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집회시위의 ‘작용-반작용’

  • 입력 2009년 5월 22일 02시 56분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는 ‘스피커스 코너(Speaker's Corner)’라는 발언대가 있다. 정치 종교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이나 주장을 대중에게 알리고 싶은 사람은 이곳에서 마음껏 큰소리로 연설을 하면 된다. 1872년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는 연사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잘 들을 수 있도록 비누를 담는 궤짝에 올라가서 연설을 했었는지 발언대는 소프박스(Soapbox)로도 불렸다. 5년 전 하이드파크에 들렀을 때 50대 남자가 영국의 이라크전쟁 참전을 비난하면서 ’블레어 총리는 거짓말쟁이(Blair is Bliar)’라고 비꼰 피켓을 번쩍 들어올리자 이를 본 청중이 박장대소하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16일 정부대전청사 일대에서 벌어진 화물연대의 폭력시위를 계기로 정부가 폭력시위가 예상되는 대규모 도심 집회를 원천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발표한 뒤 ‘집회의 자유’ 논란이 일고 있다. 경찰은 불법행위자는 현장에서 검거하고, 바로 검거하지 못할 경우 채증작업 등을 통해 반드시 사법처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시위 피해에는 민사상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로 했다.

정부는 폭력시위 근절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시민단체나 노동계는 언론 집회의 자유를 막는 발상이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각자 나름의 논리가 있지만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과 흡사하다. 헌법 21조는 ‘모든 국민은 집회의 자유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집시법은 불법 폭력 시위가 우려되거나 도심 교통소통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고 판단될 경우 집회금지 통고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전 집회에서 시위대는 깃발을 달았던 대나무를 마구 휘둘러 전경버스 99대를 부쉈다. 경찰 104명이 부상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제1기동대의 강호경 일경은 대나무 조각에 눈을 찔려 자칫하면 실명할 수도 있다고 한다. 시위대는 전경버스 엔진에 장갑을 집어넣고 팬벨트를 끊고, 주유구에 이물을 집어넣어 차량을 못 쓰게 만들기도 했다.

이날 시위를 놓고 경찰은 시위에 쓰인 대나무는 사실상 흉기라며 ‘죽창’이라 부르고 있다. 아스팔트 바닥에 대나무를 내리치면 끝이 가늘게 갈라져 인명을 살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도 19일 국무회의에서 “시위대가 죽창을 휘두르는 장면이 전 세계에 보도돼 한국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혔다”면서 엄정대처를 주문했다. 반면 시위대는 경찰이 거리행진을 막고 참가자를 마구 연행하는 바람에 폭력이 발생했다며 대나무 깃대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죽창’은 좀 심한지 검찰은 ‘죽봉’으로 부른다. 그러나 대나무든, 죽봉이든, 죽창이든 공격을 당하는 쪽의 눈에는 모두 무기로 보일 것이고 이는 명백한 불법행위다.

지난해 촛불시위에 덴 탓인지 경찰청은 도심 집회 피해를 줄이고 평화로운 집회를 보장한다며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 등 전국 8곳에 ‘평화시위구역’을 지정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집회 실적은 30여 건에 불과하다. 노동계는 “허허벌판에서 소리를 지르라는 것은 인디언보호구역에 가두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주장한다.

정부와 노동계 모두 논리는 있지만 극단적인 방법에는 항상 부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검찰과 경찰이 강경 일변도로 대응한다면 노동계는 더 극렬하게 저항하고 충돌수위는 에스컬레이트될 수밖에 없다. 정부는 흥분하지 말고 침착하게, 그러나 불법에는 엄정하게 대응하기 바란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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