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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4월 13일 19시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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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전 의원으로서는 자신을 자민련으로 이끈 김종필 총재는 물론이고 당 동료 의원들과의 인간관계를 감안한다면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그는 최근에 펴낸 자전(自傳) 형식의 정치 에세이 ‘열정의 시대’에서 ‘아무리 인간적인 의리가 중요하더라도 공인으로서 정치인이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고 당시의 심경을 토로하고 있다. 그 후 자민련이 겪은 수모를 돌이켜 보면 그의 판단이 옳았다고 할 수 있다.
인간관계에서 의리는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적 영역에 국한될 때, 그리고 적어도 타인에 대한 배려를 저버리지 않을 때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이 사적 영역을 넘어 공적 영역으로 비집고 들어갈 때 악을 잉태하게 된다.
우리는 역대 정권에서 그런 사례들을 수도 없이 지켜봤다. ‘사적 의리’는 파벌과 패거리문화를 형성하면서 공적 인사와 정책결정, 자원 배분을 왜곡시킨다. 도덕성을 마비시키고 불법과 탈법에 둔감하게 한다. 자신들의 패거리에는 한없이 관대해지는 반면 타인에게는 극도로 배타적이다. 그 종착역은 모두가 같이 망하는 것이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 사건과 관련해 노무현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 겪고 있는 수난도 그런 경우이다. 그들이 사적 의리를 얼마나 중시하는지는 노 전 대통령의 ‘왼팔’이라는 안희정 민주당 최고위원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안 최고위원은 최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의리 때문에 우리들을 도와주다 숱한 시련을 당하는 강 회장에게 죄송하고 감사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민주주의도 결국은 사람의 의리와 바른 도리가 그 사회의 상식이 되고 국가의 법과 제도가 되는 세상일 것”이라고 엉뚱한 논리적 비약을 했다.
안 최고위원은 아마 이런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순수한 의도에서 의리 때문에 서로 금전적 도움을 주고받은 것이 무슨 잘못이냐고. 그 정도는 사회적으로, 또 법적으로 포용해 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의리의 공사(公私) 구분이 불분명한 이런 의식은 노무현 유형의 사람들에게서 비슷하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노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측근 비리가 보도될 때마다 두둔하기에 바빴다. 최도술 총무비서관의 기업 비자금 수수 의혹이 불거졌을 땐 재신임을 묻겠다며 대통령 직을 걸었고, 총선을 앞두고 자신의 정당을 도와달라고 발언했다가 탄핵사태를 맞았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규정한 헌법을 ‘그놈의 헌법’이라며 거추장스럽게 여겼다.
공직자라면 사적 의리가 아무리 소중하더라도 이를 결코 공적 영역으로 끌어들이지는 않음을 제1의 신조로 삼아야 한다. ‘빗나간 의리’는 패가망신과 망국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다. 이명박 정권에서 정치권과 공직사회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도 의리의 공사 구분을 분명하게 하지 못하면 4년 뒤에 지금 노 정권 사람들과 같은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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