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92>

  • 입력 2009년 5월 13일 13시 23분


제 19장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

문종은 피식 웃으며 보배의 목을 어깨동무 하듯 끌어안는다. 문종의 손톱이 어느새 단검의 칼날로 바뀌어 있다. 조금이라도 반발하면 당장 목덜미의 경동맥을 깊숙이 찌를 자세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미리 예고된 인공비다.

-가자!

자막이 짧게 찍힌다.

문종은 보배를 끌고 좁은 길을 하나 건너 자신의 오토바이로까지 걷는다. 갖가지 장비가 갑옷처럼 들어붙어 웬만한 경차보다 더 크고 무거워 보인다. 보배를 뒷자리에 앉히자, 강철로프가 자동으로 보배의 몸을 둘둘 감는다. 그리고 곧 오토바이가 떠난다.

문종의 오토바이가 출발하자마자, 50미터 쯤 떨어진 공터에 세워진 자동차로 뛰어가는 이가 보인다. 모자를 깊이 쓰고 마스크로 입을 가린 사내다. 위성카메라는 그를 자세히 살피는 대신 다시 문종의 오토바이로 앵글을 돌린다. 특이행동으로 접수된 이는 방문종인 것이다.

직선도로를 질주하는 동안, 문종은 하늘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세 번 치켜든다. 촬영당하고 있음을 의식한 행동이다. 자동차는 40미터 남짓 거리를 두고 오토바이를 따른다.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는 듯, 구비에서 오토바이가 속도를 늦추더라도 가까이 다가붙지 않는다.

화면 끝자락에 자동차가 들어오기도 하고 밀려 사라지기도 한다.

문종이 다시 손가락을 들어 보인 후 지하도로로 들어간다. 위성카메라의 추격이 불가능한 지하로 일부러 숨은 것이다. 자동차도 곧 그 뒤를 따른다.

동영상은 비 내리는 지하도로 입구에서 멈춘다.

"방문종은 무사해?"

화면이 사라지자마자 석범이 물었다. 앨리스의 얼굴이 화면에 떴다. 이동 중인 그녀의 자동차 안이었다. 털털한 성격과는 달리 색색가지 인형이 곳곳에 붙어 따로 또 같이 흔들렸다. 앨리스가 석범의 곁에 앉은 민선을 흘겨보았다.

"지하도로로 들어가서 216미터 달리다가 오른쪽으로 틀면, 금 간 벽으로 강물이 스며들어 2048년부터 2051년까지 폐쇄한 구역이 나옵니다. 오토바이는 그 입구에서 멈췄고, 방문종은 박보배를 끌고 폐쇄 구역 임시 초소로 들어갔습니다. 말이 초소지, 벽의 균열도를 점검하는 보안청 말단 직원이 일주일에 겨우 한 차례 곁눈질하고 서둘러 나가는 곳입니다. 2년 남짓 그 초소에 머문 사내는 방문종이 유일하더군요. 그곳에서 고통을 겪은 여자들을 제외하곤 사내의 체모나 DNA는 방문종 것밖에 없었으니까요. 박보배는 거기서 당했습니다."

"방문종이 죽인 겁니까?"

민선이 불쑥 끼어들었다. 앨리스가 그녀의 개입을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쳤다.

"넘겨짚지 마십시오. 범인은 흡입 후 5초 안에 잠드는 '아네폴3'을 초소에 뿌렸습니다. 그리고 박보배의 인공안구를 모두 뽑고 뇌를 가져갔어요. 근데 그 솜씨가 꽃뇌나 도그맘, 변주민과는 많이 다릅니다. 관상봉합이나 삼각봉합(두개골 조각들의 접합면)은 그대로 두고, 무식하게 날카로운 정으로 측두선 근처를 여러 차례 가격해 깬 후 뇌를 꺼내갔습니다. 경험이 많은 녀석 같진 않습니다."

"방문종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나?"

"오토바이가 입구로 사라지고 10분 37초 만에……."

영상이 빨리 감겼다. 앨리스는 지하도로에서 오토바이가 달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설명을 이었다.

"보시다시피 방문종 혼자 오토바이를 타고 나왔습니다. 오토바이가 심하게 비틀대는 것으로 볼 때, 범인이 쏜 '아네폴3'을 소량 흡입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두개골을 자르고 뇌를 떼어내는 데는, 휴대용 수술 장비를 모두 지니고 다닌다고 해도 15분은 족히 걸립니다. 그러니까 박보배의 뇌를 가져간 사람은 따로 있는 겁니다. 범인은 끝까지 지상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지하에서 지하로 이어진 통로가 적어도 열 군데가 넘더군요."

"방문종의 행방은?"

"성 선배와 지 선배가 뒤쫓고는 있는데 아직 붙잡지 못했습니다."

"특이사항은 더 없나?"

앨리스가 입김으로 앞머리를 후훗 불어댔다.

"그, 그게 ……현장에서 잘려나간 원숭이 꼬리가 발견되었습니다. 진짜 원숭이는 아니고 기계로 만든 원숭이 꼬리입니다."

"기계로 만든 원숭이 꼬리? 범인이 반인반수족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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