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연천]‘핵연료 처리’ 慶州사례 활용을

  • 입력 2009년 7월 18일 03시 00분


많은 국민은 ‘사용 후 핵연료 처리방법 논의를 위한 공론화위원회’가 곧 출범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이번의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사업이 큰 소요 없이 잘 마무리될 수 있을지 불안해한다. 사용 후 핵연료보다 위험 수준이 낮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입지 선정 과정에서조차 1990년 안면도, 1995년 굴업도, 2003년의 부안 소요 사태를 비롯하여 4개 정권을 거치면서 여러 명의 관련 장관이 사임하는 등 심각한 사회적 경제적 비용을 치르고 난 후에야 마무리됐던 악몽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하물며 방사성 유출 위험도가 높은 고준위 사용 후 핵연료 폐기물 처분장 건설이 무리 없이 추진될 것이라고 누가 쉽게 예단할 수 있을까?

노무현 정부 시절, 국무총리가 중심이 되어 특별지원금 3000억 원, 폐기물 반입수수료 연평균 85억 원, 한국수력원자력 본사 이전 등 특별법 제정을 통해 방폐장 유치에 따른 혜택을 내걸고, 지방자치단체로 하여금 서로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 냈고, 궁극적으로 주민투표를 거쳐 찬성률이 높은 경주로 방폐장 용지를 선정한 바 있다.

원자력발전에 대한 환경론적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국내 전력 생산의 35%를 차지하고 원자력발전 설비용량 기준 세계 6위를 기록하면서 원자력발전 기술 수출국으로 부상하는 우리나라가 아직도 사용 후 핵연료 처리시설에 대한 뚜렷한 계획을 갖고 있지 못한 채 임시 저장한다는 사실은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지금부터 사용 후 핵연료 처리시설에 대한 치밀한 계획을 국민적 공감대 형성을 토대로 차질 없이 추진하지 않는다면, 임시 저장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를 2016년 이후의 원자력발전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을 감안할 때 공론화위원회는 만시지탄이라고는 하나 고무적인 출발임에 틀림없다. 우선 이름부터 ‘추진’이 아니고 ‘논의를 위한 공론화’로 붙인 것 자체가 무엇보다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는 토대 위에서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이기 때문이다.

사실 핵 폐기장 건설 문제는 효율성, 경쟁력 등 경제논리보다 토론과 설득을 근간으로 한 합의 도출에 이르는 과정의 정당성이 국민적 동의를 끌어내는 핵심적 요소임이 지난번 경주 방폐장 선정 때 우리가 얻은 교훈이었다. 특별법 제정과 재정지원 약속 등 지원에 치중할 뿐 시민사회가 참여한 자율적 민간기구가 전적으로 입지 선정을 주도함으로써 반대 단체의 주장을 경청하고 국민적 지지를 확보했던 성공 사례를 고준위 핵연료 처리시설 공론화 과정에서도 십분 활용해야 한다.

시민단체가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던 노무현 정부 시절과는 대조적으로 시민사회가 정부의 노선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점도 현 정부가 시민사회와 같은 눈높이로 진정성을 갖고 대화하기 위한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시민사회 역시 지역이기주의, 집단이기주의, 보상만능주의를 극복하면서 주요 국책사업을 정권적 차원에서 조명하지 않고, 국민의 보편적 이익의 실현에 뿌리를 둔 대응자세를 견지함으로써 최선이 아니면 차선일지라도 순응하는 성숙된 자세를 고양한다면 국책사업 수행에 있어서도 세계 중심국가로 진입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작금의 국회에서처럼 개원 자체를 저지함으로써 논의의 장(場)마저 봉쇄하는 사태가 국책사업 공론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습이다. 우리의 성숙한 국민의식은 ‘국민 모두가 패자(敗者)가 되는 무한대결’을 철저히 외면할 것임에 틀림없다.

오연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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