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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9년 4월 3일 21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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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0주년을 맞아 지난주 중국의 임정(臨政) 유적지를 탐방하는 동안 이 에피소드가 줄곧 떠올랐다. 임정 유적지는 대한민국의 오늘과 한중(韓中)의 위상 변화를 보여주는 거울이었다. 후손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남의 나라 땅에 있는 임정과 항일투쟁 유적지는 자랑스러울 수도, 초라해질 수도 있다는 소중한 교훈을 얻었다.
臨政 정신 해치는 중국식 복원
1919년 4월 13일 상하이에 임정을 수립한 독립투사들이 충칭까지 2만5000km를 이동하며 머물렀던 유적지는 세 갈래로 분류할 수 있다.
첫째는 중국이 복원을 주도한 경우로 항저우 창사의 유적이 해당된다.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창사 요양처의 안내 비디오는 처음부터 끝까지 임정과 우리 독립선열을 보살핀 중국의 역사를 강조한다. 중국의 관대함만 있고 임정에 대한 평가는 없다. 사실 관계가 틀린 전시물도 한두 개가 아니다. 항저우 청사에는 태극기와 오성홍기가 나란히 걸려 국민당 정부 시절 이뤄진 임정의 활동과는 어울리지 않는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둘째는 한중 합작의 경우로 충칭 청사가 대표적이다. 1995년 독립기념관이 충칭 시와 손잡고 복원했다. 과거는 물론 현재의 한중 우의에도 걸맞은 역사의 현장으로 손색이 없다.
셋째는 상하이 훙커우 공원에 있는 윤봉길 의사 기념관 같은 경우다. 우리가 돈을 넉넉하게 지원해 기념관이 세워졌다.
임정 유적이 다른 길을 걷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한중의 경제적 위상 변화 때문이다. 1995년은 우리가 외환위기를 겪기 전이었고 중국은 가난한 나라였다. 충칭 청사 복원과 윤 의사 기념관 건립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이후 복원은 중국의 경제력이 뒷받침됐다. 중국 지방정부가 유적을 복원할 만한 재력을 갖게 돼 ‘중국식 복원’이 시작됐다.
한중의 위상 변화는 앞으로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000달러를 넘었다. 중국도 어느덧 임정 유적을 복원하는 대신 재개발하면 훨씬 이익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상하이 청사부터 개발의 물결에 휩쓸릴 것만 같아 찾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우리는 어떤 나라를 만들고 있는가
더구나 중국은 임정 유적을 한국인을 끌어들일 관광 상품으로 여기고 있다. 매년 상하이 임정 청사에 40만 명, 윤 의사 기념관에 25만 명의 한국인이 몰리니 그런 생각을 할 만도 하다. 관광길에 방문하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임정 유적이 관광지로 전락하면 선열들의 혼은 퇴색할 수밖에 없다. 중국식 복원이 계속되면 독립운동의 정체성도 옅어진다. 중국이 임정을 존중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순국선열들은 오늘도 후손들에게 “어떤 나라를 만들고 있느냐”고 물으시는 것 같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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