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 기자의 digi談]부끄러운 부처 신경전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56분


기념행사 따로따로 부끄러운 부처 신경전

몇 년 전 KBS에는 신인 개그맨을 발굴하는 ‘개그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개그맨 지망생이 팀을 이뤄 공연하면, 개그우먼 김미화 씨 등 심사위원이 그 자리에서 평가 점수를 발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죠. 유세윤 장동민 곽한구 김기열 등 많은 스타 개그맨이 이 프로그램을 거쳤습니다.

이 프로그램에서 한 팀이 개그맨 지망생과 심사위원 사이의 에피소드를 개그로 선보였다가 최악의 점수인 ‘0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심사위원들은 “무대 뒤의 얘기를 소재로 쓰면 자칫 우리들끼리만 즐거운 개그가 될 수 있다”며 “관객의 공감대를 전혀 배려하지 않은 프로답지 않은 행동”이라고 혹평했습니다.

이달 22일 제54회 ‘정보통신의 날’ 기념행사를 각자 따로 개최하기로 한 방송통신위원회와 지식경제부 우정사업본부가 개그사냥 무대에 올랐다면 ‘0점’을 면하지 못했을 겁니다.

방통위는 이날 오전 최시중 위원장 주재로 서울 세종로 청사에서 기념식을 열고 정부포상자 9명에게 표창을 하기로 했습니다. 우정사업본부도 같은 날 남궁민 본부장 주재로 서울 종로구 서린동 본부에서 정부 포상 등 기념행사를 갖기로 했죠.

원래 정보통신의 날은 ‘체신의 날’로 출발했습니다. 1884년 고종 임금이 우정총국 개설 축하연을 연 날을 기념해 1956년 지정됐죠. 1995년 체신부가 정통부로 이름을 바꾸면서 ‘정보통신의 날’이 됐습니다. 따로 운영되던 ‘집배원의 날’도 통합됐습니다.

문제는 작년 초 정부조직 개편으로 한 몸이던 정보통신부와 우정사업본부가 각각 방통위와 지경부 우정사업본부로 분리되면서 발생했습니다. 기념일 관할은 방통위로 넘어갔지만 역사적 뿌리가 가까운 우정사업본부는 지경부를 기념일 주관부처로 해야 한다며 별도의 기념식을 열고 있습니다.

두 부처의 신경전은 자기들끼리는 심각하겠지만 가뜩이나 팍팍한 살림에 힘겨운 국민들로서는 짜증나는 일입니다. 이런 일에 국민들의 세금이 쓰이는 걸 생각하면 속이 쓰립니다.

정부 부처들은 가장 뛰어난 인재를 다른 부처와의 업무 조정을 담당하는 부서에 배치합니다. 그들만의 치열한 조직 확장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죠. 공공 서비스의 소비자인 국민은 한 부처를 통해 원스톱 서비스를 받고 싶지만 그들만의 다툼이 계속되는 한 요원한 일입니다. “무대 뒤의 일을 관객(국민)에게 알리지 말라”는 개그사냥 심사위원의 혹평을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김용석 nex@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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