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100>

  • 입력 2009년 5월 25일 13시 25분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놀이를 즐긴 적이 있는가. 그 놀이의 묘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엉뚱함이다. 때론 말놀이와 닮은 상황에 빠질 때가 있다, 호기심과 두려움이 작은 소시지처럼 줄줄이 따라오는!

앨리스는 5번역을 지난 후에도 빛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계속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기었다. 마음속으로 거리를 계산했다. 200미터 150미터 100미터.

100미터부터는 1미터 이동한 후 10초씩 멈추고 아래를 살폈다. 지하통로가 왼편으로 꺾인 탓에 50미터 이상은 살피기 힘들다.

"피지 마."

성창수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먼저 귀에 닿았다. 앨리스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들려온 곳을 쳐다보았다. 빛 망울이 발갛게 피어올랐다가 스러졌다. 골초인 지병식이 담배를 피운 것이다.

2049년, 특별시 정부는 개인 숙소를 제외하곤 어디서도 담배를 피우지 못하는 일명 '금연법'을 만들었다. 병식은 근무 시간 중에 가끔 자리를 비웠다. 출근 전에 충분히 니코틴을 몸에 축적하고 오지만, 그래도 참을 수 없는 날엔 보안청에서 차로 17분 떨어진 집까지 다녀오는 것이다.

병식이 지하통로에서 담배를 피워 문 것은 니코틴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폐쇄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면 짧게는 1년 길게는 10년까지 재수가 좋다'는 풍문이 미디오스피어의 <믿거나말거나> 코너에 떠돌았던 것이다. 병식은 이 코너의 열렬한 애독자였다.

"성 형사. 너까지 왜 그래? 여기서 한 대 피웠다가 특별시연합 복권에 당첨된 청소부 이야기가 <믿거나말거나>에 떴다니까."

"그래서 뭐? 복권 당첨돼서 한 몫 챙기시겠다?"

"언제까지 흉악범 뒤꽁무니나 쫓으며 살 순 없잖아? 성 형사. 너도 나가자마자 나랑 바로 복권 사자고."

"너나 많이 사셔."

"방문종과 문제아들 소굴이 이 근처랬잖아? 근데 아무 것도 없네."

"왜? 녀석들이 너처럼 담배라도 빨아서 나 여¤수 할까봐?"

"말 다했어?"

"다했다. 어쩔래?"

피식.

앨리스는 웃음이 나왔다. 성 형사와 지 형사는 20년이 넘도록 친형제처럼 붙어 다녔다. 완전히 정반대인 성격 탓에 만나면 툴툴대고 다투는데도 서로를 끔찍이 아꼈다.

오른팔과 오른 다리를 동시에 내뻗는 순간, 작은 돌멩이 하나가 떨어졌다. 갈라진 틈으로 삐죽 나온 돌멩이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으이그!

앨리스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창수와 병식은 재빨리 벽에 붙어 소리가 들린 곳을 살폈다. 앨리스는 몸을 바짝 천장에 댄 채 숨소리마저 죽였다. 병식이 조심조심 돌멩이가 떨어진 지점으로 다가왔다. 30미터, 20미터.

내려갈까?

천장에 매달린 채 발각되기는 싫었다. 공중곡예를 하듯 가볍게 뛰어내려 너스레를 떨까. 하지만 천장에 붙어 거미 흉내를 낸 까닭을 둘러대긴 쉽지 않을 것이다.

"거기, 누구야?"

갑자기 뒤에서 창수의 고함이 터져 나왔다. 병식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앨리스의 시선도 창수 쪽으로 향했다.

"지 형사! 빨리 와."

착시였을까. 창수가 힘껏 벽을 향해 뛰어들었고, 병식도 창수가 사라진 곳까지 달려가더니 곧 자취를 감췄다.

앨리스는 천천히 천장에서 내려왔다. 올라갈 때나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움직일 때보다도 내려올 때가 훨씬 힘들었다. 작은 소리가 들릴 때마다 멈춰야 했기 때문에 온몸에 땀이 비 오듯 흘렀다.

다시 여길 오나 봐라.

속으로 이를 부드득부드득 갈며 바닥에 내려온 앨리스는 두 형사가 뛰어든 벽까지 다시 고양이 걸음으로 접근했다.

구멍이었다. 허리를 숙이면 겨우 들어갈 작은 구멍!

앨리스는 그 구멍을 노려보며 잠시 생각했다.

제길! 이 폐쇄구역엔 이런 구멍이 몇 개나 있을까? 백 개? 천 개? 숨바꼭질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저기로 뛰어든다고 성 선배나 지 선배를 찾을 수 있을까?

탕!

그 순간 총소리가 들려왔다. 앨리스는 반사적으로 벽에 붙어 두 눈을 크게 떴다.

보안청에선 이렇게 울림이 큰 총을 사용하지 않아. 그렇다면? 누군가 성 선배와 지 선배를 향해 총을 쐈어. 미치겠네, 정말!

앨리스는 총을 빼어들고 구멍으로 뛰어들었다. 위기에 빠진 동료를 외면하는 것은 그녀답지 않았다. 무릎걸음으로 20미터 쯤 기어들어가니 얇은 천이 머리에 닿았다. 그 천을 걷어내자마자 빛이 쏟아졌다. 어른 한 사람이 뒤꿈치를 들고 팔을 뻗어도 남을 만큼 큰 굴이다. 앨리스가 눈을 끔뻑이며 무릎을 세우는 순간 총성이 연이어 들려왔다.

탕 타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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