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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4월 22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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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우리 과 소관이 아니고 ◇◇과로 문의하셔야 합니다.”
“◇◇과죠? ○○에 대해 질문이 있어서요.”
“○○는 우리 과 담당이 아닙니다.”
“그럼 어느 과에 문의해야 합니까?”
“□□과로 해보세요.”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전화를 걸어 답변을 들으려면 보통 인내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담당과가 아니다”라는 답변에 4, 5번 전화를 돌려야 한다. 하도 여러 번 돌리다 보니 처음 어느 과에 전화를 했는지도 잊어버리고 다시 그 과에 전화하는 일도 생긴다. 이런 일은 ‘전문가의 함정’에 빠진 조직에서 흔히 발생한다. 자신이 맡은 업무만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업무 분야 이외의 것에는 관심이 없어지고 국민적 요구와 현안에 둔감해진다.
식약청이 이런 식으로 업무를 처리하다 식·의약품 사고가 터졌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2000년 이후에만 ‘납꽃게 파동’ ‘기생충알 김치’ ‘생쥐머리 새우깡’ ‘이소프로필안티피린(IPA) 진통제 부작용 논란’ 등…. 열거하기도 벅차다. 이번 ‘탤크 파동’도 마찬가지다. 석면의 위험성을 이미 5년 전에 알았지만 방치했다. 그러곤 일이 터지자 허겁지겁 기준치를 만들었다. 성급하게 판매금지 조치를 내렸다가 며칠 못 가 철회하기도 했다.
식약청 관계자는 “하루라도 빨리 대책을 내놔야 하니 오류가 생기고 뭇매를 맞는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어려움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느리면 늑장부린다고, 빠르면 너무 서두른다고 질타가 쏟아진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느리다 혹은 빠르다’가 아니라 식약청이라는 조직이 걸핏하면 ‘조직의 존재이유’를 잊어버리고 원칙 없이 운영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일이 터지면 우왕좌왕하게 되고 국민을 불안하게 만든다. 21일 설립 11년의 대수술이라는 조직개편안이 확정된 뒤에도 “과연 달라질 수 있을까”라는 반응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 소속 민주당 최영희 의원은 심지어 “지방식약청 소속 직원들을 시도에 전환 배치해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지도 단속 기능을 강화할 계획이라지만 사실은 식·의약품 사고가 터져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뜻 아니냐”고 지적했다. 지자체의 식·의약품 단속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많았는데도 이런 얘기가 나올 정도다.
식약청은 조직개편을 납세자인 국민의 채찍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조직개편으로 할 일을 다 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다. 이젠 사람이 바뀌어야 한다.
김현지 교육생활부 nu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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