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인철]좋은 경찰, 나쁜 경찰

  • 입력 2009년 3월 13일 02시 58분


영국 경찰은 보비(Bobby)로 불린다. 1829년 런던경찰국을 창설한 로버트 필 내무부 장관의 애칭에서 비롯됐다. 런던경찰국은 당시 스코틀랜드 국왕의 궁전 터에 위치한 데서 유래해 ‘스코틀랜드 야드(Scotland Yard)’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보비는 런던을 상징하는 훌륭한 관광상품 중 하나다. 타원형의 독특한 모자를 눌러쓰고 느릿느릿 순찰하는 모습은 ‘영국 신사’를 떠올리게 한다.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은 보비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그러나 이 점잖은 보비가 불법행위에는 단호하고 민첩하게 대응하며 런던 치안의 보루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경찰관과 말을 할 때는 ‘Yes, sir’라는 말을 꼭 붙이도록 가르친다. 경찰관에 대한 존경의 표시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혹시라도 불손한 태도를 보였다가 피해를 볼까 걱정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경찰관에게 단속을 당하면 운전자는 핸들 위에 손을 얹고 경찰관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면허증을 찾는다고 조수석 서랍을 뒤지는 ‘수상한’ 행동을 했다가는 언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른다. 권총과 전기충격기로 무장한 모습은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총기 소지가 허용된 때문이기도 하지만 경찰은 공권력의 상징으로 인정받는다.

프랑스 파리에 출장을 갔다가 마침 그날 축구 빅 매치가 끝난 뒤 축제 분위기 속에 인도를 행진하던 관중 가운데 일부 훌리건들이 차도로 진입하는 순간 경찰관들이 곤봉으로 사정없이 때리는 것을 목격한 일이 있다. 언론도 이를 문제 삼지는 않는다.

우리나라는 정반대다. 지난해 촛불시위 때는 어린 초등학생까지 전경들에게 침을 뱉고, 기물을 파손한 현행범을 체포한 경찰관을 시위대가 폭행하고 감금했다. 지난 주말에는 용산 참사 추모집회 시위대가 경찰관들을 집단 폭행하고 경찰관의 신용카드를 빼앗아 버젓이 물건을 사는 지경이 됐다. 경찰이 동네북이 되는 나라다.

1993년 12월 영화 ‘투캅스’가 화제가 됐다. 고참 형사의 행태를 보면서 비리 경찰관을 뿌리 뽑겠다던 신참 형사가 선배보다 더한 비리 경찰로 변한다는 영화 내용에 김화남 당시 경찰청장이 대로했다. 경찰을 좋게 묘사하는 줄 알고 순찰차에 전경까지 지원해 줬는데…. 경찰청이 강하게 항의해 영화 도입부에 자막을 넣는 선에서 절충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경찰의 실제 이야기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라는 자막이 나오는 순간 관객들이 박장대소하는 바람에 오히려 역효과가 났다.

경찰에 대한 국민의 인식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경찰이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투캅스’들은 그대로 있다. 안마시술소에서 억대의 돈을 받고, 단속 정보를 흘려주고, 회식비를 상납받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친절한’ 경찰을 만든다며 이벤트성 홍보에 치중했다. 포돌이를 만들고, 시위문화를 개선한다며 폴리스라인에 여경을 배치하는 전시행정을 했다. 시위 대책도 정치논리에 휘둘리면서 경찰 조직은 속으로 멍이 들었다.

강희락 신임 경찰청장은 “불법과 폭력행위에는 엄정하게 대응하겠다”며 무관용을 선언했다. 경찰은 자체 정화 노력과 함께 사회의 공공질서를 확립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유약한 경찰은 부패한 경찰과 마찬가지로 ‘나쁜 경찰’이다.

이인철 사회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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