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재명]中企목소리에 귀막은 ‘中企人대회’

  • 입력 2009년 5월 23일 03시 00분


“서울시장과 중소기업인 간담회가 아니라 서울시 홍보 강연을 듣고 가는 기분입니다.”

21일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09 서울 중소기업인 대회’ 참석자들이 한결같이 지적한 점이다. 이 대회는 전국적으로 펼쳐진 ‘제21회 중소기업주간’ 행사의 하나로 서울지역 중소 상공인들에게 가장 큰 잔치다. 이날 350명이 넘는 중소 상공인들이 참석해 80여 명이 서울시장과 지식경제부 장관 표창 등 크고 작은 상을 수상했다.

이 행사에 중소기업인들이 몰린 데는 수상 외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직접 참석해 소상공인들과 간담회를 갖는 일정 때문이었다. 전체 행사 2시간 중 간담회 예정 시간은 30분. 서울시 행정 최고 책임자에게 허심탄회하게 애로 사항을 전달한다는 기대에 서울지역 40개 소상공인 조합장들도 모였다. 무허가 자동차 정비센터 문제에서 가스 운반 차량 단속 문제까지 이들이 들고 나온 문제도 다양했다.

20여 분간의 시상식이 끝난 후 시장 강연이 시작됐다. 오 시장은 “서울의 브랜드를 세계 수준에 맞추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며 1시간 25분 동안 열정적으로 취임 이후 서울 브랜드 강화 성과를 설명했다. 서울이 해외 여론조사에서 ‘방문하고 싶은 도시’ 순위가 올라갔다며 해외 홍보 실적, 서울시 공무원의 청렴도 순위 상승 등을 강조했다.

이후 중소 상공인 간담회에 배정된 시간은 단 15분. 쫓기듯 사전에 배포된 보도자료에 나온 대로 ‘예정된’ 질문을 하고 간담회는 끝났다. 오 시장은 “실무자 협의 후 문제점을 파악해 중소기업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고 했지만 참석자들의 반응은 썰렁했다.

바뀌고 있는 서울시의 생생한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고픈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다만 서울시 브랜드 가치 상승을 이야기하는 것보다 현장의 문제점을 하나라도 더 청취하는 것이 생산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많은 중소 상공인들은 시장에게 직접 애로사항을 건의하기 위해 모였다. 행사장에서 만난 한 중소기업인은 “방문하고 싶은 도시의 순위를 우리가 왜 알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차라리 기업 하고 싶은 도시의 순위가 궁금했다”고 말했다. 바쁜 2시간을 낸 참에 중소 상공인의 애로를 하나라도 더 들었다면 오 시장 개인의 ‘브랜드 가치’는 오히려 더 상승했을 것이다.

박재명 산업부 jm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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