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10·끝>사회안전망 필요하다

  • 입력 2009년 1월 12일 02시 58분


사회안전망 컨트롤타워 구축… ‘중산층 몰락’ 막아라

파산 실직으로 ‘빈곤층 전락’ 갈수록 늘어

생계 의료 교육 창업 등 선제적 지원 절실

부처별 복지제도 통합… 사각지대 없애야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연설에서 저소득층과 위기가정을 돕기 위한 사회안전망의 확충을 강조했다.

보건복지가족부에 따르면 전체 빈곤가정 중 3년 이상 빈곤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계속 빈곤’ 가정은 11% 정도다.

나머지 빈곤 가정 중 40%는 일시적으로 빈곤에 처한 가정이며 45%는 두 번 이상 빈곤에 빠진 가정이다.

결국 전체 빈곤가정의 85%는 사회안전망의 적절한 지원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빈곤에서 탈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사회안전망의 보호 대상을 기존의 빈곤층에서 중산층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물망처럼 촘촘한 사회안전망을 만들어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추락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근본적 해법이라는 것이다.

○ 정부 도움 못받는 ‘사각지대 빈곤층’

정호원 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장은 “최저생계비를 지원받는 기초생활수급자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고 말했다. 정부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사각지대 빈곤층’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소득이 거의 없지만 재산이 8500만 원(대도시 기준)을 넘거나 부양의무자가 소득이 있을 경우 법적으로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어 사각지대 빈곤층으로 전락하고 있다.

복지부는 사각지대 빈곤층을 지난해 말 기준 370만 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자 155만 명의 두 배를 훨씬 넘어서는 규모다.

정 과장은 “이들은 주로 지역 민간단체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는데 최근 경기 악화로 지원이 끊기면서 최저생활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부양의무자와 본인의 재산 기준을 완화하고, 자활 지원도 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지수다.

그래서 사각지대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자활 지원 프로그램이 대안으로 거론된다.

김미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기초보장실장은 “사각지대 빈곤층 중 상당수는 특정 분야의 지원을 강화하면 빈곤에서 탈피할 수 있다”며 “교육, 창업 등 본인이 원하는 분야를 발굴해 지원하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말했다.

○ 중산층 몰락 막는 안전망 필요

사각지대의 빈곤층도 처음에는 중산층이었다.

이들의 몰락은 대부분 실직에서 비롯됐다. 정부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집을 포함한 모든 재산을 헐값에 처분했다. 그 결과 빈곤층으로 전락한 것. 소득이 없을 때 생계비와 의료비를 지원하는 긴급지원제도도 휴·폐업하거나 사고 또는 질병에 걸린 가장(家長)에게만 적용될 뿐 실직 가장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처럼 순식간에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중산층 가정이 늘고 있지만 이들을 구하기 위한 사회안전망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위기가정에 대해 최저생계비의 50%를 지원하는 ‘한시보호제도’와 재산을 담보로 생계비를 장기 저리로 대출해주는 ‘자산담보 대출제도’를 당장 실시하고, 대상도 중산층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하지만 정부는 예산 등의 문제로 이 제도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 중산층의 몰락을 방지하기 위한 ‘선제적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성규 서울시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빈곤층으로 떨어지면 자활에 성공하는 비율은 10%도 되지 않기 때문에 그 전에 중산층을 지켜내는 촘촘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지금이라도 범정부 차원에서 ‘경제위기형’ 긴급복지예산을 새로 편성해 중산층 보호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통합안전망’이 필요하다

최근까지 중소기업을 다니며 매달 350만 원의 월급을 받았던 A(49) 씨는 회사 부도로 직장을 잃으면서 가정이 풍비박산의 위기에 처했다.

전업주부였던 그의 아내(47)가 대형할인점에서 임시 판매원을 하며 생계를 떠맡았고, 대학 3학년 아들(22)은 휴학해야 했다. 아내가 수발하던 치매 노모(75)는 방치됐다.

A 씨는 실업급여, 아내는 사회서비스 일자리, 아들은 학자금 융자, 노모는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신청할 수 있었지만 가족 누구도 그 사실을 몰랐다.

이런 사례는 흔하다. 이 때문에 부처별로 운영되는 사회안전망이 통합적으로 관리돼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회안전망이 부처별로 운영되다 보니 한쪽에서는 누락되고 다른 쪽에서는 중복혜택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국무총리실 등에 일종의 ‘컨트롤 타워’를 두고 기획 단계부터 통합적으로 운영돼야 한다”고 말했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연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김 교수는 “도움이 필요한 현장을 잘 알고 있는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도태 복지부 사회정책과장은 “지원 대상자들의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기 위한 전산망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며, 중앙과 지방정부의 연계를 위한 민생안정지원본부는 이미 발족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지자체에서도 사회안전망 사업예산을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지자체장의 의지가 약하면 언제든지 안전망에 구멍이 생길 우려가 있다. 정부 부처 간 통합안전망뿐 아니라 지자체도 아우르는 사회복지모델의 개발이 필요하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경제위기, 장애인은 더 춥다▼

교육 혜택 57% 그쳐

“생색내기 정책” 불만

실질적 지원책 시급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실시로 지난해 노인 21만 명이 혜택을 받았다. 대상자가 올해는 23만 명, 내년에는 27만 명으로 확대된다.

저소득층 여성에 대한 지원도 늘어나 보건복지가족부는 올해 신규로 창출하는 7만2000개의 사회서비스 일자리 중 1만4000개를 무직 가구의 여성에게 주기로 했다.

또 복지부는 소득 하위 50%에 대해 보육료를 전액 지원하고 지역아동센터 2788곳에 611억 원을, 방과후 아카데미 180곳에 129억 원을 투자하는 등 아동과 보육 부문을 강화하기로 했다.

사회적 약자인 노인, 여성, 아동에 대한 안전망이 강화되고 있는 반면 200만 명이 넘는 또 다른 사회적 약자인 장애인에 대한 사회안전망은 여전히 부족하다.

복지부는 올해부터 장애아동 1만8000명에게 언어 및 행동치료 지원비로 매달 18만∼22만 원의 바우처를 제공한다. 또 거동이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에게는 매달 평균 72시간 동안의 활동보조서비스도 제공한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대체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장애인들은 무엇보다 교육서비스의 부족을 지적한다.

최근 안마사 자격을 놓고 마사지사와 시각장애인이 법정 싸움을 벌인 것도 시각장애인을 위한 직업교육 프로그램이 없기 때문이란 분석이 많다. 시각장애인들은 ‘안마=생계’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비(非)장애인이 시장에 진입할 경우 생계를 잃을 수 있다고 우려한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장애인들을 위한 특수 교육시설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직장생활을 하거나 비장애인과 함께 교육을 받는 장애인을 위한 보조교구나 자재 서비스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권오형 장애인개발원 정책연구팀장은 “교육은 백년대계라면서 유독 장애인의 교육차별이 심하다”고 지적했다.

비장애인의 95%가 교육 서비스를 충분히 받는 반면 장애인은 57%만 교육 혜택을 받고 있다.

여성장애인에 대한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중증장애 여성의 경우 아이를 낳았을 때 스스로 육아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현재는 이런 여성에 대해 지속적으로 도우미를 파견하고 있지 않다.

권 팀장은 “지난해 4월 11일 시행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르면 모든 분야에서 장애를 이유로 차별할 수 없는데도 여전히 사회 인식은 과거와 다르지 않다”며 “정책적인 사회안전망도 중요하지만 장애인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려는 사회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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