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강석훈]누구를 위해 자동차 값을 내리나

  • 입력 2009년 4월 15일 03시 00분


정부가 10년 이상 사용한 자동차를 교체하는 경우 최대 250만 원까지 세금을 깎아 주는 자동차구입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어려운 자동차업계를 도와주기 위한 특단의 정부 대책이다. 이번 대책은 자동차를 구입하려는 국민의 부담을 줄여주고, 또한 경영난에 허덕이는 자동차업계에도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여기까지만 이야기하면 이번 대책은 참으로 훌륭한 정책이다. 그러나 실제로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이번 대책은 다시 생각해봐야 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정부의 설명이 필요한 부분은 왜 하필 지원 대상이 자동차여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자동차 말고 더 많은 사람이 사는 텔레비전은 왜 지원대상이 되지 않으며, 국제 시세에 비해 그렇게도 비싼 휴대전화는 왜 지원(소비자 부담 경감) 대상이 아닐까? 왜 그토록 많은 사람이 매일 사용하는 휘발유 값이나 버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비는 지원 대상이 안 되는 것일까? 물건으로만 한정하지 않는다면 연간 1000만 원에 육박하는 대학 등록금은 어째서 지원대상이 되지 못할까?

다음으로, 왜 지원 대상이 자동차를 구입하는 사람들이어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 이 어려운 시기에 자동차를 교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래도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자동차를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지원 대상이 되고 자동차를 바꾸기는커녕 하루하루 대출이자를 갚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고 있는 선량한 서민들은 왜 지원대상이 되지 않을까?

자동차 말고도 도와줄 부문 많다

자동차 값에 비례하는 지원 방식도 이해하기 어렵다. 왜 더 비싼 자동차를 사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혜택을 받아야 하는가? 녹색성장을 위해 헌 차를 새 차로 바꾸어줄 필요가 있다는 부분은 아예 실소를 금하기 어렵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이려면 사람들이 자동차를 적게 타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원 시기도 이해하기 어렵다. 현재 경기상황에 대해서는 올해 하반기 무렵에 저점을 찍지만 이후에도 아주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면서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경기가 저점을 찍은 이후에도 저점인지 아닌지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의 완만한 회복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이다. 이러한 전후 상황을 고려할 때 지금은 자동차업계가 그동안 상대적인 호경기 속에서 벌어 둔 자금을 이용해 시간을 벌면서 뼈를 깎는 자체적인 구조조정으로 자구책(自救策)을 시행해야 할 시기이다. 경직된 노사관계를 더 합리적으로 개선하고, 각종 경영 비효율을 능동적으로 제거하는 시기여야 한다. 정부는 이러한 자구책을 보인 경우에 한해 자동차업계를 지원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무엇에 쫓기는지, 설익은 정책을 덜컥 발표하면서 시장에 혼란을 야기한 바 있다. 더욱 걱정스러운 대목은 자동차 지원대책의 종료 시기인 올해 12월에도 경기가 눈에 띄게 좋아지지 않으면 정부로서는 지원대책을 연장할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경기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가운데 지원대책을 종료한다면 결국 자동차 수요가 급격히 감소할 것이기 때문이다. 향후 자동차노조가 파업을 하면 지원을 중단한다는데, 이것 때문에 강성으로 유명한 자동차노조가 파업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순진하기까지 하다.

이번 정부대책의 혼선과 오류는 매번 그랬듯이 경기침체기 대응 정책에 관한 이명박 정부의 원칙과 철학의 부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기침체기의 정부 대책은 자동차업계 등 산업에 대한 직접 지원보다는 매우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빈곤층, 실업자 그리고 구조조정에 따른 일자리 상실 계층에 대한 지원을 우선시해야 한다. 시장원리를 넘어 개별 산업을 직접 지원하는 경우라면 그것이 국민경제에서 가장 우선순위가 높다는 점을 먼저 증명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외국에서 자동차산업을 지원한다고 해서 우리나라도 자동차산업을 지원해야 한다는 논리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외국과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이 다르고, 자동차산업의 실상도 다르기 때문이다.

원칙 없는 지원, 도덕적 해이 조장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산업이라도 반드시 그 산업의 자체적 구조조정이 엄격한 선행조건이어야 한다.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하고 난 후 국민에게 도와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이 순리다. 이런 순리조차 무시한다면 정부의 개별 산업에 대한 지원은 온갖 종류의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만을 만연시킨 채 애꿎은 국민이 그 궁극적인 피해자가 될 것이다. 국회의 관련 세법 개정안 처리과정이 남아 있지만 자동차 대책은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동차산업을 위해서는 유사 휘발유가 없어야 하듯이 국민경제를 위해서는 앞으로 제2, 제3의 유사 자동차대책이 없어야 한다.

강석훈 객원논설위원·성신여대 교수·경제학 shkang@sungshi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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