대한변협 인권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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